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곡
윤재성 지음 / 새움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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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범이 앗아간 것은 인간의 자격이었다."


화곡

너무도 착한 남자 형진. 길을 걸어가다 힘든 노인을 보면 도와주고, 불이를 보면 덤벼들고,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언제 어디서든 거침없이 돕고보는 누군가에겐 화곡동 자경단장이지만 누군가에겐 그저 육갑질 떠는 백수라 불리는 사람이다. 그날도 동생 진아가 차려준 아침밥을 말끔히 먹어치운 후 동네 어귀를 어슬렁거렸다. 그러던 중 노파가 쓰러져 있던 걸 발견해 구급차를 불렀고, 노파를 따라 병원에서 나오니 두 시간이 흐른 후였다. 자신이 가야할 아르바이트를 깜빡 한 채. 그렇게 형진은 아르바이트를 잘렸다.


집으로 돌아오던 길 집앞 골목 어귀에 쪼그리고 앉은 그림자를 발견한다. 이상한 느낌에 다가간 형진은 낯선 사람이 자신의 집벽에 검은 액체를 뿌리는 걸 발견하게 되고 이를 말린다. 한밤중 스키 고글에 스키 모자, 코와 목을 덮는 스키 마스크까지 끼고 있는 그는 천천히 일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뒤로 물러난다. 그순간 낯선 사람이 형진에게 끈적한 액체를 뿌렸고, 피비린내를 맡는 순간 피 묻은 얼굴이 발화했다.


눈앞에서 자신이 살던 월셋방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동생 진아가 집안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형진의 의식은 멀어져간다. 힘껏 소리치지만 고함은 입안에서만 맴돌 뿐 그렇게 형진은 의식의 끈을 놓는다. 그리고 8년. 흉측한 몰골에 노숙자가 되어버린 형진은 거리를 헤맨다. 8년전 병원에서 눈을 뜨자 마자 자신이 봤던 상황을 이야기하며 방화범을 잡아달라 말을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렇게 그 화재는 누군가의 담뱃불로 인한 화재로 마무리 되었고, 형진의 재수사 요구는 묵살됐다.


동생의 목숨을 앗아간 방화범을 쫓던 형진은 방화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 자신 역시 방화범이 될만한 상황들이 있었고, 늘 귓가를 멤도는 환청에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날 국제일보 사회부 기자인 김정혜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동안 숨어 지내던 방화범이 다시 활동을 시작하고, 방화범을 따라 하는 모방범까지 등장한다. 형진은 정혜와 함께 방화범을 쫓기 시작하고,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들을 간신히 벗어나며 조금씩 실마리가 보이는 듯 했다.


참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남에게 헤코지는 커녕 돈을 벌지 못했을 뿐 평범하면서도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던 그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건지 알 수 없었다. 많고 많은 사고중 화상을 입게되고 얼굴의 형채를 잃게 된 그가 살아온 8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끔찍하고 힘들었을지 감히 나로썬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동생의 목숨을 앗아간 진범을 잡고싶었을 뿐 이지만 사회는 그를 짐승보듯 밀어내기 시작했고, 그는 결국 알코올 중독자가 됐고, 땡전한푼 없는 빈털터리에 노숙자가 되었다. 8년이 지나 방화범이 다시 나타난 이후 사회는 또다시 그를 전과자라 지목했다. 책을 읽는 내내 답답했다. 하지만 나라고 달랐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얇은 책은 아니지만 흐름의 끊김 없이 순식간에 책이 끝나 버렸다.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이 책이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나 역시 드라마에 빠질 듯 하다. 글로 읽는 재미도 좋지만 머리로 상상하기에 벅찬 모습들이 영상으로 만들어진다면 어떻게 표현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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