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베니스의 상인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6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평점 :
대립에 있어서, 선과 악의 구분을 두고 싶지 않은 작품
정진홍 작가의 책을 독자 모니터 한 후, 출판사 문학동네로부터 받은 세계문학 전집3권. 지난번 모니터링때 받은 책과 합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은 총 6권이 있는데, 앞으로는 내 돈으로 사들여야겠다. 현재 100권 까지 나와있으니, 나는 언제 그 많은 책들을 다 사모을 수 있을까?
이 책들 중 내가 가장 먼저 집어든 책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이었다. 우선 내가 요즘 고3때와 비슷한 수면시간을 유지할 정도로 바빴고, 매일 가방속에는 공부할 책들로 꽉차서 더이상은 무게를 더하고 싶지가 않았기에 가장 얇은 책을 골랐다는 시시껄렁한 이유가 이 책 선택의 배후에 존재했고, 다른 이유 하나는 약 2개월 후에는 난 베니스에 있을테니까. 여행지와 관련된 책들을 먼저 읽어보고 싶은 욕구가 컸다고나 할까.
책 표지의 사진은 베니스의 상인과 큰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상적이다. 물의도시 베니스에 정말이지 유명한 것이 각양각색의 예쁜 가면들이라고 하는데, 아마 그 때문에 위의 사진을 표지로 삼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셰익스피어가 희곡작가라는 사실은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부끄럽게도 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렸을 적 읽은 청소년들을 위한 얇은 책의 셰익스피어 전집 말고는.

매일같이 줄글 형식의 책만 읽어오다가, 이렇게 대본형식의 글을 읽자니 재미가 쏠쏠했다. 참고로 외국의 고전, 그것도 꽤나 오래된 작품을 우리말로 완벽하게 번역해내기란 참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출판사마다 번역자들도 각기 다르고, 같은 번역자라 할지라도 한 작품을 여러번 번역해내는 일이 허다한 것 같다.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원작에 더 가깝게 번역해내기 위해서.
문학동네의 세계문학전집은 이경식 교수가 번역한 작품인데,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번역으로 1997년 한국번역대상을 수상한 작가라고 한다.
이 작품은 1500년대, 즉 16세기 후반 쓰인 작품인데 당시 유럽사회는 절대 왕정과 중상주의, 삼각무역, 식민지 쟁탈전이 활발히 시작되고 진행되어 가던 시기였지만 아무래도 이탈리아는 대서양이 아닌 지중해에 있던 나라이다보니, 이 작품에서 그런 격변의 사회분위기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 듯 하다. 다만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바와 같이 당시 베니스는 상업이 강성했기에 작품속 주요 인물은 상인으로 그려졌고, 고리대금업자또한 등장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상인과 고리대금업자의 강한 반목이 작품속에 나타나게 되는데, 베니스 상인으로 대표되는 앤토니오가 기독교인이고,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이 유대인이라는 점이다. 그 당시 기독교인과 유대인이 강하게 반목했고, 유대인이 기독교인에게 멸시와 핍박등을 받던 베니스의 사회적 분위기를 잘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작품속에는 크게 두 줄기의 이야기가 등장한다고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기독교인 베니스의 상인 앤토니오가 친구 바싸니오에 대한 우정과 믿음이 워낙 극진한 나머지 친구를 위해 다른 곳에 여러차례 빚을 지게 되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그렇게나 무시하고 멸시하던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가서 빚을 지는 것과 관련, 벌어지는 소송과 재판을 다루고 있다.
두 번째로는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은 벨몬트의 상속녀 포오셔를 향한 구혼의 이야기가 나오고, 이 두 사건은 바싸니오를 통해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당시 기독교인과 유대인의 대립이 이렇게나 심했는지 몰랐던 나는 작품을 읽으며 놀랐다.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색안경을 단단히 끼고 사람을 짐승이하로 대하는 듯한 기독교인들의 태도가 불만이었다. 자신들이 엄청나게 도덕적이고, 유대인을 굉장히 잔인하고 몰인정한 사람으로 몰아가지만 실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정말이지 고약하고 끝까지 자비란 없어 보이는 유대인 샤일록이 불쌍해보이고 그 심정이 이해갈 정도였달까. 아무래도 그 점이 이 작품의 뛰어난 점이 아닐까 싶은데, 바로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_p.26 앤토니오 : 샤일록, 나는 이자를 수수하는 금전거래를 해본 적이 없지만 내 친구의 시급한 필요를 해결해주기 위해서 관행을 깨려 하오.
(바싸니오에게) 자네가 얼마를 원하는지 이자가 알고 있는가?
샤일록 : 예, 예, 3천 다가트. / 앤토니오 : 그리고 3개월간.
샤일록 : …(중략), 자, 그러면 차용증서를. 가만있자. 이보십시오, 당신께서는 방금 이자를 수수하는 금전거래는 안 하신다고 말씀하셨으면서.
앤토니오 : 그런 일은 결코 안하오.
→ 끝까지 이렇게 말하면서 돈을 빌리는 앤토니오. 이 부분만 봐도 기독교인을 점잖아 보이지만 어떤 식으로 그려냈는 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이 희극으로 분류되기는 하나 딱히 희극으로 보고싶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작품이든 선인과 악인이 존재하고, 선인이 승리하게 되면 희극적 결말, 선인이 굴복하게 되거나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비극적 결말로 볼 수 있다. 악인이 패배하고 죽게되는 경우에 그 작품을 악인의 입장으로 판단해서 비극이라고 보지는 않지 않은가. 그런데 이 작품의 경우 조금 예외다. 작품속에서 유대인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은 유대인인 샤일록을 철저히 악인이라 생각하고 또한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녹아나기는 하나, 작품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 작품이 그런 기독교인들의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모습 또한 비판하고 비웃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점이 작가가 의도한 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뚜렷하게 역할을 정의하지 않았다는 점. 이분법적이고 흑백논리 가득한 사상 대신, 그에 얽매이지 않을 판단을 독자들에게,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
내가 어릴 적에는 찾지 않던 고전을 나날이 찾게 되는 이유로는 물론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생각나는대로 한 가지를 뽑아보자면 바로 '예쁜 말'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본능을 숨기지 않고 뜨겁게 표출해 내는 것, 솔직하게 제 감정을 예쁜 말속에 담아 표현해 내는 것, 아주 진지하고 진중한 대사이나 그 대사를 하는 이도 받는 이도 어색해하거나 요즘말로 오그라들어하지 않는다는 점, 그래서 그 말들을 온전히 내 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는 점이 고전의 매력 중 한 가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_p. 18 … 두뇌는 격정을 다스릴 법률을 마련할 수 있지만 뜨거운 정열은 그 냉엄한 법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법이란다. 젊은이는 미친 산토끼와 같아서 좋은 충고를 절름발이쯤으로 여기고 그 충고의 그물을 뛰어넘으려고만 해.
_p. 55 … 비너스의 마차를 끄는 비둘기들은 새로운 사랑을 맺어주기 위해서라면 이미 맺어진 사랑을 충실히 유지시키려는 때보다는 열 배는 더 빨리 날아가는 법이지! / 잔칫상에 앉을 때와 같은 강렬한 식욕을 느끼면서 잔칫상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세상 어느 말이 한번 지나온 지루하고 힘든 길을 감소되지 않은 열의로 다시 달려가겠는가? 세상만사는 손에 넣고 즐길 때보다는 손에 넣으려고 쫓아다닐 때 더욱 신 나는 법이지.
_p. 83… 외양은 속과 아주 다를 수 있지. 세상은 여전히 가식에 속고 있어. 법에서도 아무리 더럽고 부패한 소송도 그럴싸한 언어로 양념을 하면 악행의 외양이 희미해지지 않는가? 종교에서도 아무리 저주받을 잘못이라도 목자가 엄숙한 얼굴로 축복해주고 성경으로 다시 증명해주면 그 흉악함은 번지르르한 장식으로 가려지는 것이 아닌가? 소박한 악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겉에 미덕의 표지를 달고 있기 때문이다.
_p. 97… 언제나 회동하여 시간을 같이 보내는 친구들 사이에는 그들의 영혼이 다 같은 사랑의 맹세에 매여 있기 때문에 틀림없이 용모, 태도, 정신의 유사점이 있다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