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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상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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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에 있어서, 선과 악의 구분을 두고 싶지 않은 작품

 

 

 

 

 

 

 

정진홍 작가의 책을 독자 모니터 한 후, 출판사 문학동네로부터 받은 세계문학 전집3권. 지난번 모니터링때 받은 책과 합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은 총 6권이 있는데, 앞으로는 내 돈으로 사들여야겠다. 현재 100권 까지 나와있으니, 나는 언제 그 많은 책들을 다 사모을 수 있을까?

 

 

이 책들 중 내가 가장 먼저 집어든 책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이었다. 우선 내가 요즘 고3때와 비슷한 수면시간을 유지할 정도로 바빴고, 매일 가방속에는 공부할 책들로 꽉차서 더이상은 무게를 더하고 싶지가 않았기에 가장 얇은 책을 골랐다는 시시껄렁한 이유가 이 책 선택의 배후에 존재했고, 다른 이유 하나는 약 2개월 후에는 난 베니스에 있을테니까. 여행지와 관련된 책들을 먼저 읽어보고 싶은 욕구가 컸다고나 할까.

 

 

 

 

 

책 표지의 사진은 베니스의 상인과 큰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상적이다. 물의도시 베니스에 정말이지 유명한 것이 각양각색의 예쁜 가면들이라고 하는데, 아마 그 때문에 위의 사진을 표지로 삼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셰익스피어가 희곡작가라는 사실은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부끄럽게도 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렸을 적 읽은 청소년들을 위한 얇은 책의 셰익스피어 전집 말고는.

 

 

 

 

 

매일같이 줄글 형식의 책만 읽어오다가, 이렇게 대본형식의 글을 읽자니 재미가 쏠쏠했다. 참고로 외국의 고전, 그것도 꽤나 오래된 작품을 우리말로 완벽하게 번역해내기란 참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출판사마다 번역자들도 각기 다르고, 같은 번역자라 할지라도 한 작품을 여러번 번역해내는 일이 허다한 것 같다.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원작에 더 가깝게 번역해내기 위해서.

문학동네의 세계문학전집은 이경식 교수가 번역한 작품인데,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번역으로 1997년 한국번역대상을 수상한 작가라고 한다.

 

 

 

이 작품은 1500년대, 즉 16세기 후반 쓰인 작품인데 당시 유럽사회는 절대 왕정과 중상주의, 삼각무역, 식민지 쟁탈전이 활발히 시작되고 진행되어 가던 시기였지만 아무래도 이탈리아는 대서양이 아닌 지중해에 있던 나라이다보니, 이 작품에서 그런 격변의 사회분위기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 듯 하다. 다만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바와 같이 당시 베니스는 상업이 강성했기에 작품속 주요 인물은 상인으로 그려졌고, 고리대금업자또한 등장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상인과 고리대금업자의 강한 반목이 작품속에 나타나게 되는데, 베니스 상인으로 대표되는 앤토니오가 기독교인이고,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이 유대인이라는 점이다. 그 당시 기독교인과 유대인이 강하게 반목했고, 유대인이 기독교인에게 멸시와 핍박등을 받던 베니스의 사회적 분위기를 잘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작품속에는 크게 두 줄기의 이야기가 등장한다고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기독교인 베니스의 상인 앤토니오가 친구 바싸니오에 대한 우정과 믿음이 워낙 극진한 나머지 친구를 위해 다른 곳에 여러차례 빚을 지게 되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그렇게나 무시하고 멸시하던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가서 빚을 지는 것과 관련, 벌어지는 소송과 재판을 다루고 있다.

두 번째로는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은 벨몬트의 상속녀 포오셔를 향한 구혼의 이야기가 나오고, 이 두 사건은 바싸니오를 통해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당시 기독교인과 유대인의 대립이 이렇게나 심했는지 몰랐던 나는 작품을 읽으며 놀랐다.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색안경을 단단히 끼고 사람을 짐승이하로 대하는 듯한 기독교인들의 태도가 불만이었다. 자신들이 엄청나게 도덕적이고, 유대인을 굉장히 잔인하고 몰인정한 사람으로 몰아가지만 실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정말이지 고약하고 끝까지 자비란 없어 보이는 유대인 샤일록이 불쌍해보이고 그 심정이 이해갈 정도였달까. 아무래도 그 점이 이 작품의 뛰어난 점이 아닐까 싶은데, 바로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_p.26 앤토니오 : 샤일록, 나는 이자를 수수하는 금전거래를 해본 적이 없지만 내 친구의 시급한 필요를 해결해주기 위해서 관행을 깨려 하오.

(바싸니오에게) 자네가 얼마를 원하는지 이자가 알고 있는가?

샤일록 : 예, 예, 3천 다가트. / 앤토니오 : 그리고 3개월간.

샤일록 : …(중략), 자, 그러면 차용증서를. 가만있자. 이보십시오, 당신께서는 방금 이자를 수수하는 금전거래는 안 하신다고 말씀하셨으면서.

앤토니오 : 그런 일은 결코 안하오.

 

→ 끝까지 이렇게 말하면서 돈을 빌리는 앤토니오. 이 부분만 봐도 기독교인을 점잖아 보이지만 어떤 식으로 그려냈는 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이 희극으로 분류되기는 하나 딱히 희극으로 보고싶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작품이든 선인과 악인이 존재하고, 선인이 승리하게 되면 희극적 결말, 선인이 굴복하게 되거나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비극적 결말로 볼 수 있다. 악인이 패배하고 죽게되는 경우에 그 작품을 악인의 입장으로 판단해서 비극이라고 보지는 않지 않은가. 그런데 이 작품의 경우 조금 예외다. 작품속에서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은 유대인인 샤일록을 철저히 악인이라 생각하고 또한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녹아나기는 하나, 작품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 작품이 그런 기독교인들의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모습 또한 비판하고 비웃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점이 작가가 의도한 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뚜렷하게 역할을 정의하지 않았다는 점. 이분법적이고 흑백논리 가득한 사상 대신, 그에 얽매이지 않을 판단을 독자들에게,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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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에는 찾지 않던 고전을 나날이 찾게 되는 이유로는 물론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생각나는대로 한 가지를 뽑아보자면 바로 '예쁜 말'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본능을 숨기지 않고 뜨겁게 표출해 내는 것, 솔직하게 제 감정을 예쁜 말속에 담아 표현해 내는 것, 아주 진지하고 진중한 대사이나 그 대사를 하는 이도 받는 이도 어색해하거나 요즘말로 오그라들어하지 않는다는 점, 그래서 그 말들을 온전히 내 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는 점이 고전의 매력 중 한 가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_p. 18 … 두뇌는 격정을 다스릴 법률을 마련할 수 있지만 뜨거운 정열은 그 냉엄한 법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법이란다. 젊은이는 미친 산토끼와 같아서 좋은 충고를 절름발이쯤으로 여기고 그 충고의 그물을 뛰어넘으려고만 해.

 

 

_p. 55 … 비너스의 마차를 끄는 비둘기들은 새로운 사랑을 맺어주기 위해서라면 이미 맺어진 사랑을 충실히 유지시키려는 때보다는 열 배는 더 빨리 날아가는 법이지! / 잔칫상에 앉을 때와 같은 강렬한 식욕을 느끼면서 잔칫상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세상 어느 말이 한번 지나온 지루하고 힘든 길을 감소되지 않은 열의로 다시 달려가겠는가? 세상만사는 손에 넣고 즐길 때보다는 손에 넣으려고 쫓아다닐 때 더욱 신 나는 법이지.

 

 

_p. 83… 외양은 속과 아주 다를 수 있지. 세상은 여전히 가식에 속고 있어. 법에서도 아무리 더럽고 부패한 소송도 그럴싸한 언어로 양념을 하면 악행의 외양이 희미해지지 않는가? 종교에서도 아무리 저주받을 잘못이라도 목자가 엄숙한 얼굴로 축복해주고 성경으로 다시 증명해주면 그 흉악함은 번지르르한 장식으로 가려지는 것이 아닌가? 소박한 악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겉에 미덕의 표지를 달고 있기 때문이다.

 

 

_p. 97… 언제나 회동하여 시간을 같이 보내는 친구들 사이에는 그들의 영혼이 다 같은 사랑의 맹세에 매여 있기 때문에 틀림없이 용모, 태도, 정신의 유사점이 있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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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6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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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때문에, 앞으로 얼마나 더 미칠지 모르겠다.

 

 

 

'격정적 사랑' 이라는 말이 정말이지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모든 사랑이 시작되고, 일이 발생하고, 비극적 사건을 낳기도 하는 장소인 '폭풍의 언덕(저택 이름)'의 이름처럼, 매 사랑이 어찌 이렇게 폭풍같이 휘몰아치는지 이야기를 듣는 사람조차 같이 휩쓸려가 버린다. (하녀 넬리에게 이야기를 전해 듣는 세입자 록우드씨도, 그리고 독자인 나도)

거부할 수 없었던 운명적(소울메이트적) 사랑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끝없이 잔인해지고 악(惡)해질 수 있는지. 한편 성격, 성품, 교양적 수준 등에 상관없이 사랑에 빠진 인간이 얼마나 진지하고 진솔하게 자신의 사랑을 내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끌어올려 표현해낼 수 있는지를 잘 드러낸 작품이다.

 

 

 

(실은 표지 그림을 얼핏 보고는, 휘몰아치는 바람을 표현한 것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여자의 얼굴과 머리카락이었다. )

 

 

 

캐서린 언쇼에게 있어 히스클리프는 순수한 사랑, 같은 영혼으로 빚어진(같은 영혼을 나눠갖은) '소울메이트'이다.

반면 캐서린 언쇼에게 있어 에드거 린턴은 '현실적 사랑'이다. 이것 저것 다 재고 따지다보니 멋있어보이고, 그렇게 눈에 콩깍지가 씌어 하게되는 사랑. 이 경우 유효기간이 존재하고, 그 기간이(그 기간이 얼마만큼 길고 짧을지는 모르나) 지나면 사랑은 시들고, 부패하고는 한다. (혹은 애초부터 계산적인, '사랑'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관계가 되어버린다던가.)

 

 

 

"내가 히스클리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애가 알아서는 안돼.

넬리, 내가 그 애를 사랑하는 건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야. 그 애가 나보다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그 애의(히스클리프) 영혼과 내 영혼이 뭘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같은 걸로 만들어져 있어.

린턴의 영혼이 우리의 영혼과 다른 것은 달빛이 번개와 다르고, 서리가 불꽃과 다른 것과 마찬가지인걸."

       - 본문 190쪽 -

 

 

 

"그 애가 정말로 나를 잊는다면, 린턴도 허깨비, 힌들리도 허깨비, 내가 꿈꾼 모든 것이 허깨비야.

그 애가 정말로 나를 잊는다면, 내 앞날은 죽음과 지옥이라는 두 마디로 끝나. 그 애 없는 삶은 지옥이야.

...

그렇게 하찮은 인간이 혼신의 노력을 다해서 여든 해를 사랑한다 해도, 내가 하루 사랑하는 것만 못하거든.

그리고 캐서린의 가슴속은 나의 가슴속만큼 깊은데, 그자가 그 애의 사랑을 모두 차지하겠다는 건

여물통이 바다를 담겠다는 것과 다름없지."

- 본문 235쪽-

 

 

 

이 작품은 사랑이 단순히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을 넘어서서, 얼마만큼의 파괴력을 지녔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간이 사랑 때문에 얼마만큼 나약해지는지, 때로 얼마만큼 악해지고, 얼마만큼 미치게 되는지 말이다. 반면 사랑으로 인해 얼마만큼 강해질 수 있고, 사랑하는 이의 내면에 어떻게 하면 빛을 되찾아 주어 밝게 밝혀 줄 수 있는지 하는 파급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이 작가의 격정적 사랑의 전개에 책에서 손을 떼는 일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한 순간도 잔잔하거나 조용할 일이 없고, 애잔함보다는 공포와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작품. 사랑이 뭐길래 인간이 그렇게나 잔혹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지 바라보게 되고, 매번 분노에 찬 인물들의 격앙된 어투에서 졸인 마음 때문에 마른 입술을 적시게 된다.

 

 

작품속 등장인물들과 함께 원망도 해보고, 비난도 해보고, 혀도 끌끌 찼다. 헌데 악마같은 사람한테서 그만 심히 공감가는 '사랑'을 찾고말아 혼란도 느꼈다.

 

 

 

 

(작품속 배경인 폭풍의 언덕이나 티티새의 농원.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었을때의 그곳의 풍경 묘사는 무척이나 메마르고 황량한듯 분위기를 음울함과 함께 느끼게 해주었지만, 봄이나 여름의 풍경은 아마 위의 나무와 같이 아주 오래되고, 길게 뻗은 나무가 이곳저곳 듬직하게 서있을 것만 같다. 녹음이 짙을 때의 언덕과 농원의 풍경은 평온함을 느끼게 해주었으므로. 이건 그냥 여담. 완전히 개인적인 상상.)

 

 

 

에밀리 브론테는 다양한 인격과 성품을 지닌 각 인물들의 내면을 저마다의 어조로 잘 표현해낼 줄 아는 작가인 것 같다. 누군가는 무척이나 교양없고, 또 누군가는 무식하고 상스럽고, 누구는 아주 악독하고 표독스럽게, 누구는 점잖고 교양이 철철 흘러넘치도록 말이다.

 

 

영국 요크셔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나, 황량한 자연 속에서 사람들과의 교제를 꺼리고 살았던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인물들을 조명해냈는 지 신기하다. 그녀의 작가적 상상력이 가히 놀라울 따름이다.

 

 

 

얼마전, 김연수 작가님께서 본인이 연재를 하시는 문학동네 카페 게시판에서, 댓글 이벤트(?)를 하셨었다. 작가님께 아무거나 질문을 하는 것이었는데, 난 '작가님도 혹시 시를 쓰시나요? 소설가와 시인은 어느정도 두께의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을 했었다. 무슨 질문이 이래? 할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정말이지 궁금했고, 특히 소설가나 시인분께 직접 대답을 듣고싶었다.

 

작가님께서는 이런 대답을 해주셨다.

'저는 시는 쓰지 않습니다. 소설가와 시인의 차이는 종이 한 장의 정도가 아니라 다른 노트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시와 소설은 서로 다른 영혼에다가 쓰는 겁니다.'

 

실은 요 며칠 작가님의 이 대답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내 생각과는 조금 달라 기대했던 답변은 아니었고, 그렇지만 그럴법하다는 생각에 동요하고 있던 탓이다.

 

 

 

그러나 에밀리 브론테의 책을 읽고나니, '때로는 그 두 노트를 모두 가진 영혼의 부자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에밀리 브론테는 사랑을 하는 이들의 감출 수 없는 진솔한 감정을 꾸밈없이 아름다운 시어로 표현했고, 그 각부분을 따로 떼어놓고 보아도 '시'로서 손색이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 현대와 200년 이상의 시간적 배경의 차이가 있지만, 그런 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의 본연의 감성은 똑같고, 사랑의 본질도 이와 다르지 않다. 에밀리 브론테는 이런 본능적이고도 운명적이어서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을, 전혀 미화하거나 포장해내지 않고, 격정적이면서도 강렬하며 매우 아름다운 시어로 풀어냈다. 그녀에게 시라든가, 소설이라든가 하는 글의 형식이 상상의 세계를 이야기로 재조명 해내는데 있어서 무슨 제약이 되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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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미인 - 얼굴 관리하듯 뇌 관리하여 치매 없이 아름답게 살자
나덕렬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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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드라마 속에서 빼놓지 않고 나오는 소재가 있다면, 바로 '치매'이다. 치매가 단골 소재인 것은 우리 주변에 치매 환자가 늘어가는 추세이기 때문임과 동시에, 치매라는 것이 드라마를 더 드라마틱(dramatic; 극적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 인물이 치매에 걸리기 전과 후, 극의 전개는 이전과 크게 다른 양상을 띨 수 밖에 없다. 인물이 수 십년간 지녀온 고유의 성격, 성품이 일정부분 달라지며 여러 이상행동들을 보이는 탓이다. 그러나 드라마에는 치매에 걸린 환자들은 많이 나오지만, 모두 미운 치매 환자들 뿐이다. 즉, 자신도 힘들고 주변인들도 매우 힘들게 만드는 경우이다. 우리는 항상 드라마속에서 저런 모습의 치매 환자들만 봐오기 때문에, 막연히 치매라는 병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흔히들 치매는 노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아무런 준비나 예방도 없이 '에이, 설마 내가 치매에 걸리겠어?' 혹은 '나도 치매에 걸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만 하며 자신을 관리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신경과 최고 명의 나덕렬 박사는 '치매는 유전적 소인보다는 후천적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평소 우리가 어떻게 생활하는가가 우리가 치매에 걸릴지 안 걸릴지를 결정한다'고 그의 책 『뇌美인 』을 통해 밝히고 있다. 우선 그가 치매에 대한 솔루션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뇌미인이 되는 것이며, 뇌미인의 혜택은 다음과같이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뇌미인은 노년이 되기까지 행복하게 산다.

둘째, 뇌미인은 노년에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

셋째, 혹시 치매에 걸리더라도 예쁜 치매가 된다.

 

 이를 바탕으로, 나덕렬 박사의 책 『뇌美인』에서는 뇌미인의 중요성과 뇌미인이 되기 위한 건강 수칙, 그리고 치매에 대한 이해를 다룬다.

 

 

 

 

제 Ⅰ부. 뇌미인이 진짜 미인이다

 

 나덕렬 박사는 1부에서, 얼굴미인보다 뇌미인이 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얼굴을 관리하지 않으면 추해지듯, 뇌 역시 관리하지 않는다면 추해지고 추해진 뇌는 치매를 비롯한 여러 질병을 일으키는 주범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뇌미인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좋지 않은 생활 습관을 고치고(2부와 관련), 뇌의 근력을 키우며, 앞쪽뇌(전두엽)을 키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림, p.19)

 

-이는 정상인의 뇌와 알코올 섭취가 많은 사람의 뇌를 비교한 사진인데, 간단한 설명만 듣는다면 사진을 보는 누구나 꽉 차 보이는 왼쪽의 뇌가 정상인의 뇌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알코올 섭취가 많은 사람, 운동 안하고 비만인 사람, 흡연하는 사람 등 뇌를 관리하지 않는 사람들의 뇌는 공간이 더 많이 생겨서 성글고 헐렁하다. 무엇이 뇌건강에, 그리고 치매 예방에 좋겠는가?

 

 

 그럼 특히 전두엽을 키워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덕렬 박사는 뒤쪽뇌를 비디오카메라, 앞쪽뇌를 영화 감독이나 드라마 PD에 비유하고 있다. 이는 뒤쪽뇌가 감각을 받아들여 해마라는 곳에 저장 하는 역할을 한다면, 앞쪽뇌는 모든 것을 종합, 판단해 최종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을 맡은 곳이기 때문이다. 즉, 앞쪽뇌는 CEO, 뒤쪽 뇌는 부하 직원이 되는 셈이다. (_p.43)

 

 이를 바탕으로 앞쪽 뇌를 키우는 스와프(SWAP- Speaking(말하기), Writing(글쓰기), Active Discussion(토론), Presentatoin(발표))을 권하며, 다음과 같이 앞쪽 뇌를 키우는 10가지 습관을 소개하고 있다.

 

1. 외국어 공부가 뇌를 키운다

2. 꿈과 목표 갖기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3. 작은 일을 반드시 마무리 하라

4. 선공부 후놀이 규칙을 이용하라

5. 남의 답을 보기 전에 내 답부터 찾자

6. 운동은 '미친 실행력'을 부른다

7. 뒤쪽 뇌를 자주 닫아라

8. 위-아래 방식으로 살아라

9. 사람을 소중하게 여겨라

10.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되라

 

 

 

제 Ⅱ부. 뇌미인의 적, 치매란 무엇인가

 

 실은 2부를 통해서는 희망을 얻을 수 있다. 무슨 말일까? 이 파트에서는 크게 혈관치매와 퇴행성치매인 알츠하이머, 그리고 역시나 퇴행성 치매인 전두측두치매(앞쪽뇌 치매)를 주로 다루고 있다. 각각의 치매에 대한 이해를 도우며, 그에 대한 증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외에도 여러 치매가 있지만,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하는 치매들이 위에서 언급한 치매들이다. 여기서 희망을 얻을 수 있다고 한 이유는, 위의 치매들 중 혈관치매는 미리 예방이 가능하고, 증상이 나타난다고 해도 조기 발견한다면 진행을 막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혈관치매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흡연, 심장병, 운동부족, 비만의 7가지 위험 요소를 주의해야 한다. 전체 치매중 혈관치매까지 포함하여 고쳐지는 치매는 40퍼센트에 달한다고 하니, 관리만 잘 한다면 치매에 걸릴 확률은 더 낮아지는 것이다.

 

 

 

 

제 Ⅲ부. 뇌미인이 지켜야 할 인지 건강 수칙

 

'PASCAL'이라는 노인의 생활 습관과 인지 건강과의 인과관계를 연구하여 6개의 수칙을 만들어낸 이윤환 교수의 수칙에서 따와, 나덕렬 교수는 우리 국민들에게 홍보하기 위한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문구를 만들었다. (본뜻: 진인사대천명- 노력을 다한 후에 천명을 기다린다)

 

 

'진인사대천명'

 

땀나게 운동하고

정사정없이 담배 끊고

회 활동과 긍정적인 사고를 많이 하고

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박하게 술 마시지 말고

을 연장하는 식사를 하라

+

'3고[(GO); 고혈압, 고혈당, 고지혈] 관리법'

 

 

 

제 Ⅳ부. 예쁜 치매 미운 치매

 

 3부까지의 내용이 뇌미인이 되는 법, 여러 치매에 대한 이해, 습관성 치매를 예방하는 방법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면 4부는 '그래도 만약 치매에 걸리게 된다면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를 담고 있다고 보면 된다. 즉 생활 습관을 바르게 고치는 등 뇌미인이 되기위한 건강 인지 수칙을 잘 지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매에 걸린다면, '예쁜 치매'를 만들자는 것이 바로 4부의 목표이다.

 

 이 책에서는 치매 환자에 대한 다양한 증례들이 나왔다. 그러나 앞부분 까지는 주로 '미운 치매'에 대한 사례들을 봤기 때문인지, 치매에 대해 아직도 두렵고 걱정되는 마음은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4부에 나오는 예쁜 치매 환자들의 사례들을 보고 나니 한순간 마음이 가벼워지며, 심지어 절로 미소까지 지어졌다. 주위에는 이렇게 예쁜 치매 환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전두엽 동기센터가 망가져서 하루 종일 잠을 자고 아무것도 안하기 때문에 말썽 피울 일이 없이 얌전한 경우, 이는 나덕렬 박사가 말하는 예쁜 치매에 해당되지 않는다. 나덕렬 박사는 밝고 명랑하고 긍정적인 치매를 예쁜 치매라고 보고 있다.

 예쁜 치매 환자들의 사례를 살펴 본 결과, 환자들의 평소 성격을 보호자들에게 물어보니 한결같이 바르고 남을 배려하는 성격, 항상 감사하는 태도를 가지고 살았다고 한다.

 반면 본인과 보호자를 힘들게 만드는 미운 치매 환자들의 경우 본래 불같은 성품, 급한 성격, 의심많은 성격을 지닌 사람들도 있었지만 다른 경우도 있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남편이 바람핀 사실에 한을 품고 있었다가 치매에 걸린후 망상에 빠져 남편을 매일같이 의심하는 미운 치매 환자의 경우(드라마 뿐만이 아니라 실제 사례로도 많이 있었다), 억눌려왔던 감정, 본능이 터져 나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쁜 치매를 위해서는 평소 자신의 마음을 예쁘게 가꾸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힘들고 괴로운 일들을 잊을 줄도 알아야 한다. 또한 주변 사람들의 태도도 치매 후의 모습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예쁜 치매 만들기 솔루션

 

1. 긍정신경망 두껍게 하기

2. 부정신경망 없애기

- 자기 마음 들여다보기

- 부정적인 생각의 뿌리 없애기

- 과거의 나쁜 기억 지우기

3. 예쁜 부부가 예쁜 치매를 만든다

4. 집이 화목하면 치매도 웃어준다

5. 약물치료도 중요하다

 

 

 

 함께 사는 나덕렬 박사의 장모님께서도 치매 환자라고 하신다. 가정사라 언급하기 꺼렸을 수도 있으나, 화목한 나덕렬 박사의 가족들은 화목한 방향으로 상황을 받아들이기를 잘 했고, 덕에 책의 4부에 [우리 장모님의 치매 일지]라고 하는 부분을 실을 수 있었다. 치매에 대해 어느정도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가정내에 존재하고, 모두가 힘을 합쳐 조금씩만 노력한다면 충분히 예쁜 치매환자를 만들수 있다는 것, 치매 환자의 가정도 충분히 화목하고 평온할 수 있다는 것을 나덕렬 박사는 본인의 경험을 통해 증명해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 더 믿음이 갔고, 한편 안심이 됐다. 더이상 '치매'라는 병은 불행하고, 끔찍한 재앙이 아니라는 것, 충분히 예방가능한 습관병이며, 걸리더라도 오히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없이 서서히 준비하며 영혼의 부름을 받으러 갈 수 있는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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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은 어머니께서 요양에 관한 자격증을 따두셨는데, 실제 요양소에 가보니 치매에 걸린 많은 노인분들은 그 치매의 정도가 참 다르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치매에 걸렸는데도 불구하고 순하고 예쁘게 행동하시는 노인분들이 참 많다고 말씀해주셨다. 그 말을 들은 후부터 드라마속 안타까워 보이는 치매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머릿속으로 예쁜 치매들을 그리고 있었다.

 

 

 치매에 걸리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는 것도 좋겠지만, 만약을 위해서 예쁜 치매에 관한 것도 익혀 두는 것이 좋다. 나날이 치매환자가 늘어나는 요즘같은 때, 이 책은 중장년층의 필독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리 준비하고 올바른 습관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만큼, 젊은 세대들에게도 꼭 접해봐야 할 책이며, 여러 해결법을 담고 있기에 치매 환자나 치매 환자의 보호자들에게도 꼭 읽고 숙지해야할 내용의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의학적인 내용을 접하고 배웠을 뿐만 아니라, 나의 생활 습관을 되돌아보고, 생활 태도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또한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지내는지, 올바른 성품, 예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남들을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는 지 등 여러가지들을 반성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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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 정진홍의 900킬로미터
정진홍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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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업에, 자신의 미래에 대한 준비에, 직장에서의 고된 일에 지쳐, 불타는 금요일이면 친구들을 만나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눈다. 하루는 삼겹살에 소주를, 하루는 치킨에 맥주를, 하루는 곱창에, 하루는 막창과 닭발에. 이렇게 나를 절로 행복해지게 만드는 맛나는 음식과 더불어 술잔을 기울인다. 순간적일지라도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변하는 기분을 만끽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멈춰있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을 때가 많다. 이렇게 멈춰있는 것에 혼자 아파하고 우울해하고 힘들어 하는 것이 너무나 벅차서,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에게라도 털어놓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실은 이는 모두 자신 스스로가 짋어지고 가야 하는 일들이라는 것을.

 내 이런 속을 읽기라도 한 것일까? 나는 정진홍 작가의 이 책이 너무나도 끌렸다.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라는 제목부터, '정지통'이라는 생소한 용어까지. 들끓는 청춘에 멈춰있는 것만 같아 자책하는 내 맘을 들킨 것만 같아 뜨끔했고, 한편으로는 '나만 이러는 게 아니겠구나' 싶어 안도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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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이후, 산티아고 순례길은 중세 유럽의 역사에 그치지 않고, 다시 조명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 걷게 된 길이다. 물론 천 년 정도의 시간동안 꾸준히 순례자들이 있어왔지만, 이제는 전세계 곳곳에서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가는 길이 된 것이다. 본래는 카톨릭 순례길이지만, 이제는 단순히 종교에 국한되지 않는 길이 된 듯 하다. 유네스코에도 지정된 800킬로미터에 달하는 산티아고 순례길. 요즘에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매우 많이 가고, 그 때문에 산티아고 순례길과 관련한 책들이 심심치않게 나오고 있다는 것은 서점에 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 여행기가 아니다. (물론 다른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한 책들에도 모두 각자의 여행길에서 얻은 귀중한 깨달음이 많다. 그 질을 비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의 목적에 중점을 두고 싶은 것 뿐이다.) 순례길을 걸으며 한 사람의 인생 철학이 정리되어 이 책 속에 담겼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책 속에 사진이 그리 많지도 않다. 예쁘고 멋진 여행길을 소개하고자 한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

 

.

 

(책 표지는 내 마음을 실은 조금 서늘하게 만들었다. 약간은 어두운 때, 구름이 하늘을 가득 덮고있는데 사진 속 길에는 순례자 동상들만 보일 뿐 사람의 존재는 느껴지지 않는다. 황량하고 쓸쓸하지만 책의 제목과 참 잘어울리는 사진이다. 그리고 저 어둠은 알고보면 동틀 무렵, 동트기 직전의 배경이라는 것. 그러니 조금 고독하고 쓸쓸해도, 어느정도는 혼자 힘으로 조금 더 감내해보자.)

 

 

 

_p. 110 내버려둔다는 것은 본래 그것의 성질과 기운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내 안의 힘이 원기 회복을 하도록 기다리고 배려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버려둔다는 것은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본래의 생겨먹은 그대로의 기운과 성질을 회복해 자기다움을 되찾도록 만드는 보다 근원적인 자기 사랑의 한 방법이다. … 불안에서 벗어나 있을 때 비로소 내버려두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내버려둔다는 것이 행복할 수 있고 또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 될 수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렛 잇 비’는 불안에 지지 않고 불안에 포박당하지 않을 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_

 

 

 우리는 '나 좀 내버려 둬.'라는 말을 남에게 몇 번이나 해오고 살았을까. 실은 그 말은 싹수 노란 자식이 부모를 향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요(그 싹수 노란 자식이 아무래도 나겠지만은), 마음 상태가 복잡할 때 귀찮게 구는 친구에게나, 작정을 하고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겉으로, 혹은 마음속으로 몰래 그 말을 내뱉고는 한다. 그런데 남한테는 수없이 외쳐온 그 말, 나한테는 과연 몇 번이나 해왔을까? 남이 나를 괴롭히거나 귀찮게 굴 때는 좀 내버려두라고 하면서, 정작 내가 내 자신을 괴롭히고 있지는 않은 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렇게 반성을 해본다. 기억을 더듬는다. 조금 더 가본다. 과거로 가본다.

 

 

 

 

 

 어렸을적의 나와, 지금의 내 모습을 비교한다면 나는 얼마나 많이 달라져 있을까? 우선 그 때만큼 순수하지 못하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고의 복잡함'이 있었다. 아마 이는 내가 너무나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손에 쥐게 되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나는 어린 시절에 비해 갖고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이 훨씬 많다. 그런데 그 때에 비해 나는 부족함을 훤씬 많이 호소한다. 욕심은 더욱 많아졌고, 그에 비례해 부족함을 느끼는 마음도 더 커진 것 같다. 그나마 요즘은 철없던 중고등학생 때나 갓 대학생이 되었을 무렵에 비해 부족함을 대놓고 호소하는 경우가 드물긴 하나,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부족해하고, 허전해한다. 그러다보니 발걸음은 무거워지고, 걸음은 느려지다 못해 자주 멈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를 인생배낭에 비유해 내 마음을 확 휘어잡는다. 아무래도 나도 곧 여행을 갈 예정이라 그런지, 이 비유가 참으로 현실적이게 느껴진다.

 

 

_p. 23, [인생 무게만큼만 짊어지고 가라] 中 ;

털어야 할 대목에서 털지 못하면 우리네 인생배낭은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차버린다. … 인생배낭의 잡동사니들은 대개 미련이거나 회한이거나 쓸데없는 미움과 증오이거나 정말 쓸모없는 시기이거나 후회다. 우리 인생길이 힘겨운 진짜 이유는 그런 잡동사니를 버리지 않고 인생배낭에 꾸역꾸역 구겨 넣은 채 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련, 후회, 회한, 미움, 증오, 시기 등의 찌꺼기 같은 잡동사니를 버리고 소망, 꿈, 도전, 화해, 사랑, 모험을 담아 자기의 인생배낭을 다시 꾸려야 하지 않겠나. _

 

 

 

 

 

 어렸을적의 나와 지금 나의 모습 비교 또 하나. 나는 지금도 종종 길을 잃는다. (물리적 길은 잘 찾는다. 적어도 흙으로 된 땅 위에서 나는 길치가 아니다.)

지도를 펴놓고 아무리 길을 확인하고 또 확인해도, 조금 가보고 나면 어라? 이거 내 길이 아니다. 아무래도 내가 가고 있는 길은 숨겨진 구석구석, 골목길을 지나야 하는 모양인걸까. 남이 그려놓은 지도만 보고 따라 가려고 하니, 좀처럼 내가 상상한 풍경은 나오지를 않는다. 그저 막막하다. 몇 번을 더 길을 잘못들고, 얼마나 더 걸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막연하다 못해 두렵기까지 한게 어디 한두 번일까?

 

_p. 84, [내 안의 나침반을 믿고 나아가라] 中 ;

대개의 인생길 위에는 화살표도 없고 그것을 표시해주는 지도도 없다. 오직 내 안의 자기만의 방향감각만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뿐이다. 바로 그 자기만의 방향감각이 곧 내 안의 나침반인 셈이다.… 세상의 온갖 잡동사니를 내 안으로 끌어들여 교란을 일으키는 내 안의 나쁜 자석들을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 그래야 내 마음의 나침반도 제대로 돌아가고 내 안의 방향감각도 오롯하게 살아난다. 삶의 기로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는 먼저 나쁜 자석들을 치우라. 그리고 침잠해서 내 마음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라. 거기 나아가야 할 방향이 또렷하게 나올 테니깐. _

 

 

 

 

 그런가보다. 남들은 당연히 내가 아니고, 내가 꿈꾸는 길을 가는 이들이 아니다. 남들이 그려놓은 지도는 내게 여행길의 지팡이처럼 어느정도의 도움만을 줄 것이다. 직접 걷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고독은 나쁜 것이 아니다. 고독이 있어야만 사람이 비로소 사람다우며, 고독은 인간이 독립된 존재로서 일어서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각자에게 저마다의 길은 다르므로, 남에게 의지만하며 살아 갈 수 없는 노릇. 자신의 길은 그리고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짊어지고 가야하는 것이다.

 

 주변의 시선과 세상의 잣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있는 그 무언가를 끝까지 믿고 자신만의 길을 걸으라고 다독여주며 일깨워주는 이 책이 참 좋다. 지금 내가 겪는 고독이 절대 불행한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주었고, 내가 가지지 못한 많은 것들이 실은 내가 가볍게 삶을 여행하기 위한 필수적 요소였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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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동기중 하나인 '정지통'이라는 단어. 이 단어는 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님을 책을 다 읽고 난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나는 누가 뭐래도 아직도 성장통을 앓는 중이다. 아무래도 이렇게 예상을 빗나가게 되는 순간 순간이 바로 책읽기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하며...

 

 

* 정진홍 작가님께

- 이 책에서 아버지를 느낍니다.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한다’는 제목과 ,성장통이 아닌 ‘정지통’이라는 말에 끌려 책을 읽었습니다. 물론 산티아고 순례길을 통해 단순 여행기가 아닌 자신만의 인생철학을 발견하려 했던 작가님의 모습도 좋았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저희 아버지 연배의 중년 남성의 향기가 물씬 풍기더랍니다. 작가님께서 느낀 그 수많은 감정이 실은 우리 아버지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찡했습니다. 아버지를 조금 더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을 위해 읽었던 책이 어느 순간 내 아버지, 우리 가족을 위한 책이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http://www.cyworld.com/lovecoboong/9174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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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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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광란의 도가니, 현실의 참담함





무진기행도 그랬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더더욱.

왜 가보지도 않은 무진이라는 곳이

음습하고 숨막히고 무서울까.

무진의 안개는 삶과 현실의 참담함에 무게를 더한다.

 

청각장애아들에 대한 폭행과 성폭행이 벌어지는 학교.

이 소재에 대한 궁금증이 나로 하여금 책을 들게 했지만,

읽는 내내 가슴을 짓누르던 답답한 그 무언가는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기대하던 결말이 아니어서 그런걸까.

그렇게 좋아라 하는 드라마의 결말들처럼

쉽게, 편하게, 다시 두 눈과 두 귀를 닫을 수 있게 만드는

그런 편안함이 없어서 일까.

드라마를 볼 때와는 달리

진짜 현실의 참담함을 깨닫게 되어서 일까.

읽고 난 후, 기분이 좋아지기는커녕

마음이 더 무거워 진다.

 

아니겠지, 아니겠지

설마 이게 실제로 일어난 일은 아니겠지

그러나 이게 실제 사건이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아- 상상하기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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