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 - 전쟁이 끝나면 정치가 시작된다 임용한의 시간순삭 전쟁사 2
임용한.조현영 지음 / 레드리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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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례에 걸친 중동전쟁을 다루는 좋은 입문서가 출간되었다. 사실, 필자는 국내에 번역되어 소개되는 해외의 전쟁사 서적에는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다. 때때로 잘 이루어지지 않은 번역체의 문투가 독서의 흥미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동아시아 문명권의 어느 독자의 배경지식은 고려할 리 없는 전문적인 서술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한국인 전문가가 일반 대중의 지식 수준을 고려하면서도 내용의 깊이는 챙기는 본서와 같은 전쟁사 서적이 반갑기 그지 없다.


필자가 본서를 재미있게 읽은 몇 가지 포인트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물들의 서사가 방만하지 않다는 것이다.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한 1948년부터 ‘욤키푸르 전쟁’이라 일컬어지는 제4차 중동전쟁이 1973년까지 시대적 범위가 결코 짧지 않기에, 관련된 인물들을 꼽자면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본서는 프롤로그를 통해 이 기나긴 이야기는 이집트의 가말 압델 압세르와 안와르 사다트, 이스라엘의 메나헴 베긴, 모세 다얀, 이츠하크 라빈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임을 독자들에게 안내하고 있으며, 실제로 전쟁의 줄기와 이들의 서사를 집중하여 따라가면 어렵지 않게 완독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우위로 인식되기 쉬운 중동전쟁의 서사의 한 축을 명확하게 이집트에 두고 여기에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함으로써 서술의 균형추를 맞추고 양자의 대결구도를 보다 흥미진진하게 이끌고 있다. 가령, 제2차 중동전쟁에서는 이집트의 군사적 패배에도 불구하고 나세르가 국내정치와 아랍세계에서 확고한 권위를 차지하게 되는 “최종승자”였음을 강조하며, 제4차 중동전쟁에서는 사다트가 절치부심을 통해 전쟁 초기 전황을 유리하게 이끄는 모습과 이스라엘의 오판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셋째, 저자는 냉전 세계의 두 강국인 미국과 소련이 각각 이스라엘과 아랍권들을 배후에서 지원한 단순한 구도가 아니었다는 사실도 강조하고 있다. 두 국가가 자국의 무기들을 중동에 쏟아붓기는 했지만 미국은 베트남 전쟁 이후 중동세계의 분쟁 확대를 원하지 않았으며 “전지전능하지도 않고 모든 것을 알고 있지도 않”았다는 사실, 소련 역시 “미국의 힘을 제일 잘 알거나 제일 과대평가”했기에 군사 개입을 원치 않았다는 사실, 이집트 또한 시시때때로 소련과 미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다는 사실 등 국제관계의 복잡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본서의 결말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피로 쓴 평화”. 즉,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무수한 실패와 희생을 통해 겨우 공존의 길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두 나라의 지도자였던 사다트와 라빈마저도 자신을 “평화의 제물”로 바쳐야 했지만 말이다. 물론 적어도 두 나라 간의 군사적 분쟁은 이로써 종결되었지만 이것이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이라크, 이란에는 여전히 요원하고 불만족스러운 것”이었다고만 평가하기엔 불충분하다. 이후 중동세계의 분쟁은 더욱 커져만 가지 않았던가.

『이슬람 전사의 탄생』(정의길, 2015)은 제4차 중동전쟁 이후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평화협정이 사다트의 암살로 대표되는, 세속주의 정부를 타도하려는 지하드주의의 확산으로 이어짐으로써 오늘날의 중동분쟁을 이끈 중요한 변곡점이 되었다고 평가한다. 어찌보면 네 차례의 중동전쟁은 그 자체로 프롤로그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저자가 중동전쟁을 통해 전달하려는 평화적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리고 필자 또한 이에 공감하는 바이다. 본서에서 인용한 사다트의 이스라엘 국회 연설문의 한 문장을 되뇌어보며 소감을 마무리한다.


건축물의 폐허나 희생자의 발자취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나오지 않습니다. 항상 패자는 인간입니다.

- 안와르 사다트의 이스라엘 국회 연설문 中 (1977.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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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보는 서양사 만화라서 더 재밌는 역사 이야기 1
살라흐 앗 딘 지음, 압둘와헤구루 그림 / 부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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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를 다루는 저작들은 대체로 특정 전쟁의 경과와 이것의 역사적·전술적 의의를 다루는 것이 일반적인 서술이라 할 것이다. 본서가 흥미로운 것은 그와 같은 상술보다는 “멍청한 지휘관들이 벌여온 우스꽝스러운 전쟁의 역사”를 다룬다는 재미있는 문제의식을 선택한 것이다. 대체역사 저작으로 널리 알려진 『만약에 1: 군사역사 편』(스티븐 앰브로스, 1999)을 읽었을 때 느꼈던 소재의 흥미로움이 다시금 떠올랐다. 물론 역사가들의 진중한 학술적 고민이 담겨있는 『만약에』와 비교했을 때, 본서는 교양 수준의 깊이에서 풍자스러운 밈으로 무장된 만화라는 장르를 선택한 까닭에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웃음 지으며 읽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멍청한 지휘관”들과 “이거 실화냐?”라고 부를만한 우연의 향연이 펼쳐내는 “우스꽝스러운 전쟁의 역사”를 여실히 드러낼 수 있는 소재들로 선정되었다. 같은 기독교인들을 약탈하고 공격했던 십자군(민중, 4차)의 이야기, 진흙탕의 언덕 위로 중장기병을 16차례나 돌격시키며 갈아 넣은 크레시 전투, 칼레 해전에서 패퇴하는 와중에도 적국 영국을 한 바퀴 순회하는 기행을 보인 스페인 함대들, 워털루 전투에서 최고지휘자의 궐위 상태를 만들어버린 나폴레옹의 치질 등등.

사실 “전쟁으로 보는 서양사”라는 다소 본서의 제목은 사실 이 저작의 특장점을 담기에는 너무나도 평이하다. 24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알렉산드로스의 페르시아 원정과 미국 남북전쟁이 각각 2편, 십자군 전쟁이 6편, 전간기 및 제2차 세계대전은 무려 8편을 차지하여 저자가 관심을 가진 특정 전쟁들이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사실 책의 제목처럼 개별 전쟁들의 이이기들을 엮어 서양사를 조망하기에는 난망하다. 그렇기 때문에 “멍청한 지휘관들이 벌여온 우스꽝스러운 전쟁의 역사”라는 문제의식을 간명하게 담은 구호가 제목으로 채택되면 좋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어느 순간부터 정치사나 전쟁사와 같은 ‘사건사’보다는 사회사나 경제사라는 부문으로 대표되는 ‘구조사’를 탐독해보려고 애를 써왔다. 상대적인 ‘표층’의 역사라고 여겨지는 사건사보다는 ‘심층’의 역사인 구조사를 공부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본서는 언제든 ‘비합리’적인 행동을 일삼을 수 있는 개인과 때때로 찾아오는 믿을 수 없는 우연이 전쟁의 판도를 어떻게 이끌어가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이 바꾸었을 역사의 물줄기를 상상해보면서 구조사라는 의제에 몰입하고 있었던 최근 필자의 자세 또한 환기시킬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본서는 독자들에게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만화라는 장르와 밈이라는 개그코드를 채택했다는 점에서 전쟁사 입문자들에게 탁월한 학습효과를 주리라고 기대한다. 다만 이러한 특성이 어떤 인물의 언행과 사건들은 희화화 혹은 과장되게 묘사했을 가능성 또한 염두에 두고 개별 전쟁들에 대한 서술들을 찾아본다면 더욱 풍부한 학습이 될 것이다.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협찬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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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
마틴 래디 지음, 박수철 옮김 / 까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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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한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마주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필자에게 합스부르크 왕가는 대체로 악역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이는 아마도 어린 시절 읽었던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묘사된 네덜란드(1권)와 스위스(5권)의 가슴벅찬 대(對) 합스부르크 투쟁 과정이 뇌리에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본서의 저자 마틴 래디도 합스부르크 왕가가 “피지배 민족이 한때 갇혀 있었던 감옥의 극악무도한 간수로 치부”되곤 했다고 지적한다. 이번엔 1,000여 년에 걸친 이 ‘간수’들의 이야기를 경청해보면 어떨까. 그들이 천 년에 걸친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 말이다. 


사실, 합스부르크 왕가가 거대한 제국을 거느린 데에는 분명히 운이 작용했다. 저자는 이를 셰익스피어의 작품 『햄릿』의 인명을 따서 ‘포틴브라스 효과’라고 불렀다. 극 중에서 포틴브라스는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죽어 쓰러지면서 비게 된 덴마크의 옥좌를 차지하게 되는 행운의 노르웨이 왕자다. 사실 유럽에서 유력가문들 간의 결혼동맹이야 매우 흔한 일이었지만, 합스부르크 가문은 그 어느 가문보다 그 덕을 톡톡하게 보았다. 스위스의 한 지역귀족 가문이었던 이들이 신성로마제국 남서부의 유력가문으로 부상하게 된 것도, 신성로마제국을 넘어서 스페인의 왕좌를 얻게 된 것(1516년)도,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왕위를 따낸 것(1526년)도 모두 결혼동맹 그리고 상대 가문의 후계 단절로 말미암은 행운이었다.

이후 거대한 제국의 반열에 오른 합스부르크 왕가의 성쇠를 가른 것은 단지 운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를 좌우한 요체 중 하나는 ‘관용’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본서를 읽은 감상이다. 가령, 스페인의 펠리페 2세(1527~1598)는 카톨릭 외의 종교들을 배척하고 박해한 나머지, 스페인 경제의 커다란 축을 이루고 있던 무슬림과 유대인들을 축출했고, 개신교를 믿는 저지대 도시(네덜란드)들이 반발하면서 떨어져 나갔다. 이는 스페인이 아메리카 식민지를 점령하여 막대한 부를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쇠락하게 되는 단초가 되었다. 반면 중앙유럽의 합스부르크 왕조는 신·구교 간의 갈등 끝에 아우크스부르크 화의(1555년)를 통해 사태를 일단락지었다. 저자는 이 화해가 각 지역들로부터 순조로운 협력을 얻게 하는 계기가 되어 명백한 재정적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타 종교에 매우 배타적인 페르디난트 2세(1578~1637)가 집권하면서 ‘30년 전쟁’(1618~1648)이라는 파국으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신성로마제국에서 왕가의 리더십은 크게 위축되었고 나폴레옹 전쟁(1803~1815)에 직면하자 제국은 무기력하게 해체(1806년)되었다.

신성로마제국 해체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가 직령지를 중심으로 다시 꾸린 오스트리아 제국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은 유럽 전역에 씨를 뿌린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로부터 꽤나 골머리를 앓았다. 그리고 종국에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의 패배로 결국 제국은 해체(1918)되고 왕가로서의 합스부르크의 역사도 끝을 맺는다.

결국 이들의 역사는 진정 ‘극악무도한 간수’에 지나지 않았던가? 저자 마틴 래디는 왕가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오토 폰 합스부르크(1912~2011)의 이야기로 글의 말미를 짓는다. 오토는 그의 나이 6세 때 왕가의 몰락을 지켜보며 가족과 함께 타국으로 망명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장성하여 훗날 유럽연합(EU) 등 유럽정치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저자는 7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던 오토의 “유럽인”적 정체성을 곧 다민족·다인종의 연합체였던 합스부르크 제국의 ‘보편성’과 연결짓는다. 그리고 합스부르크 제국으로부터 “해방된” 국민국가들은 그 민족주의적 배타성과 불관용으로 다시 내적으로 분열하고 강대국들의 새로운 먹잇감들이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그 전망이 결코 밝지만은 않다는 점을 짚는다.


이제 책을 덮으며 감상을 정리해본다. 제국의 왕가로서 장수의 비결이 단지 ‘극악무도한 간수’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접어두기로. 하지만 제국 해체 이후의 후계국가들에 대해서 오늘날 “합스부르크 가문 통치자였다면 더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저자의 제국옹호론까지는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는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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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 단 한 명의 백성도 굶어 죽지 않게 하라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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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타칭 역덕(역사덕후)’이라면 한 번쯤은 자신의 덕력을 책 한 권으로 엮어 대중들에게 소개해보고픈 야망을 가져보았을 법하다.

이런 이들에게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은 모범적인 하나의 사례라고 소개할 수 있겠다.

 

첫째는 조선의 (진휼, 환곡으로 대표되는) 복지시스템이라는 거대담론을 시시콜콜한 일상사로 치환해서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시키는 자(국왕·조정), 주는 자(지방관), 슬쩍하는 자(향리), 받는 자(백성)’라는 4자 구도를 형성해서 조선의 복지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풀어내는 방식이 탁월하다고 느꼈던 점이다. 이는 독자들에게 접근의 문턱을 낮추어 줄 뿐만 아니라, 조선의 복지제도를 단순히 훌륭하다’, ‘엉성했다라는 이분법적 판단을 넘어서 입체적인 고찰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둘째, 인용 사료의 과감한 윤색이다. 이에 대해 저자의 말을 직접 빌리자면 “‘읽는 맛을 살리기 위해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사료에 과감한 편집·윤색을 가하고, “일부 옛날 단어 또한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옮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료 인용문임에도 불구하고 지원금, 공무원, 국무총리, 국방부장관, 매뉴얼 등의 파격적인 현대어를 쓰고 있다. 자칫 원문의 의미를 훼손 혹은 과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될 수 있겠다만, 필자는 이런 과감한 시도가 본서의 대중교양서로서의 미덕을 잘 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본서는 조선의 복지 정책을 시시콜콜한 측면까지 살핀 끝에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이 얻을 수 있는 함의를 도출하고자 합니다. 필자는 역사라는 거울로부터 교훈을 얻는다는 식의 통감(通鑑)’적 역사해석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만, 본서가 조선의 진휼·환곡제도를 복지시스템이라는 근대적 정책도구로 재해석하겠다는 것을 표방한 이상, 우리 사회가 얻어낼 교훈을 정리하며 글을 맺는 것 또한 재미있는 마무리다.

 

저자는 조선의 사례로부터 우선 두 가지 상반된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첫째, 시장의 역할을 어느 정도 확대하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만약 조선이 보다 시장이 활성화된 사회였다면 재난·재해가 닥칠 때마다 국가가 직접 쌀을 옮김으로써 소요되었던 사회적 비용은 절감될 수 있었으리라는 판단이다. 둘째,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선별적 복지제도보다 증세를 동반하는 보편적인 복지가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구휼의 대상이 아닌 이들이(심지어 지역의 유지나 향리, 지방관조차도) 그 혜택을 악용해서 부당한 이득을 취했던 것이 조선의 복지 정책을 수렁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저자는 어떤 정책이 모든 문제를 말끔히 해소할 수 있다는 믿음은 순진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조선의 사례로부터 복지정책의 보편주의 vs 상대주의논쟁까지 끌고가는 논리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면서 크게 참고했다고 밝힌 조선왕조의 빈곤정책(박광준, 2018)은 조선의 환곡을 시장의 대안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서 시장을 억제하기만 했다면서 저자의 첫 번째 평가와 맥을 같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낙인효과(stigma)를 동반하지 않는 보편주의적 빈곤정책이었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었다면서 저자의 두 번째 주장과는 정반대의 해석을 제시한다. 이런 상반된 해석이 도출된 이유 역시, 저자가 인정했듯이 조선을 근거로 답을 얻기에는 현대의 정책적 관점과 시대도, 이념도, 잣대도, 환경도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쪼록 즐거운 독서였다. 독자들에게는 읽기 쉽게 쓰였다만, 수없인 인용된 사료들과 미주로 달린 참고문헌 목록들은 비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체감할 수 있다. 역사 대중서를 언젠간 한 권 써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졌던 옛날의 열정을 새삼 떠올리면서 시시콜콜시리즈를 써나가고 있는 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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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제1차 세계대전 - 유럽의 종말과 새로운 세계의 탄생 지도와 사진으로 보는 세계대전 1
A. J. P. 테일러 지음, 유영수 옮김 / 페이퍼로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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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들의 번뜩이는 전술 혹은 그들의 영웅적인 면모, 숨 막히는 전황과 뒤이어 찾아오는 통쾌함 또는 안타까움 ….

굳이 영웅사관에 빠진 사람이거나 ‘밀리터리 덕후’가 아니더라도, 전쟁사를 읽어 나가는 독자라면 기대할 법한 스토리텔링이다. 전쟁사에 대한 공부가 일천한 필자에게 있어서, 이와 같은 짜릿함을 느끼며 읽어내려갔던 책으로 기억에 손꼽히는 책은 그 옛날,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그중에서도 제2권 「한니발 전쟁」이었다. 물론 그녀의 저작이 낳은 수많은 논쟁거리를 여기서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전쟁사라는 이유로, 그녀의 책을 읽어 나갔을 때 느꼈던 회고를 기대하며 본서를 집어 든 것은 꽤 큰 오판이었다. A. J. P. 테일러의 이 저작은 필자가 생각한 것과는 꽤 다른 성격 혹은 매력을 가진 책이다.


테일러가 서술하는 제1차 세계대전의 경과 속에서, 정치가들과 군사 지휘관들은 번뜩이는 전술 혹은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보다는 오히려 착각이나 오판을 거듭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가까울 듯하다. 사실, 전쟁의 발발부터가 누군가의 치밀한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측면에서 A. J. P. 테일러의 잘 알려진 또 다른 명저(『준비되지 않은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의 ‘준비되지 않은 전쟁’이라는 수식어는 제1차 세계대전에도 충분히 붙일만하다.


“독일과 영국은 우호적인 관계”였고, 사라예보의 총성이 울리기 수개월 전에 치러졌던 프랑스의 총선에서는 “평화를 지지하는 급진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다시 과반을 차지”했으며, 독일인들은 “순전히 경제력만으로도 곧 유럽 제일의 강대국이 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독일이 왜 전쟁으로 일을 그르치겠는가?” 독일은 오스트리아로 하여금 세르비아를 강하게 압박할 것을 종용하면서, 이것을 과거처럼 “위협으로 위신도 세우고 평화적인 성공도 이루”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하던 시점까지도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이는 “외교적 술책”이었을 뿐 “진짜 전쟁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모두들 걷잡을 수 없는 전쟁 속으로 떠밀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여기서 테일러가 통찰하는 바는 보불전쟁 이후 수십 년간 유럽 본토에서 전면전이 없던 시기에, 철도의 시대를 맞아 수립된 작전계획들이었다. 각국에서 외교적 술책 정도로 여겨되던 동원령이나 선전포고가 각국의 밀실에서 수립되었던 작전계획 속에서는 철도시간표와 촘촘하게 엮여 있었고, 마치 도미노의 첫 블록을 밀어뜨린 것처럼 전쟁은 걷잡을 수 없이 치닫게 되었다.


개전 이후에 펼쳐지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역들에서도 전술·정치적 오판, 예상치 못한 전화위복(혹은 전복위화)과 새옹지마, 나비효과의 향연이 펼쳐진다. 책장을 펼치기 전에 기대했던 것처럼 가슴이 웅장해지기는커녕 테일러의 스토리텔링은 참 냉소적일 따름인데, 이따금 실소를 안겨준다. 어느 것을 사례로 고를 것인지도 참 고민스럽지만, 1916년의 전역을 엿보기로 한다.


1916년 초, 독일의 육군참모총장 폰 팔켄하인은 전황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베르됭 요새의 공격을 결심한다. 베르됭 요새는 프랑스의 전선에서는 “난처하고 쓸데없이 튀어나온 부분의 맨 앞”에 위치했으므로 전술적으로 차라리 포기하는 것이 더 나을 법했다. 따라서 프랑스의 장군 조프르는 베르됭에서의 철수를 결심했지만, 프랑스의 수상 브리앙이 정치적인 곤란함을 우려하여 반대하자 조프르는 다시 베르됭을 사수하기로 입장을 선회한다. 테일러에 따르자면 “조프르가 이제까지 없었던 분별있는 결정을 내리려던 찰나”였는데, 정치수반의 개입으로 다시금 그는 “잘못된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하지만 독일의 승부수 또한 성공적이지 못했다. 팔켄하인은 “늘어나는 독일군 사상자를 보며 낙담”했고, 이윽고 베르됭 전선을 포기한다. 결과론적으로는 “베르됭은 프랑스의 승리인 것으로 보였”고, 이 전역의 사령관인 페탱은 그 후광으로 훗날 프랑스의 국가수반이 되었다.

한편, 동시기에 러시아도 독일에 대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남부 사령관 브루실로프가 주도했던 이 작전(일명 ‘브루실로프 공세’)은 “러시아인들이 늘 그렇듯 허둥지둥 실수투성이”였고, “러시아 병사들은 아무 목적도 없이 산화”했다. 러시아 군대는 이 공세에서 100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럼에도 이 작전은 결과론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장군 개인의 이름이 붙은, 유일하게 성공적인 작전”일 정도로 “눈에 띄는 성취”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이 공세 이후 “마침내 싸울 의지를 상실”했다. 한편, 브루실로프는 본국의 지원을 충실히 받지 못했던 것이 큰 불만이었다. 그는 이후 왕조로부터 몸을 돌렸고, “트로츠키 휘하에서 더 행복하게 복무”하게 된다. 테일러는 브루실로프 공세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와 러시아의 로마노프가를 모두 파멸시켰다고 평가한다.

뒤이은 솜므 전투에서는 또다시 무자비한 살육이 이루어졌다. 이 전역에 참전한 영국 보병대에 대해서 테일러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가장 엄격한 군대였고, 가장 호된 규율과 가장 심한 처벌이 있는 군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실패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고 “어떻게 해서 그 실패를 대규모로 반복할 수 있는지를 배웠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테일러는 이처럼 군사 지휘관들과 정치가들에 대해 일견 냉소적인 시선을 비치면서도, “무명의 병사들이 제1차 세계대전의 영웅들”이었다면서, 그들에 대한 관심을 잊지 않고 서술해나간다. 예컨대, 1914년 크리스마스 날에 있었던 하룻밤의 비공식적인 휴전은 널리 알려진 일화이다. 이날만큼은 최전선에서도 총성이 멎은 채 영국과 독일의 병사들도 서로 만나 담배를 피우며 농담을 나누고 축구도 했다고 전해진다. 테일러는 담담하게 서술한다. “어쩌면 각 나라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작가들이나 정치인들보다는 이러한 전망(양국에 대한 증오)과 거리가 먼 것인지도 모르겠다”며.


한편, 서두에 말했듯이 본서에서 숨 막히는 전황과 뒤이어 찾아오는 통쾌함 또는 안타까움은 느끼기 힘들다. 테일러는 전쟁의 세부적인 전황을 서술함에 있어서는 그의 탁월한 스토리텔링 능력을 발휘하지는 않았다. 전쟁 묘사에서 오는 박진감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아쉬울 법하다. 필자는 사실 제1차 세계대전에 잘 알지 못했던 문외한으로서, 유일하게 익히 들어본 전투가 개전 초기의 마른 강 전투였다. 그랬기에 독일군이 마른 강을 건넜다는 서술 이후, 이 전투의 전황이 언제쯤 생생하게 묘사될 것인지를 기대하다가 문득 마른 강 전투에 대한 서술이 끝났음을 알고 당혹감에 페이지를 다시 뒤적인 바 있다. 개별 전투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을 원하는 독자들은 간단한 온라인 검색으로도 본서보다 충분히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본서는 고전적인 명성만큼이나 제1차 세계대전을 알기 위한 좋은 길잡이임에 틀림없다. 테일러의 스토리텔링이나, 특히 본서의 제목이 시사하는 풍부한 지도와 사진이 분명한 강점이다. “유럽의 종말과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알린 이 전쟁을 조감하고픈 독자 제현들의 많은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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