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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
마틴 래디 지음, 박수철 옮김 / 까치 / 2022년 7월
평점 :
유럽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한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마주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필자에게 합스부르크 왕가는 대체로 악역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이는 아마도 어린 시절 읽었던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묘사된 네덜란드(1권)와 스위스(5권)의 가슴벅찬 대(對) 합스부르크 투쟁 과정이 뇌리에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본서의 저자 마틴 래디도 합스부르크 왕가가 “피지배 민족이 한때 갇혀 있었던 감옥의 극악무도한 간수로 치부”되곤 했다고 지적한다. 이번엔 1,000여 년에 걸친 이 ‘간수’들의 이야기를 경청해보면 어떨까. 그들이 천 년에 걸친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 말이다.
사실, 합스부르크 왕가가 거대한 제국을 거느린 데에는 분명히 운이 작용했다. 저자는 이를 셰익스피어의 작품 『햄릿』의 인명을 따서 ‘포틴브라스 효과’라고 불렀다. 극 중에서 포틴브라스는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죽어 쓰러지면서 비게 된 덴마크의 옥좌를 차지하게 되는 행운의 노르웨이 왕자다. 사실 유럽에서 유력가문들 간의 결혼동맹이야 매우 흔한 일이었지만, 합스부르크 가문은 그 어느 가문보다 그 덕을 톡톡하게 보았다. 스위스의 한 지역귀족 가문이었던 이들이 신성로마제국 남서부의 유력가문으로 부상하게 된 것도, 신성로마제국을 넘어서 스페인의 왕좌를 얻게 된 것(1516년)도,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왕위를 따낸 것(1526년)도 모두 결혼동맹 그리고 상대 가문의 후계 단절로 말미암은 행운이었다.
이후 거대한 제국의 반열에 오른 합스부르크 왕가의 성쇠를 가른 것은 단지 운이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를 좌우한 요체 중 하나는 ‘관용’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본서를 읽은 감상이다. 가령, 스페인의 펠리페 2세(1527~1598)는 카톨릭 외의 종교들을 배척하고 박해한 나머지, 스페인 경제의 커다란 축을 이루고 있던 무슬림과 유대인들을 축출했고, 개신교를 믿는 저지대 도시(네덜란드)들이 반발하면서 떨어져 나갔다. 이는 스페인이 아메리카 식민지를 점령하여 막대한 부를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쇠락하게 되는 단초가 되었다. 반면 중앙유럽의 합스부르크 왕조는 신·구교 간의 갈등 끝에 아우크스부르크 화의(1555년)를 통해 사태를 일단락지었다. 저자는 이 화해가 각 지역들로부터 순조로운 협력을 얻게 하는 계기가 되어 명백한 재정적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타 종교에 매우 배타적인 페르디난트 2세(1578~1637)가 집권하면서 ‘30년 전쟁’(1618~1648)이라는 파국으로 이어졌고, 이로 인해 신성로마제국에서 왕가의 리더십은 크게 위축되었고 나폴레옹 전쟁(1803~1815)에 직면하자 제국은 무기력하게 해체(1806년)되었다.
신성로마제국 해체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가 직령지를 중심으로 다시 꾸린 오스트리아 제국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은 유럽 전역에 씨를 뿌린 자유주의와 민족주의로부터 꽤나 골머리를 앓았다. 그리고 종국에는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의 패배로 결국 제국은 해체(1918)되고 왕가로서의 합스부르크의 역사도 끝을 맺는다.
결국 이들의 역사는 진정 ‘극악무도한 간수’에 지나지 않았던가? 저자 마틴 래디는 왕가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오토 폰 합스부르크(1912~2011)의 이야기로 글의 말미를 짓는다. 오토는 그의 나이 6세 때 왕가의 몰락을 지켜보며 가족과 함께 타국으로 망명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장성하여 훗날 유럽연합(EU) 등 유럽정치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저자는 7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던 오토의 “유럽인”적 정체성을 곧 다민족·다인종의 연합체였던 합스부르크 제국의 ‘보편성’과 연결짓는다. 그리고 합스부르크 제국으로부터 “해방된” 국민국가들은 그 민족주의적 배타성과 불관용으로 다시 내적으로 분열하고 강대국들의 새로운 먹잇감들이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그 전망이 결코 밝지만은 않다는 점을 짚는다.
이제 책을 덮으며 감상을 정리해본다. 제국의 왕가로서 장수의 비결이 단지 ‘극악무도한 간수’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접어두기로. 하지만 제국 해체 이후의 후계국가들에 대해서 오늘날 “합스부르크 가문 통치자였다면 더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저자의 제국옹호론까지는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는 어려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