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 - 단 한 명의 백성도 굶어 죽지 않게 하라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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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타칭 역덕(역사덕후)’이라면 한 번쯤은 자신의 덕력을 책 한 권으로 엮어 대중들에게 소개해보고픈 야망을 가져보았을 법하다.

이런 이들에게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은 모범적인 하나의 사례라고 소개할 수 있겠다.

 

첫째는 조선의 (진휼, 환곡으로 대표되는) 복지시스템이라는 거대담론을 시시콜콜한 일상사로 치환해서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시키는 자(국왕·조정), 주는 자(지방관), 슬쩍하는 자(향리), 받는 자(백성)’라는 4자 구도를 형성해서 조선의 복지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풀어내는 방식이 탁월하다고 느꼈던 점이다. 이는 독자들에게 접근의 문턱을 낮추어 줄 뿐만 아니라, 조선의 복지제도를 단순히 훌륭하다’, ‘엉성했다라는 이분법적 판단을 넘어서 입체적인 고찰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둘째, 인용 사료의 과감한 윤색이다. 이에 대해 저자의 말을 직접 빌리자면 “‘읽는 맛을 살리기 위해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사료에 과감한 편집·윤색을 가하고, “일부 옛날 단어 또한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옮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료 인용문임에도 불구하고 지원금, 공무원, 국무총리, 국방부장관, 매뉴얼 등의 파격적인 현대어를 쓰고 있다. 자칫 원문의 의미를 훼손 혹은 과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될 수 있겠다만, 필자는 이런 과감한 시도가 본서의 대중교양서로서의 미덕을 잘 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본서는 조선의 복지 정책을 시시콜콜한 측면까지 살핀 끝에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이 얻을 수 있는 함의를 도출하고자 합니다. 필자는 역사라는 거울로부터 교훈을 얻는다는 식의 통감(通鑑)’적 역사해석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만, 본서가 조선의 진휼·환곡제도를 복지시스템이라는 근대적 정책도구로 재해석하겠다는 것을 표방한 이상, 우리 사회가 얻어낼 교훈을 정리하며 글을 맺는 것 또한 재미있는 마무리다.

 

저자는 조선의 사례로부터 우선 두 가지 상반된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다고 말한다. 첫째, 시장의 역할을 어느 정도 확대하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만약 조선이 보다 시장이 활성화된 사회였다면 재난·재해가 닥칠 때마다 국가가 직접 쌀을 옮김으로써 소요되었던 사회적 비용은 절감될 수 있었으리라는 판단이다. 둘째,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선별적 복지제도보다 증세를 동반하는 보편적인 복지가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구휼의 대상이 아닌 이들이(심지어 지역의 유지나 향리, 지방관조차도) 그 혜택을 악용해서 부당한 이득을 취했던 것이 조선의 복지 정책을 수렁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저자는 어떤 정책이 모든 문제를 말끔히 해소할 수 있다는 믿음은 순진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조선의 사례로부터 복지정책의 보편주의 vs 상대주의논쟁까지 끌고가는 논리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면서 크게 참고했다고 밝힌 조선왕조의 빈곤정책(박광준, 2018)은 조선의 환곡을 시장의 대안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서 시장을 억제하기만 했다면서 저자의 첫 번째 평가와 맥을 같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낙인효과(stigma)를 동반하지 않는 보편주의적 빈곤정책이었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었다면서 저자의 두 번째 주장과는 정반대의 해석을 제시한다. 이런 상반된 해석이 도출된 이유 역시, 저자가 인정했듯이 조선을 근거로 답을 얻기에는 현대의 정책적 관점과 시대도, 이념도, 잣대도, 환경도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쪼록 즐거운 독서였다. 독자들에게는 읽기 쉽게 쓰였다만, 수없인 인용된 사료들과 미주로 달린 참고문헌 목록들은 비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체감할 수 있다. 역사 대중서를 언젠간 한 권 써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졌던 옛날의 열정을 새삼 떠올리면서 시시콜콜시리즈를 써나가고 있는 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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