비교로부터 자유로운 미니멀 라이프 - 미니멀 라이프를 만난 뒤 찾아온 자유
상큼한 뿌미맘 차지선 지음 / 느린서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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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나는 사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은 맥시멀리스트다. 그토록 갈망해서 산 물건이건만 정작 집에 도착하면 열에 아홉은 ‘처박템’이 된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아마 큰 고민 없이 ‘지르는’ 습관 때문인 것 같았다. 뭐든 사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며칠 안에 샀다. 그게 문구류든, 옷이든, 책이든, 차든, 집이든. 내 인생에서 빠른 결단력이 도움이 될 때도 분명 많았지만, 물건을 사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단점이 더 큰 것 같다. 지금도 방 한 칸을 온전히 물건에 내어주고 있으니 말이다.
정리수납 자격증도 따고 미니멀 카페에도 가입해 나름 매일 비우기도 실천하고는 있는데, 카페에서 고수들이 하는 미니멀 라이프를 보면 입이 떡 벌어질 수준이다. 집 평수를 40평대에서 10평대로 줄이기도 하고 냉장고를 없애기도(!) 하는 등, 보고 있으면 ‘나는 미니멀할 팔자가 못 되나?’ 싶어 화병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미니멀과 슬금슬금 멀어지려던 찰나 ≪비교로부터 자유로운 미니멀 라이프≫를 만났다. 비교로부터 자유로운, 이 문구가 나를 사로잡았다. 빠르게 잘 해내고 싶은 욕심에 나 자신의 고유성을 버리고 남들을 따라 하려니 화병이 날 만도 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뿌미맘은 남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고 괴로워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말라고 했다. 남과 비교하지 않는 짠테크로 자신은 경제적으로 전보다 여유로워졌고 간결한 삶으로 마음이 풍요로워졌다나! 흥미를 갖고 열심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이 책은 물건만을 줄이는 미니멀 라이프가 아닌, 합리적이고 알뜰한 소비를 할 수 있는 경제적 미니멀까지도 포괄하고 있다. 저자는 결혼 당시 4500만 원에 대출을 받아 10평 아파트 전세를 얻고, 알뜰살뜰 살림하고 모아 대출을 갚은 뒤 대출을 껴서 아파트를 매수하고, 또 열심히 모아 대출을 갚은 뒤 그 집을 팔고 20평대 아파트를 매수했다고 한다. 외벌이에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 마이너스 안 나는 게 기적이 아닌가 싶었는데...돈을 모으다 못해 불려서 평수를 넓혀 가다니! 저자는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번 돈을 잘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마치 우리 엄마같은) 말을 했다. 덜 중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과감하게 줄이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말도. 별 고민없이 소비하는 내게는 꼭 배워야 할 삶의 태도였다.
또, 23년간 새벽 기상을 했다는 것도 본받을 만한 점이었다. 항상 미라클모닝을 꿈꾸면서도 아침잠을 이기지 못하곤 하는데 책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반성했다. 다가오는 3월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새벽기상을 시작해야지. 아무튼 저자는 새벽 시간을 이용해 공부도 하고 강의도 듣는 등 자기계발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실제로 이 시간을 잘 활용해서 블로그도 하고 유튜브도 하는 등 본인의 꿈을 향해 하루하루 나아가고 있다는 저자. 비록 하루 2시간은 짧지만 한 달이면 60시간, 1년이면 무려 730시간이니 나도 이 시간을 잘 활용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는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꿀팁도 많이 수록되어 있었다. 주방 상하부장 청소 및 정리부터 냉장고 청소, 정리 방법, 장보기 노하우, 쌓이지 않게 먹는 방법까지도! 가장 도움이 됐던 건 큰 시간을 들이지 않고 깔끔함을 유지할 수 있는 청소 비법이었는데, 이미 실천하는 부분도 있지만 다른 부분들도 더 신경써서 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중요한 곳에만 에너지를 쓰면 지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 목표는 올해가 가기 전 물건이 잔뜩 쌓인 창고방을 정리하는 것이다. 진정 중요한 곳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도록, 그러면서도 ‘비교로부터 자유로운’ 나만의 미니멀 라이프를 설계해나가야겠다. 진정 자유로울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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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이야기 역사인물도서관 5
강영준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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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시를 처음 접한 건 교과서에 실렸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슨 말이야? 뭐 이런 제목이 다 있어?’ 라고 생각했다.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겠고 좀 기이한 느낌이었달까? [바로 날도 저물어서,/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 구절을 읽고 난 뒤엔 확신했다. 아, 문제 내기 좋으라고 실린 시구나. 그런데 자의든 타의든 여러 번 반복해서 읽다 보니 입 끝에 뭔가 서글픈 게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저 시를 적을 때 애달프고 고단하지 않았겠나 하는 마음이 들어 어쩐지 짠하기도 하고. 백석은 내게 그런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시간이 지나 백석의 삶을 책으로 재조명한 책을 만나게 되었다. 기존에 백석 평전이 나와 있긴 했으나, 예전에 멋모르고 어떤 인물의 평전을 읽다가 어려워 쩔쩔맨 경험이 있어서 평전에는 쉬이 손이 가질 않았다. 그런데 백석 시와 동명인 책 ≪흰 바람벽이 있어≫는 상대적으로 읽기 쉽고 접근성이 좋게 만든 책이어서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백석이 월북한 시인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찾아보니 월북이 아니었다. 원래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였는데, 경성에 머물다가 해방 이후 곧바로 정주로 올라갔으니 월북이라기보다는 재북에 가까운 셈이다. 그는 고향을 사랑하고 우리말에 대한 애정이 짙어서 일제 강점기에도 일본어로 글 쓰는 것을 극히 피했다고 한다. 그의 시가 평안도 말과 토속적인 언어로 쓰여진 건 이 때문이라고.
백석은 본래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 교정부에서 일했다고 한다. 이때 백석은 그의 인생을 뒤흔들 두 사람을 만난다. 신현중과 박경련. 신현중은 백석과 같은 신문사에서 일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벗이 되었고, 박경련은 신현중의 여동생의 지인이었다. 백석은 박경련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란’이라는 애칭을 붙이며 애절하게 연모한다. 그러나 둘의 만남은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는 일의 연속이었고, 중간에서 질투심으로 이간질을 한 신현중으로 인해 박경련은 백석이 아닌 신현중의 아내가 되고 만다.
백석은 크게 낙담했지만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영어교사로 전직하고 난 후에도 그의 시작은 계속되었다.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시를 쓰고 자신이 살아왔던 평북 지역 말을 고스란히 시어로 사용했으며 어릴때 먹던 음식 이름도 하나하나 살려 아름다운 시어로 녹여냈다. 일제 강점기 감시를 피해 만주로 넘어가서까지 시를 쓰려는 의지가 강했으나, 해방 이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경성에 남지 못하고 그저 소박하게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고 싶다며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후 6.25 전쟁이 일어나며 영영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되었다.
시처럼 살고 시처럼 사랑한 모던보이 백석의 삶을 읽어볼 수 있어 좋았다. 다만 그가 북한 체제 하에 마음껏 시 쓰지 못하고 말년에는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고 하니 그 재주가 너무 아까웠고 더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올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시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라는 백석. 우리말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그를 이제 제대로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 한참을 걷는데 뭔가 눈이 부시게 반짝거렸다. 바위틈 곳곳에 박힌 하얀 굴 껍질이 햇살에 반사된 것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바다 물기를 머금은 껍질 조각이 누군가 애써 만든 자개 문양처럼 아름답게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석이 손으로 굴 껍질을 떼어내려 했지만 그것은 바위에 꽉 엉겨 붙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바위틈에는 미역 가닥도 군데군데 바짝 말라붙어 있었다. 그 것들 역시 바위와 사랑하듯 절대 떼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마치 못다 한 사랑을 위해 평생을 홀로 지낸다는 통영의 처니처럼. _54p

🔖 낯선 만주, 가족도, 친구도, 직장도, 동료도, 사랑하는 연인마저 내팽개치듯 떨치고 떠나온 곳. 오로지 정신의 자유를 얻기 위해, 시를 쓰기 위해 선택한 곳. 외롭고 쓸쓸하더라도 시만 쓰면 된다고 여겼던 곳. 그런데 정작 정붙일 곳을 찾지 못하자 무거운 고독이 백석의 머리를 내리눌렀다.
석은 괴롭고 쓸쓸했다. 누구 하나 자신을 동정하거나 위로해 주는 이가 없는 게 고독을 더 뼈저리게 만들었다. 어째서 이지경에 이르렀나. _179p

🔖 "자기 경계를 무너뜨려야 다른 것과 섞이고 비로소 자유롭게 타오를 수가 있어요. 그 안에서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건 아니지요. 시를 쓸 때도 모든 경험이 다 소중해요. 중요한 것은 자기를 고집하지 않고 다른 것과 함께 뒤섞여 타오를 수 있느냐지요. 시는 불꽃 같은 거예요. 서로를 애타게 그리워하다 불이 붙어서 하나가 되는." _28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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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브 딥 - 한계를 향해 한계 없이,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쿠팡의 성공 법칙
박선희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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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피상적으로 훑어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근본 원인까지 집요하게 탐구하는 자세를 뜻하는 말인 '다이브 딥'은 이 책의 제목인 동시에 쿠팡의 일하는 방식과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원칙이기도 하다. 산업부 기자 출신인 저자는 오랜 시간 쿠팡에 관심을 갖고 취재하며 모은 자료를 가지고 이 책을 썼다. 모두가 망할 거라고 했던 회사, 그러나 보란 듯이 한국 기업 역사상 최단기·초고속 성장한 쿠팡의 비밀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사실 내가 쿠팡을 알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졌을 당시, 제일 급한 건 생필품 조달이었다. 그전까지는 택배 배송이 불편하지 않았는데 팬데믹이 시작되자 마스크며 손 소독제 등을 10~20배가 넘는 비정상적인 가격으로 판매하는 업체가 속출했다. 그러다보니 정가에 판매하면서 당일 혹은 익일까지 무조건 배송되는 쿠팡에 가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스크 티켓팅'이라 불릴 정도로 스피드를 요하는 작업이었지만 어쨌든 쿠팡 덕분에 양가 부모님께도 무사히 마스크를 보내드리고 우리가 쓸 마스크도 구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쿠팡의 가입자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지 않았을까 싶다.

책을 읽으며 미처 몰랐던 쿠팡의 면면을 알게 되었는데, 가장 놀랐던 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기업이라는 것이었다. 국민 3.4명 중 1명이 썼다고 할 정도니 이젠 빼도박도 못할 대기업인 셈이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망할 것 같다고 했지만 해외 유수의 투자자들은 기꺼이 막대한 자본을 투자했다는 점도 신기했다. 그들이 본 것과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우리 스스로 한국 시장에 대해 '이미 발전할 대로 발전해서 더 이상의 블루 오션은 없는 곳'이라고 낙인찍어버린 것은 아니었을지.

아마존의 패스트 팔로워였고, 계획된 적자론을 한국에 최초로 도입했으며, 기존 산업의 문법을 파괴하며 성장해온 쿠팡. 오전 8시에 출근해서 오전 4시에 퇴근하는 열정을 가진 리더와, 야근식대와 교통비 정도만 지급받으면서도 매일 새벽 2시까지 자발적으로 일했던 초창기 직원들. 빠른 의사결정을 위해 하루아침에 시스템을 뒤집어엎기도 하고, 개발자에게 지불하는 연봉을 아끼지 않았으며, 뭐든지 고객 중심으로 생각하며 중간에 걸리적거리는 건 뭐든 없애버리는 결단력까지. 마음만 먹으면 뭐든 두 달 안에 만들어버리는 확신형 리더의 무서운 추진력으로 뭐든 전면적으로, 기습적으로, 하루아침에 해결해버렸다고 하니 이건 뭐 성공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이 정도 열정이면 막말로 남극에서 냉장고도 팔 수 있을 것 같다.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현재의 쿠팡을 잘 설명해주는 이 말은 사실 쿠팡의 미션이자 슬로건이었다고 한다.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고객에게 정확하게 인식시키고 급기야 그 말을 내뱉게 하는 쿠팡의 저력은 어디까지일까. 사실 책을 읽고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쿠팡은 이미 쇼핑은 물론이고 배달, ott 분야까지 장악했다. 이미 커질 대로 커졌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 쿠팡에게 과연 끝이란 게 있긴 할까? 이러다 쿠팡 아파트, 쿠팡 자동차, 쿠팡 대학교가 생기는 건 아닐지, 쿠팡 특유의 편의성에 젖어 조금이라도 복잡해지면 적응하지 못하는 세상이 올까 봐 살짝 두렵기까지 하다. 쿠팡에 너무 많은 부분이 길들여질까봐.

현직 기자가 쓴 책이라 그런지 팩트 기반으로 매끄럽게 서술되어 있어 담백하게 술술 읽혔다. 쿠팡에 대해 미처 몰랐던 부분에 대해서도 매우 자세히 알 수 있었고, 김범석 의장의 열정과 추진력이 부럽기도 하고 일부는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쿠팡에 대한 평가는 현재까지도 극과 극을 달리지만 분명한 건 이정도 열정이면 뭘 해도 성공했을 거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책으로 읽은 쿠팡은 한마디로 'wow' 그 자체였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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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은 늘 옳았다
정병권 지음 / 히읏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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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은 늘 옳았다》는 3천여 명을 인터뷰한 40만 유튜버 잼뱅의 에세이다. 제목을 들었을 때 나는 내 남편이 쓸 법한 책의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10년간 많이 들어와서 뭔가 대단한 감동은 받지 못했는데, 책을 다 읽고 보니 '잘했어', '네가 옳아'라고 온전히 누군가를 인정해주는 게 참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을 거란 걸 깨달았다. 반면 나는 그렇지 못한 아내라 마음이 몹시 쪼그라들었다. 나는 참 상황판단이 빠르고 선택도 잘 하고 추진력도 좋고 감도 좋고 그런 사람인데, 위로나 인정의 말을 건네는 건 '드럽게도' 못한다. 책을 읽는 내내 나도 남편에게 '당신 선택이 옳아'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쩌면 남편이 이런 부분에 결핍이 있지는 않았을까? 내심 미안해진다.

저자는 말했다. 내게 명쾌한 답이 있는 것만 같아도 착각해선 안 된다고. 나는 이 사람의 사연에 대해 골똘히 고민하지 않았지만, 이 사람은 이것에 대해 인생을 걸고 고민했을 거라는 것을 늘 잊지 말아야 한다고. 내가 네가 될 수 없듯이 네 고민을 내가 해결해줄 수 없다는 것, 참 알면서도 하기가 어렵다. 이미 내가 걸어온 가시밭길을 똑같이 걸어들어가려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까 싶기도 하고. 관계라는 게, 사람이라는 게 참 알면 알수록 어렵다. 3천여 명을 인터뷰한 사람도 어렵다는데 나는 뭐 더한 게 정상이겠지만.

읽고 난 뒤의 솔직한 느낌은 이 책이 40대를 앞두고 있는 나보다는 20~30대 초반까지 읽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부분적으로 괜찮은 챕터도 분명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제목과 내용이 좀 언밸런스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제목을 봤을 땐 힐링에세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용을 열어 보니 인터뷰이에 대한 내용과 소회, 인간관계에 대한 조언이 뒤섞여 있었다. 힐링이라 하기엔 가벼웠고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기엔 얕았다. 한쪽을 아예 깊게 파고들었으면 더 나았을 것 같다.

사실 잼뱅TV 자체를 몰랐기에 검색해서 몇 개의 영상을 봤는데, 영상을 보고 나니 저자가 관계와 화술을 주제로 책을 썼다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이로부터 하기 힘든 이야기를 끌어내고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인터뷰이들이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어 한다는 건 분명히 저자에게 무언가가 있다는 거니까. 저자는 스스로를 일컬어 '그저 들어주는 것을 잘할 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저 들어준다고 해서 인터뷰가 매끈하게 이루어지진 않을 터. 핵심을 짚는 질문 방법이나 사람의 속을 터놓게 하는 애티튜드에 대한 책을 썼다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어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속편을 쓰신다면 꼭 관계와 화술에 대한 이야기를 쓰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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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초콜릿 가게
김예은 지음 / 서랍의날씨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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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빵은 브랑제리, 제과는 파티세리, 파티쉐라고도 하구요, 초콜릿은 쇼콜라띠에, 잼하고 사탕류는 콩피즈리, 아이스크림은 글라스리...그 중에서 전 제과분야인 파티쉐구요. 언젠가는 제 샵을 내는 게 꿈이에요."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가 했던 대사다. 드라마가 방영되던 2006년 당시에는 파티쉐라는 말도 흔하지 않았고 브랑제리, 파티세리, 쇼콜라띠에는 난생 처음 듣는 직업군이었다. 드라마가 방영된지 17년, 지금은 쇼콜라띠에라는 직업도 초콜릿 전문점도 꽤 많아졌다. 보기만 해도 눈이 호강하는 고급스러운 초콜릿, 저마다 다른 맛과 특색을 가진 달콤함과 함께 연애상담까지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수상한 초콜릿 가게》는 그 생각으로부터 출발한 소설이다.

'사랑 데 초콜릿'이라는 이름의 초콜릿 가게에 오는 손님들은 초콜릿을 사러 오는 것만은 아니다. 쇼콜라띠에인 주호(중성적인 이름이지만, 여자다)에게 상담을 받으며 고백할 용기, 혹은 포기할 용기를 얻어간다. 금사빠라 몇 달에 한 번씩은 짝사랑의 대상이 바뀌는 사람도, 짝사랑의 가슴앓이를 하는 중인 사람도, 전 사랑의 상처때문에 선뜻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도, 애인이 아닌 다른 이를 사랑하게 되어버린 사람도, 긴 짝사랑에 지쳐 있는 사람도...사랑 드 초콜릿의 문을 열고 들어와 고민을 터놓는다. 주호는 그들에게 저마다 다른 초콜릿을 처방해준다. 파베 초콜릿부터 위스키 봉봉, 아망드쇼콜라, 트러플 초콜릿 등등. 그들은 달콤함과 함께 사랑을 지속하거나 혹은 포기할 용기를 가진 채 한층 후련해진 마음으로 가게를 떠난다.

그러던 중 주호의 오랜 짝사랑 대상이었던 선배 민웅이 상담을 받으러 찾아오게 되고, 주호는 자신도 모르게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다. 몇 번의 만남 끝에 민웅에게 고백하게 되는 주호. 둘의 마음은 과연 초콜릿처럼 달콤하게 통할 수 있을까?

시작은 달콤하고 기발했던 《수상한 초콜릿 가게》였지만 다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인물이 없다. 하소연하고, 사라지고의 반복이라 인물을 위한 장면 세팅이 아닌 장면을 위한 인물의 등장같다는 느낌이 든다. 또, 인물의 나이대가 천차만별인 데 반해 말투가 일괄되고 똑같다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렇다보니 성인을 대상으로 한 소설이라기보다는 소녀 명랑 소설 같은 느낌이 짙다. 작가가 앞으로도 소설을 쓸 생각이 있다면 인물을 어떻게 하면 입체적 & 매력적으로 그릴지, 인물과 인물 사이의 갈등이나 사건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구축할지, 식상함과 기시감을 묘사로 깨버릴지 아니면 기발한 사건으로 묘사에의 단점을 상쇄할지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썼으면 좋겠다. 소설은 그런 고민이 필요한 장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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