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협 나남문학번역선 12
하하키기 호세이 지음, 정혜자 옮김 / 나남출판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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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썼다는 사실이 놀라운,
그러나 일본인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이야기!
 
 
한 장 한 장 쉽사리 넘길 수 없는 무거운 소설이다.
3일간 꼬박 밤을 지새워가며 눈시울이 붉혀졌다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애틋하고 억울하기를 몇번이나 겪어야 했는지 모른다.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이십여 년 전 일본인 작가가 쓴 식민지 조선인 강제징용에 관해 불편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다수의 한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일본과 우리나라 간 역사문제에 대해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다. 선뜻 책장을 열기까지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몇 장을 읽기도 전에 보통의 일본인 시선이라 믿기 힘든 만큼의 죄의식과 고달픈 우리 선조의 당시 묘사에 넋을 잃었다. 저자의 실제 의식에 어떠한지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책 속에서 만큼은 올바른 역사의식을 갖고 있는 소수의 일본인이었다. 어째서 이십 년이나 흐른 지금에서야 이 책이 한국어로 번안 출간되었는지 무척 안타깝다. 동시에 이제라도 이 책을 발견해 번역한 역자와 출판사 나남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다.

 

1943년 가을 어느 화창한 날의 급작스러운 강제 징용으로 일본의 탄광 노동자로서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지옥에서 끝없이 탈출하고자 했던 조선인들, 해방 이후 여전히 가난하기만 했던 조선, 그리고 또 한 번의 비극 한국전쟁, 제주 4.3사건과 일본군 위안부였던 여성의 삶까지. 그야말로 우리 역사 속 손꼽히는 모든 비극들이 일본작가에 의해 세세하게 그려진다.
일본은 자신들의 역사에 눈을 감고 타국을 유린했던 흔적을 망각으로 덮어버리려 했다. 그들은 지금, 죽은 자 위에 구축된 역사를 말살하려고 한다. 나는 죽은 이들의 역사를 지켜 그들의 절규를 우리 세대에 전하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세 번째로 대한해협을 건넌 이유이다.
17세 소년이었던 주인공 하시근이 40여 년 만에 대한해협을 다시 건널 결심을 하기까지 그의 삶은 오롯한 그의 것이 아니었다. 폐석산에 두고 온 동료 조선인들의 피와 넋을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고 생의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는 그 날 그는 비로소 그들과 만날 수 있었다.
 
세계 역사 속 모든 비극은 근원이 같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쩌면 그렇게까지 잔인할 수 있는 것인지, 심지어 조선인이 조선인에게 같은 민족으로서 왜 꼭 그랬어야만 하는지.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재일 한국인 환자들과 심층적으로 만난 결과물로 <해협>이라는 대단한 한국 역사 소설을 쓸 수 있었다. 일본인이기에 쓸 수 있었던 내용까지, 잔인한 비극들 속에서도 휴머니즘을 붙잡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깝고도 먼 나라 한국과 일본.
"아버지. 연락하려 해도 한국과 일본이 너무 멀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두 나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먼 나라일지도 모르지요." (p. 248)
 
 
독일이 기회 있을 때마다 자신들의 과오를 뉘우치고 끊임없이 역사를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본은 자신의 행위에 눈을 감고 타국을 유린했던 역사의 흔적을 망각으로 덮어버리려 했다. 한민족에게 '열등민족'이라는 낙인을 찍고 무력침략과 경제적 착취를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추진했으며, 조선통감부와 조선총독부를 근거지로 한민족의 저항에 폭력과 탄압을 계속 자행한 일본. 5천년의 역사와 함께 고유 글자마저 폐하고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성과 이름까지 강제로 개명시켰던 일본.
그러한 과거의 일본을 사실 그대로 인식할 수 있는 일본인의 과연 몇 사람이나 있을까.
...
'모든 원한은 강물에 흘려버린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것은 피해를 입은 쪽에서 할 말이지 가해자가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 (p. 64)
 
우리는 미래에서 배울 수는 없다. 과거 속에 우리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이 들어 있다. (p. 65)

 

그리고 그들의 애처로운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배 곯고 얻어맞고 우리는
지옥에서 석탄을 캔다오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라가 명을 다해 나라를 도둑맞고
우리는 가축 같은 삶을 산다오
... (p. 144-145)
 
 
 
*오탈자?
p.132 / 12번째 줄 / "기쿠지 빈장님." -> "기쿠지 반장님."
p.400 / 16번째 줄 / 남자로써 그 이상의 모욕은 없어. -> 남자로서 그 이상의 모욕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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