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역사가 - 주경철의 역사 산책
주경철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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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역사가 주경철 교수가 길가메시, 만지로, 벨러미와 모리스, 68운동, 4편의 글을 추가하여 7년만에 개정증보판으로 돌아왔다. 문학, 예술 텍스트와 역사학을 접목하여 역사를 들여다보는 저자의 방식을 따라 인류 최초 서사시의 주인공 길가메시에서 1968년 5월 파리에서부터 시작된 상상력 혁명 68운동까지 15가지의 이야기는 역사를 좀더 다양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아메리카 고대문명 아스테카의 인신희생 의례는 현대의 시선으로 보자면 끔찍한 행위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 이 행위는 인신 희생을 통해서 인간의 에너지로 우주를 살린다는 철학이 담겨있다고 한다. 상상하기도 힘든 잔인하고 폭력적이라고 보여지는 문명도 깊숙하게 들여다보고 그 이유를 살펴보면 저마다의 철학과 문화가 담겨있다.

저자가 '유럽 문명의 무덤'이라고 칭한 바타바이호 사건은 사람이 무인도에 고립되었을 때 야만과 조화, 과연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인가를 조금이나마 상상해 볼 수 있게 해준다. 예전 파리대왕을 읽었을 때 느꼈던 감정이 떠올랐다. 나는 15소년 표류기보다는 파리대왕 쪽이 현실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쥘 베른도 15소년 표류기도 무척 좋아한다. 하지만 고립되어 생존의 위기가 닥쳐왔을 때 인간이 이성이나 양심을 어느정도 지킬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편이다. 파리대왕은 무인도에 고립된 소년들은 결국 문명이 야만에 패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도네시아 자바섬을 향해 떠났던 바타비아호 역시 비슷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 상황에서까지 인간은 이성과 인간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홀로코스트를 다룬 세 편의 영화 스티븐 스필버그의 '쉰들러 리스트', 클로드 란츠만의 '쇼아', 알랭 레네의 '밤과 안개'를 통해 영화라는 매체가 역사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다큐멘터리라도 사실만이 담겨져 있지 않다.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영상은 감독이 찍고자 했고 선별한 장면들이다. 우리는 감독의 시선을 통해 역사나 사건을 들여다보게 된다. 같은 주제라고 할지라도 감독이 어떻게 보여주고 싶은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영상의 전달력이 가진 힘을 생각해보면 사실의 왜곡이 아니더라도 작은 관점의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건 조금 무서울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통한 역사학의 가능성과 위험성을 보여주는 저자의 생각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바카이, 러시아의 이반 뇌제, 치즈와 구더기, 마녀사냥, 68운동을 제외한 14편의 챕터를 읽다보면 기독교, 이슬람, 러시아정교, 마녀사냥, 아메리카 고대문명까지, 고대에서 중세까지, 그리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종교가 얼마나 삶을 지배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특히 중세는 그야말로 탄생에서 죽음까지 종교의 틀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16세기 이탈리아 소도시의 방앗간 주인 메노키오는 책을 읽으며 교회의 권위와 기독교의 교리와 의식에 의문을 가지지만 그 역시 종교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고, 결국 종교재판으로 목숨을 잃게 되었다. 중세=종교라는 공식이 떠오를 정도이다.

좋아하는 주제도, 생소한 주제도 저자의 균형적인 관점과 재미있는 글에 책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쉬웠다. 역사는 시점에 따라 주제에 따라 새로운 면이 보인다는 점이 그 즐거움 중 하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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