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도 없는 사이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백수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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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과거, 사랑하는 현재, 사랑하는 나의 둘도 없는 친구. 

사랑하는 자자에게, 애정을 담아.' (P242)


실존주의 철학자, 소설가, 행동하는 지성, '제2의 성'의 저자이자 장 폴 사르트르와의 계약 결혼으로도 널리 알려진 여성주의자 시몬 드 보부아르가 출간을 포기한 이후에도 죽을 때까지 간직했던 작품이 백수린 소설가의 번역으로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소설은 보부아르의 자전적 소설이기도 하다. 아홉 살 새학기 시작 교실에서 실비(시몬 드 보부아르)는 자신감 있고  꾸밈없고 대담한 앙드레(엘리자베스 라쿠앵, 일명 '자자')를 만난다. 그 날 이후 앙드레는 실비에게 사랑하는 친구이자 동경과 숭배의 대상으로 둘도 없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20세기, 그 시대가 요구하던 여성에 대한 억압은 재능과 지성이 넘치는 그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버지의 파산으로 학교를 졸업한 후 결혼이 아닌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실비에게 기쁨과 일종의 자유를 주었다. 그에 반해 전통을 철저하게 지키는 카톨릭 부르주아 계급에서 자란 앙드레는 종교와 규범, 결혼, 소위 사회적 책무라고 불리는 족쇄에서 자유롭지 못한다. 집안에서 딸, 여자로서의 역할이 정해져 있고 자신만의 시간도 없으며 독서마저도 지배당하고 검열당하는 앙드레는 많은 가족 속에 둘러싸여있으면서 고독을 원했지만, 슬프게도 정신적으로만 더욱 더 고독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열정적이고 자유로운 성향을 가진 앙드레는 어머니, 가족들의 기대, 사회적 규범에 순응해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잠시의 자유를 찾기 위해 자신의 발을 도끼로 내려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이다. 하지만 또한 사랑하기에 더욱 거역하기 어려운 가족이라는 굴레와 종교와 사회적 관습이 만들어낸 죄책감 속에서 탈출 할 수도 없었다. 그의 어머니도, 연인 파스칼도 억압 속에서도 자신으로 있고자 했던 앙드레의 마음이 틀린 것이라고 설득한다.  아마도 그것이 결국 앙드레의 괴롭히는 최대의 모순이었을 것이다. 실비만이 유일하게 자신의 자유와 의지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앙드레의 편이었다. 앙드레가 없는 세상에는 자신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유년시절부터 실비에게 앙드레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리고 어쩌면 앙드레에게 실비 역시 유일한 존재였을지도. 


스물한 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앙드레는 급작스럽게 죽는다. 하지만 실비는 그의 죽음의 원인이 병이 아닌 다른 것임을 알아차린다. 

'나는 어렴풋이, 앙드레가 죽은 건 이 순백색에 의해 질식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해했다.'(P182)

사랑과 억압, 정상적인 욕망에서 조차 양심의 가책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그를 둘러싼 하늘 만큼이나 높은 벽들이 서서히 조여와 결국 앙드레 주변의 산소를 모두 빼앗아가버려 결국은 숨조차 쉴 수 없게 만들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실비와 앙드레의 유년 시절은 눈부시다. 어린 시절 처음 경험해보는 강렬한 감정, 목숨만큼 소중한 사랑과 우정의 대상, 행복한 미래에 대한 상상. 하지만 그들은 어른이 되어가고 사회와 마주하게 되면서 자신이 자신 그대로이고자 했던 빛나던 한 사람은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자자의 죽음은 보부아르에게 있어 큰 영향을 미친다. 책 말미에 수록된 그의 수양딸 실비 르 봉 드 보부아르의 글 중 이런 문장이 있다. 

'출간되지 않은 메모에서 보부아르가 "희생의 제물"이라는 단어를 쓰기까지 했듯, 자자는 자신의 탈주를 위해 보부아르가 지불해야 했던 몸값이었다.'(P200)

둘도 없는 사람을 잃었기에 시몬 드 보부아르 그의 삶은 그 몫까지 더 치열하고 실천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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