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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들르는 서재의 운영자님 닉네임이 공교롭게도 달팽인데,,

지금 적고자 하는 건 진짜 '달팽이'에 관해서다.

 

명절을 앞두고 엄마의 생신이셔서 시골집에 다녀왔다.

엄마의 나물무침으로 시금치와 숙주나물이 상위에 올랐다.

 

시골에서 공수된 시금치 덕에 시금치 국을 끓여먹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냉장고에 든 시금치를 다듬는다.

서울에 올라온 후 바로 냉장고 야채 케이스 구석에 이틀을 두었나 보다.

신문지를 깔고 시금치를 다듬는다.

아직 싱싱하고 누렁잎도 거의 없다.

 

그런데 잎파리 뒤에 뭔가 꺼먼게 붙어 있어서 그냥 흙이겠거니 하고 그릇에 담았는데,

다른 잎에도 비슷한 게 붙어 있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이건 그냥 흙덩어리가 아니라 '달팽이'다.

이거 한 마리도 아니고 두마리나 시골서 부터 따라왔다.

참,, 난감하다.

시골서 올라온 달팽이 두마리.

친구인가 연인인가 모자지간인가...

그것도 그렇고 냉장고에 이틀동안 몸을 웅크리고 있었던 인내와 삶에 대한 의지때문이라도

어떻게 처리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일단 시금치 몇 잎을 조그만 통에 담아서 넣어 두었다.

 

달팽이 두마리가 지금 한 열흘 가까이 우리집에 살고 있다.

봄이 되면 집 뒤 동산에라도 옮겨 줄까 싶은데 그때까지 살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신랑은 아마 살 수 있을거라고 하는데,,,

이쯤 되면 책임감마저 느껴진다.

그냥 사그러들 수도 있는 목숨 일단 살려 놨으니 보살펴야 한다.

어제는 배춧잎으로 잎사귀를 바꿔줬다.

 

암튼 이 두마리 달팽이가 봄이 오기까지 잘 견뎌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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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2-24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간절한 바램과 보살핌으로 두 달팽이가 소중한 삶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발원합니다. ㅎㅎ

고갱 2006-02-24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집에 달팽이가 잘 있어요..ㅎㅎ 살이 너무 쪄서 비만 달팽이가 됐답니다.. 무사히 봄을 맞이할 것 같네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잠언 시집
류시화 엮음 / 열림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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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회사 일로 알게 된 사람들의 모임이 있었다.  거기에서 몇번 일을 통해 만나고 전화하고 밥 먹고 했던 '그녀'. 평소 '오버'다고 생각될 정도의 활달함으로 혀를 내두르게 만들기도 했고, 때론 그런 활달함이 부럽기도 한 터였다.

그런 그녀가 지난 여름에는 모 CF에도 나오는 태국 하룽베이로 여름 휴가를 혼자 다녀왔다고 했다, 그때 스치듯 드는 생각은 잘 안 어울린다는 거였다. 그랬던 그녀가 얼마전의 모임이 끝나고 차를 한 잔 마시는데, 불쑥 가방에서 꺼낸 시집이 바로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었다.

참 의외였다, 의외라고 생각했다. 평소 그녀 이미지와는 너무 안 어울린다는 선입견이 컸다.  그런 그녀의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서 들었는데, 새해에 한달정도 휴가를 낼 거라는 거였다. 연월차 이것저것 다 갖다가 암튼 휴가를 간다는 거였다. 그래서 어디 배낭여행이라도 가나 했는데, 그냥 '방콕'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가방에서 꺼낸 시집이 떠올랐고, 그녀는 정말로 '시간'이 필요한 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예전에 초판이 나왔던 '그때' 봄에 산 시집을 다시 구입했다.  마치 어떤 연쇄반응처럼 내 머리에 그 시집이 콱 박혔고, 나도 다시 그 시집을 꺼냈다. 때로 단지 '베스트 셀러'라는 이유만으로 책을 멀리할 때가 있다. 속으론 "너무 통속해"라고 콧웃음치며 그냥 무시하는 것다. 대중성이라는 것과 예술성과 깊이, 머 그런 것들이 항상 양립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그녀가 그 철지난 시집을 들고 있을 때 그녀에게도 안 어울릴 뿐더러, 그 철지난 베스트셀러를 들고 있는 폼이 어딘가 모르게 어정쩡해 보였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시집 아무 곳이나 펼쳐 눈 길 가는대로 읽는다.

아........ 초판이 나왔던 그때, 1998년 4월 10일이라고 써있다. 그러니까, 내게는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 있었던 해였기도 했고, 설익은 청춘의 열정으로 머리가 항상 뜨거웠고,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위해 자기와의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던 시기... 자신에게 싸움을 걸고 있었던 시기 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이 시집의 제목처럼 '잠언시집'을 읽었던 '그때'에도 내 영혼은 무언가 스치고 지나갔던 것 같은데, 그때가 지난 지금에 와서 왜 공허해지는 걸까.

그때 알았던 걸 지금도 알고 있었다면...

그랬다. 빛나던 내 영혼의 이상과 눈물과 고민들. 분명 나는 '그때'는 알고 있었다. 나이와 인성과 열정과 생각과 그에 견줄 수 있는 어떤 심성들, 그런 것들이 항상 비례하는 것은 아님을 진즉에 깨달았지만, 내 자신에게도 대입되는 순간 그냥 쓴 웃음이 올라왔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나아가고 꿈을 향해 가까워지기 보다는 세상의 한 부품이 되기 위해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깎이고 깎여서 어떤 자리에 점점 '맞춤'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그다지 많은 물리적 나이를 먹지는 않았지만, 1998년과 2004년 12월 그 사이는 분명 큰 간격이다. 많은 세월이 지난 것이다. 그 세월 속에서 나는 부서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합리화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

그래서 디자인도 똑같은 이 시집이 단지 책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시점의 나 자신처럼 느껴진다. 그 서늘했던 시절의 내가 멀뚝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시집을 보면서 앞으로의 삶을 바라보면서 자극을 받기 보다는, 아,, 그때 이런 생각을 했었지, 그때 이 글귀를 보면서 내가 이런 위로와 의미를 반추했었지,, 하는 되새김질을 하게 된다. 썩 기분좋지만은 않은.

그때 알고 있었던 걸 지금도 알고 있더라면,

자꾸 그렇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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