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경험
보도 키르히호프 지음, 서윤정 옮김 / 붉은삼나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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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독일 올해의 책’을 수상한 작품. 저자 ‘보도 키르히호프’는 우리에게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독일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이 책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품이라고 한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출판사를 운영하였으나 점점 독자보다도 작가가 많아지는 그런 상황을 보게 된 후 출판사를 폐업하고 봐이스아흐탈 골짜기로 오게 된 ‘라이터’는 제목 없는 책 한권을 발견하게 된 날 저녁, 이웃의 ‘레오니 팜’이라는 여성의 방문을 받는다. 그날 밤 라이터의 재킷과 제목 없는 책과 함께 갑작스럽게 시작된 두 사람의 여행은, 4월 눈 덮힌 추운 봐아스아흐탈에서 아헨호를 지나 따뜻한 시칠리아로 이어지게 된다. 두 사람은 3일 동안 마을을, 바다를, 다양한 지역들을 지나며 서로의 마음 속 깊숙이 담아두었던 이야기들을 나누고, 점점 가까워진다. 그리고 도착한 시칠리아에서 한 아이를 만나게 된다, 다른 곳에서 온, 말도 통하지 않는 그 작은 여자아이와의 만남은 라이터와 레오니의 오래된 상처를 다시 마주하게 하고, 두 사람의 여정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춥지만 한편으로 따뜻한 느낌이 묻어나는 표지, 그리 두껍지 않은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익숙하지 않은 만연체에 대화문도 따로 “”가 아닌 글자크기만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초반에는 페이지를 넘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초반이 지나가면서 굳이 이건 대화인가 아닌가를 생각하기보다 의식의 흐름에 맡기고 자연스럽게 읽어나가기 시작하자 책 속의 흐름을 따라 두 사람과 함께 여행하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여행 중에 나누는 기억들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가족, 애정, 행복, 머무는 것, 그리고 떠나는 것. 기억 속 깊은 곳에 있는 여러 가지 감정들. 지금도 그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는 기억들은 여행을 통해 상처가 벌어지고, 피가 나고, 다른 누군가에 의해 치유된다. 그리고 그 여행은 시칠리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시작된다. 그들이 달려온 여행의 시간들. 그것이 그들의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책을 덮은 후에도 해안선을 따라 달리는 차 안의 두 사람의 모습의 잔상이 계속 남는다. 이 책을 읽던 시간은 나에게도 조금 특별한 시간이었다.

 

 

제가 주변에 조언자가 없는 누군가에게 얘기해줘도 된다면, 안 좋은 기억도 그 의미가 있고, 현재 만족하는 것에 대해 예리한 시선으로 볼 수 있게 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p68)

행복하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다. 운이 좋았건 혹은 실패로 끝이 났건 그가 순수하게 누군가를 위해 씻는 이 순간이 행복한 거다.(p157)

바다와 사랑은 사람들이 둘 다 볼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타인에게 있는 것을 사람들은 어떻게 볼 수 있었을까. 그렇다, 느끼는 거지 보지는 못한다.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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