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 송한나의 뮤지엄 스토리 -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황학동 도깨비 시장까지
송한나 지음 / 학고재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당신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가 보았습니까?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많은 한국인들이 놀랍게도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박물관을 비롯한 세계적인 박물관에 가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가까이에 있는 우리의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아직' 못 가본 사람이 많다. 나 역시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자연사 박물관, 미국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뮤지엄, 피츠버그 앤디 워홀 뮤지엄 등 미국을 비롯한 해외여행 시 투어 리스트에 유명 박물관이 있지만, 부끄럽게도 국립중앙박물관조차 가 보지 못했다.

이 책을 읽은 지금에서야 아니 한국사에 관심을 가지던 얼마 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 발걸음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국립민속박물관에도. 가야 할 데가 많다!!

 

사실 우리의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 유수의 박물관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 영상 자료, 소장품의 정보화, 박물관 종합정보시스템 등 첨단 유비쿼터스 박물관으로서의 역할은 물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문화 행사도 연중 끊이지 않는다. 2010년에는 세계 박물관 중 관람객 수 아시아 1, 세계 10위라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p. 106)

이처럼 세계에서 손꼽히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국립중앙박물관. 혹시 나와 같이 안타깝게도 아직 못 가본 분들이 계시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꼭 다녀오기를 권한다.

 

 

 

세상의 모든 박물관은 나란 존재가 오늘 여기에 있게 된 과정을 담고 있다. 잘 찾아보면 그곳에 숨어 있던 내가 보인다. 세상에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과연 누가 지루하다고 할 수 있을까? 박물관은 주인공은 유물이 아닌 인류, 곧 나다.

이 책에 나오는 박물관은 모두 내가 실제로 보고 느끼고 걸었던 곳이다. 국가대표박물관인 국립중앙박물관부터 수도박물관 같은 작은 박물관까지 각각의 박물관에 깃든 재밋거리를 찾아 소개하고자 했다. 공공미술작품이 놓인 거리도, 북적이는 시장도 소중한 삶의 박물관이 될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핵심이다. 박물관은 세상을 담고 세상은 박물관을 닮아간다. (머리말)

 

 

<큐레이터 송한나의 뮤지엄 스토리>는 국내 주요 박물관을 비롯해 작은 박물관, 거리의 공공미술작품, 해외 이색 박물관, 본받을만한 다채로운 박물관들을 소개해 준다.

 

처음 소개되는 박물관은 2012년 5월 문을 연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이다.

몇 년 전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 위안부할머니들의 수요시위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나는 대학교 과제때문에 고작 한 번 갔던 것이지만, 피해 할머니들은 1992년 1월부터 현재까지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온갖 궂은 날씨에도 매주 수요일이면 휠체어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라도 모인다. 열다섯,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감당치 못할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당하고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을 되살려 진실을 위해, 또 미래 평화를 위해 여전히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그녀들.

큐레이터의 어원인 라틴어 쿠라cura’돌봄, 치유라는 뜻이다. 좀 아득하지만 무척 사랑스럽고매력적인 어원이라고 생각한다. (p. 15)


어렸을 적 <안네의 일기>를 통해 홀로코스트라는 세계 역사 중 가장 끔찍한 그 일을 처음 알게 되었다.

열세 살 안네, 또래인 그녀의 일기를 읽으며 웃기도 울기도 참 많이 했다.

이후 홀로코스트와 유대인에 적지 않은 관심이 생겼고 혼자 미국 홀로코스트 뮤지엄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런데 세계 곳곳에 이렇게 많은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있는 줄은 몰랐다.

 

다윗의 방패라는 의미이자 유대인 공동체의 상징인 다비드 별 뒤로 유대인을 기리는 시와 히브리어로 잊지 말아라라는 말이 새겨진 기념관의 외관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여러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답사한터라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잊지 말아라라는 단어에는 나름의 절박한 울림이 있었다. 나는 새로운 세대가 70여 년 전의 사건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세계 곳곳에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2,600개 이상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지를 새기며 관람을 준비했다. (p. 34)

 

박물관은 단순히 기억을 보존하는 곳에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말 그대로 화석화된 역사에 대한 집착일 뿐이다. 기억을 넘어 기억하는 행위까지 담기 위해 애쓰는 쇼아 기념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p. 40)


외국인들은 한국을 여행할 때 필수 코스로 판문점과 DMZ박물관을 방문한다고 한다. 한국인들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한국'에 대해 더 관심이 지대한 외국인들.

군대에 다녀온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6 25일이면 어김없이 방송되는 6.25전쟁에 대한다큐멘터리를 시청하면서도, 북녘 땅의 가족을 찾는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면서도 나는 우리가 분단국가라는 것을 잊고 살았다. 분단된 땅에서 태어나 일생을 살아온 내게 6.25전쟁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다. (p. 83-85)

 

나 또한 평소 우리나라가 휴전상태이며 내가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때로 외국인이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것이 무섭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그제서야 '아... 그렇구나... 무서울 수도 있구나.'하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쩌면 한국 관광을 온 외국인들보다 사실은 더 안 가본데 많고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만 하다. 참 가보아야 할 곳이 많다...

 

그렇다고 이 책에 전쟁과 같은 어두운 역사에 대한 박물관만 나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내 꼭지 박물관이나 해외 셜록홈즈 박물관 같은 귀여운 곳도 많고, 공공 예술 작품도 많이 소개되어 있다.

일명 ‘1퍼센트 법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우리나라는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을 지을 때, 건축비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회화·조각·공예 등 미술 작품을 설치하는 데 사용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문화예술진흥법 제2 9).

거리의 조형물은 예술 작품으로 인식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생활 속에 녹아들어 작품이라는 것을 깜빡 잊는 것이다. 하지만 거리에 설치된 공공미술 작품은 거리에 생기와 표정을 불어 넣어주는 일상 속의 예술 작품이다. (p. 113)

 

<큐레이터 송한나의 뮤지엄 스토리>는 단순히 박물관 안내서가 아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어쩌면 지루한 안내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감히 얘기하자면 저자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에도 상당한 재주가 있다. 에세이 같은 면도 이 책을 읽으며 흥미를 느낄 수 있는 큰 요소다.

 

박물관은 인류가 남긴 흔적을 모아 공공의 기억을 만드는 공간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순간도 언젠가는 박물관의 한 부분을 이룰 것이다. ‘박물관 같은 삶을 산다는 게 별건가. 나날의 삶을 의미 있는 기억으로 채워나가는 일이다. 그런 박물관 하나쯤 가진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p.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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