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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놈은 아니지만 - 미처리 시신의 치다꺼리 지침서
김미조 지음 / 42미디어콘텐츠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죽음이 온다"
「빌어먹을 놈은 아니지만」
저승의 책방에 책으로 묶여 있던 미처리 시신의 주인들, 그들에게 이승을 다녀올 수 있는 18시간이 주어진다. 그들과 함께 이승의 세계로 가게된건 살아생전 대필작가로 활동했던 주인공 황익주이다. 황익주는 아직 자신이 왜 저승의 책방에 오게 된건지 알지 못한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 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익주. 그런데 그곳에 익숙한 인물이 앉아있다. 한때 형님이라 부르며 함께했던 헌책장 '솔' 의 주인인 김영필. 하지만 그는 실종됐고, 익주는 찾는 시늉만 하다 그를 잊고 살아왔다. 존재 자체를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려 애쓰기까지 했던 김사장이 눈앞에 나타나 자신에게 책을 먹으라 이야기 한다. 김사장이 건네 준 '치다꺼리 지침서' 를 한입 베어문다. 김사장은 또 한권의 책을 내민다. '시스템이 당신의 부를 결정한다' 는 자신이 살아생전 대필했던 책이었고, 첫번째 책과는 맛이 달랐다. 책을 먹자 자연스럽게 책의 내용들이 머릿속에 들어오고, 두번째 책과 관련된 망자인 S032-3905696-허08 (이하 허08) 과 이승을 향한다.
허08과 함께 그의 시신이 있는 옥탑방에 도착한 익주. 허08은 자신의 시신을 보며 비병을 지른다. 오만가지 생각들이 허08의 머릿속에 멤돌고 그 생각들은 익주의 머릿속에 고스란히 들려온다. 허08은 죽기직전 자신의 시신이 발견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다. 월세를 내야하는 날이 4일 지난 날 집주인이 자신을 찾아올거라는 계산을 해 두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 쇼핑몰에서 당일 배송 상품을 찾아 기필코 오늘 받아야 함 이라는 문구를 써두기까지 했다. 두가지 계획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더라면 자신의 시신은 이미 택배기사가 발견했어야 하지만 왠일인지 자신의 시신은 죽었을 당시 그대로 옥탑방에 방치되어 있다.
형의 폭력과 형수의 눈칫밥을 피해 무작정 이곳에 둥지를 튼 허08. 성공하기위해 이를 갈았다. 계속된 불합격, 하지만 허08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헌책방 '솔' 에서 발견한 한권의 책을 통해 자신을 업그레이드시키려 노력한다. 그 책이 '시스템이 당신의 부를 결정한다' 였다. 중요한 문장에 밑줄을 긋고, 메모지에 옮겨 적으며 열심히 독서를 한 허08은 나름 계획을 세우며 자신을 바꿔가기 시작했다. 허08은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열심히 살겠다는 의지를 품었으면서도 왜 죽어야만 했을까? 그리고 왜 그를 찾아오는 이가 아무도 없을까?
서로 다른 사연이 있는 듯한 시신들이 등장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조심스럽게 등장하는 연결점들! 책에 등장하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제외한 죽은 사람들 모두 시신이 수습되지 못한 미처리 시신 이다. 그들은 살아 생전 이름으로 불리지 않으며 그들만의 부호로 정해져 그들의 삶은 한권의 책에 고스란히 담긴다. K657-8377653-지31(지31), D356-0067348-노17(노17), K684-2789033-푸13(푸13). 모든 사람들의 삶에 연결점을 가지고 있는 김사장의 집안일을 돌봐주던 파출부 인숙과 그의 딸 시요.
설정 자체가 참 재미있다. 비록 죽은 후 무덤자리 하나 갖지 못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지만 내용이 심각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그러면서도 삶과 죽음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든다. 기발한 상상력이 더해진 스릴러라는 표현이 이 책에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