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보바리 을유세계문학전집 109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진인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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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는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당시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을 떠들썩하게 했던 간통을 저지른 의사의 아내가 빚에 쫓겨 음독자살한 들라마르 사건을 소재로 4년 반의 집필 기간 동안 작성한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특이한 것이 있는데, 관찰자 입장에서 객관적인 시선에서 소설을 읽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샤를의 입장에서 시작하여 에마 다시 샤를 등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한다고 느껴진다. 그런 묘사가 소설의 진행을 이끌어가는 그 시점에서의 주체에게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전체적인 소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린 시절부터 이상적인 사랑과 삶을 꿈꾸었던 에마가 의사인 샤를 보바리의 두 번째 아내가 되었다. 하지만 지루하게 느껴지는 일상의 삶 속에서 샤를과 로돌프를 통해 새로운 사랑과 삶을 꿈꾸게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막대한 빚을 지면서 그 현실을 이기지 못하고 음독자살하게 된다. 에마의 죽음 이후에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샤를도 죽음을 택하면서 소설은 끝나게 된다.


사람에게 기질이란 게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이 있어 평생 같을 수도 있겠지만, 또 세월이 흐르면서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에마는 과연 타고난 어떤 기질을 타고났던 것일까?


그녀는 어떤 때는 천진난만한 눈을 뜨면서 쾌활해졌다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권태에 잠긴 시선으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생각에 빠져들곤 했다.

아직 샤를이 뒤뷔크 부인과 결혼한 상태로 에마를 만나러 갔을 때도 에마는 자신의 현재 삶에 권태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결혼 후에 스스로도 인정하게 되지만 샤를과의 만남에서 사랑을 느낀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벗어날 어떤 기회가 더 소중했을지 모르겠다. 누구나 항상 현재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최소한 나는 현재 삶에서의 일탈을 꿈꾸고, 그래서 작은 시도이지만 여행을 계획하고 떠나는 것을 즐겨 했다. 때로는 낯선 곳, 예를 들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숙박업을 하며 살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지도 했다.



비단 삶의 거주지만이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에마가 스스로의 선택으로 그 길을 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의 여성의 삶에서 주체적으로 혼자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녀는 샤를을 통해, 로돌프, 레옹을 통해서만 현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유를 자신이 꿈꾸는 사랑을 위해서라고 스스로에게 납득시키지 않았을까? 에마는 마치 사랑에 빠진 자신을 꿈꿔왔기에 그런 감정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같았다. 그녀가 느끼는 제약은 스스로 여자인 것에 대한 안타까움, 자녀도 여자가 아닌 남자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아들을 갖고 싶었다. 튼튼한 갈색 머리의 사내아이를 낳으면, 조르주라고 부르리라. 사내아이를 갖는다는 생각을 하니 과거 자신의 모든 무력감에 대해 앙갚음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느꼈다. 남자는 적어도 자유롭다. 여러 열정과 여러 나라를 두루 섭렵할 수 있고, 장애를 뚫고 나가 가장 멀리 있는 행복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여자는 끊임없이 금지당한다. 무기력한 동시에 유순한 여자는 법률의 구속과 함게 육체적인 나약함이라는 불리한 점을 갖고 있다. 여자의 의지는 끈으로 묶여 있는 모자의 베일과 같아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펄럭이는 데, 언제나 어떤 욕망에 이끌리지만 체면이 발목을 잡는다.


결혼하기 전에 그녀는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사랑에서 당연히 생겨나야 할 행복이 찾아오지 않자, 자신이 잘못 생각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에마는 책에서 그토록 아름답게 보였던 행복, 정열, 도취와 같은 말들이 실제 생활에서는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샤를과의 결혼은 그 해결책이 될 수 없었고, 그곳에서 벗어나려는 그녀의 시도는 로돌프와 레옹과의 밀회로 이어졌지만, 그 어떤 것도 결국은 완전한 행복으로 그녀를 이끌어주지 못했다.


샤를은 어떤 인물일까?

샤를은 군의관의 보조였던 한량 같은 아버지 밑에서 제대로 자라지 못했던 그는 남편으로 인해 자존심을 크게 상하였고 샤를만 바라보며 살아왔을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아버지의 영향으로 의사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버지와 다르길 원했던 어머니 밑에서 일견 우직한, 예의 바른, 재미없는 사람으로 성장하지 않았을까 싶다.

샤를이 에마를 사랑하는 방법은 조금 안타깝기도 하고 질책하고 싶어지기도 하였다. 그녀에게 최대한 맞춰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이 전부였던 것 같다. 그런데 정작 그녀의 내면에 관심을 가지지는 못했었다.


그렇지만 만약 샤를이 원했다면, 그런 짐작이라도 했다면, 그의 눈길이 단 한 번이라도 그녀의 생각에 닿았더라면, 과수장의 무르익은 과일이 손만 대면 떨어지듯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돌연 걷잡을 수없이 많은 것이 쏟아져 나왔으리라. 그러나 그들의 생활이 점점 더 밀접해짐에 따라 내면의 거리가 생겨 그녀를 그에게서 갈라놓았다.

이 시점부터 내면의 이야기는 서로 공유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샤를은 설마 에마가, 나아가서 다른 사람들이 에마를 대상으로 다른 마음을 가질 리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어떤 순간에는 그가 에마의 다른 사랑을 이어주기 위한 큐피트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런 관계에 대해서 무신경했다.

샤를과 에마는 서로의 행복에 대해 같이 공유하지 못했던 것이 이런 결말을 가져온 것 같다.


“당신은 행복하지 않았어? 내 잘못인가? 하지만 난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했는데!”

“네……그래요……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나는 당신을 원망하지 않아요."그가 말했다.

로돌프는 잠자코 있었다. 샤를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꺼져 가는 목소리로, 무한한 고통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어조로 다시 말했다.

"그래요, 더 이상 당신을 원망하지 않아요!"

심지어 그는 대단한 말, 그가 평생 한 말 중 유일하게 대단한 말 한마디를 덧붙였다.

"다 운명 탓이지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문체의 특성 때문인지 객관적인 입장에서 읽는다고 생각했다. 특히 성별의 특성으로 샤를에 대입해서 소설을 읽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어느새 시점의 변화로 인해 샤를에 감정을 투영하기가 힘들어지면서 더욱 떨어져서 바라본다는 느낌으로 읽었다. 그런데 이 마지막 부분에서의 별것 아닌 한 마디 뻔한 말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샤를과 에마, 그들의 딸 베르트의 삶은 운명적인 것일까 아니면 그들의 선택에 따른 결말인 것일까?

때때로 운명이란 게 과연 있을까란 생각에 빠져들 때가 있다. 내 삶에서 나를 제약하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나는 그런 것들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가는지, 살아갈 수 있는지 생각에 빠져든다.


※ 리딩투데이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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