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위한 정의 - 번영하는 동물의 삶을 위한 우리 공동의 책임
마사 C. 누스바움 지음, 이영래 옮김, 최재천 감수 / 알레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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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 부경동물원 사자 바람이의 학대 논란으로 여론이 뜨거웠다.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앙상하게 마른 채 좁고 더러운 동물원 유리 안에 갇혀있는 바람이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고 마음아프게 했다. 나 역시 기사와 영상을 보며 무척 분노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공해, 환경오염, 공장식 축산업, 서식지 파괴, 동물실험, 모피, 스포츠를 위한 동물 사냥, 가까이는 사자 바람이부터 멀게는 온난화로 유빙이 빠르게 녹아 바다를 건널 수 없어 굶어 죽는 북극곰까지 동물들은 지구라는 행성 곳곳에서 고통받고 있고, 부끄럽게도 그 대부분의 원인은 인간에게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지식인이자 법철학자 마사 너스바움(Martha C. Nussbaum)은 이 책을 통해 동물권과 동물을 위한 정의를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자신의 이론을 펼쳐나간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어조로 인간의 탐욕과 교만함에 의해 삶의 많은 부분을 박탈당하고 있는 다른 종의 동물들의 삶의 활동에 대한 존중과 공감, 법적 지위 보장 등을 주장하는 글을 통해 평소 답답했던 부분들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음은 물론이고 더 넓은 시야로 동물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동물을 인간의 목적에 따라 이용하고 인간이 다른 동물들보다 중용하고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두족류인 문어는 관찰을 통해 학습을 하고, 도구도 사용할 수 있다. 혹등고래의 노래에는 복잡한 멜로디로 먼 바다에 있는 동료에게 다양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고, 발달된 사회구조를 가진 코끼리는 강한 모성애를 가지며, 다른 코끼리들과 협력해서 아기들을 보호하고 양육한다. 인간과 다를 뿐 각자 종마다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고 각자가 추구하는 목적이 있는 삶을 가지고 있다. 동물의 권리는 서로 다른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다.

 

저자는 기존에 동물 정의에 대한 접근법인 “우리와 너무 비슷해서”라는 인간 중심의 접근법, 공리주의를 바탕으로 고통과 쾌락에 집중한 접근법, 칸트주의적 접근법에 대한 설명과 그 한계점을 설명하고, 동물의 권리에 대한 저자의 이론인 <역량 접근법>을 통해 동물에 대한 존중과 우리의 책임, 정치적, 법적 지위 보장 등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

“역량 접근법에 따르면, 쾌고감수능력이 있는(세상에 대한 주관적인 관점을 가지고 고통과 쾌락을 느낄 수 있는) 각각의 생물은 그 생물 특유의 삶의 형태로 번영할 기회를 가져야만 한다.”(P31)

생명, 건강, 신체적 완전성, 감각, 상상력, 사고, 실천이성, 소속, 놀이, 재미, 실체적이고 체계적인 중심 역량 목록을 세우고 쾌고감수능력과 역량 접근법에 따라 다양한 종에 대해 상세히 들여다보고 동물을 이용한 의학 실험, 육식, 반려동물과 야생동물에 대한 처우 같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동물들의 고통과 공감, 국제조약, 법적 지위의 보장이 필요한 이유를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환경파괴, 인간에 의한 동물 학대, 동물 권리에 대해 관심이 많아지고 있던 지금 이 책을 만난 것은 생각을 정리하고 확장시키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자신의 존엄, 노력과 양립할 수 있는 삶을 살 기회를 가지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역량 접근법에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야생동물 역시 넓은 의미에서 인간이 지배하는 공간에 묶여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인지하게 되었다. 야생동물이라고 표현하는 동물들 역시 우리가 볼 수 있는 공간에 있다는 것은 그 역시 통제된 장소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점에 씁쓸했다. 동물에 대한 정의를 넘어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경이와 존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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