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인 이야기 - 모험하고 싸우고 기도하고 조각하는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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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 암흑시대, 칼과 방패를 든 기사와 모험, 십자군, 중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중세인들이 쌓아온 역사와 시간이 쌓여 르네상스와 근대로 이어진 것이지 않겠는가. 그럼 중세인들의 삶은 과연 어떠했을까. 저자가 들려주는 유럽의 중세는 소제목 그대로 ‘모험하고 싸우고 기도하고 조각하는’ 삶이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이자 <바다 인류>,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등 서양사, 해양사 등과 관련된 책을 저술한 역사 스토리텔러인 저자는 종교와 건축, 왕권과 교회, 기사와 예술, 황제 하인리히 4세,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 알리에노르 왕비, 사자심왕 리처드, 체사레 보르자 같은 주요 키워드와 흥미로운 인물을 통해 500년부터 1500년 경까지 천년 동안의 중세 유럽의 모습을 다채롭게 그려낸다.

흥미롭게도 이야기는 스칸디나비아의 바이킹 시대에서부터 시작된다. 바다를 건너와 전쟁이나 약탈을 하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바이킹은 사실 민족이 아닌 ‘떠돌아다니며 약탈을 하거나 다른 지배자의 용병 역할을 하며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삶의 방식을 말한다고 한다. 폭력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바이킹은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에서부터 해외로 때로 삶을 위해, 때로는 모험을 떠나 유럽을 넘어 인도, 아메리카 대륙까지도 다녀왔으며, 잉글랜드를 정복해 노르만 왕조를 개창하고, 시칠리아 왕국을 세웠다. 오히려 그들의 이동은 유럽 문화의 교류와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중세라고 하면 역시 종교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종교적 염원이 담긴 고딕 성당들은 지금봐도 경의로움과 함께 교회의 권력과 사람들의 믿음이 얼마나 강했는지 느끼게 해준다. 인간의 노력의 결정체같은 느낌이랄까. 교회는 그 시대 사람들에게 있어 말 그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함께였다. 심지어는 죽음 이후 역시 종교가 관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권한은 속세의 권력인 왕권과도 비등했으며 이슬람교도에게 점렴당한 예루살렘을 탈환한다는 목표로 2세기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지속된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지만 서글프게도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종교의 다름을 이유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슬람의 지하드와 십자군이 사실 같은 내용이라는 작가의 말에 공감하면서 종교가 생긴 이래 싸움이 끊기지 않는 현실에 씁쓸해진다.

마녀사냥 역시 중세하면 떠오르는 키워드 중 하나다. 전쟁, 대기근, 페스트를 비롯한 전염병에 대한 공포와 신앙의 잘못된 형태가 낳은 최악의 행위 중에 하나인 마녀사냥으로 수십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빼앗겼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행위를 가해 그 결과로 죄의 유무를 판단하는 신명재판은 유럽의 종교재판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인도차이나,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등 세계 여러 문명권에서 근대까지도 행해졌다. 물론 현대의 법도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법제도가 체계화되기 전 세계 곳곳에서 얼마나 불합리한 처벌이 많았을지 알면 알수록 무서운 일이다.

종교가 삶을 지배했던 시대, 왕권이 확립되고 문화와 예술이 화려하게 꽃피우기 위해 태동하던 중세는 암흑이 아닌 격동적인 총천연색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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