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와 프랑스혁명 - 베르사유와 프랑스혁명 츠바이크 선집 3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육혜원 옮김 / 이화북스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리 앙투아네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프랑스 왕비, 오스트리아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 베르사유의 장미, 다양한 수식어로 표현되는 그녀는 화려한 로코코시대를 대표하는 이였으며, 혁명의 열기 속에 모든 것을 잃고 결국 기요틴의 칼날에 생을 마무리한 인물이다. 그는 과연 역사와 시대의 흐름에 희생된 이였을까, 아니면 왕비로서 책임을 방치한 무능하고 방탕한 생활로 혁명을 촉발시킨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을까. 나폴레옹, 클레오파트라, 네로 황제, 광해군, 역사에 큰 흔적을 남긴 인물들이 그렇듯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평가는 무척 다양하다. 때로는 비판적으로, 때로는 호의적으로. 나 역시 어린 시절과 지금, 역사와 책임이라는 관점과 인간적인 관점으로 볼 때마다 그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곤 한다.




처음 마리 앙투아네트를 알게 된 건 초등학생 시절 아직 프랑스 역사를 알기도 전 접했던 만화 ‘베르사유의 장미’였다. 순진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책의 제목인 베르사유의 장미 바로 그대로였다. 화려하고 살다가 한순간 지고 만 사랑만을 위해 사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사랑과 의무, 혁명과 귀족이라는 신분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다한 오스칼이라는 캐릭터를 더 좋아했었다. (사실 아직도 내 마음 속 주인공은 오스칼이다.)



유럽의 큰 축을 담당하는 왕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태어나 주변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자란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왕가의 계약 동맹을 위해 프랑스 부르봉 가문의 루이 16세와 결혼해 특유의 사랑스러움과 순수함으로 프랑스 백성들에게 지지와 환호를 받으며 파리에 입성한다. 물론 프랑스 왕가는 루이 14세 이후로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배와도 같았지만, 아마도 지위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조언을 마음 깊이 새겨들었다면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운명은 조금은 다른 결과가 될 수 있었을까?



마리 앙투아네트가 악의나 탐욕을 쫓은 것은 아니다. 자유와 즐거움을 추구하고 명랑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왕비였다. 규제와 억압을 싫어하고 경솔했으며, 쾌락과 유희를 탐닉하고, 왕비로서의 의무와 책임에서 눈을 돌리고 자신의 즐거움을 우선시 한 것은 죄였다. 무능한 왕과 백성의 삶에 무관심한 왕비. 도박에 빠지고, 베르사유 궁이 지루하다는 이유로 밤이 되면 파리로 나와 새벽까지 유희를 즐기고, 무거운 세금과 힘든 삶으로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키는 상황에서도 엄청난 예산을 들여 무척이나 인공적인 방법으로 최대한 자연스럽게 조성한 트리아농 성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그의 모습은 귀족과 평민 모두에게 호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파리를 떠들썩하게 만든 목걸이 사건을 통해 자신이 어떤 것을 잃어가고 있었는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미국의 독립 전쟁, 루소의 사회계약론 등을 통해 자유와 평등 이념, 신분 계급 철폐 등을 추구하는 시민계급이 대두되고 있었고 재정 파탄으로 생활이 나날이 가혹해지고 있는 프랑스 백성들의 눈에 마리 앙투아네트는 나라를 망친 죄인이었을 뿐이다.

그 후로도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가 한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 이후 튈르리 궁에 유배된 후 탈출 시도,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전쟁에서의 선택들은 더 나쁜 결과로 치닫고 결국 왕권을 잃고 죄인으로서 사형당하고 만다.



발루아와 루이 드 로앙 추기경과 관련된 목걸이 사건을 통해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신의 잘못과 자신이 잃은 것을 알게되었다. 하지만 후회란 언제나 늦은 법이다. 임계점에 다다른 프랑스혁명의 불길은 마리 앙투아네트에 의해 그 도화선에 불이 붙어 버렸고 혁명이라는 크나큰 역사의 흐름 속에 그는 왕관, 권력, 명예, 부, 남편, 아이, 사랑하는 이었던 페르센, 모든 것을 하나씩 빼앗기고 결국 스스로의 긍지로 마지막 하나 존엄성만을 지킬 수 있었다. 



‘체스’를 통해 알게 된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는 유럽에서 손꼽히는 전기작가이며,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흡입력 있는 문체로 1920~1930년대 유럽에서 최고로 유명한 작가 중 한명이다.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게 만드는 그의 소설을 좋아했기에 이번 책 역시 무척 기대하고 있었다. 츠바이크의 시선으로 본 마리 앙투아네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너무도 궁금했다.


'운명은 평범한 사람도 뒤집어 놓을 수 있고, 

한계를 넘어 나아가도록 강제로 몰아가기도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이 바로 그러한 역사의 예시이다.' (P10)


그가 바라본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저 평범한 여인이었다.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빠져 비극적 결과를 맞이해야 했던 평범한 한 사람 말이다. 절대 왕정 시대 왕족으로 태어나 자신의 권력과 권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왕관의 무거움을 모르고, 권력을 가진자의 의무를 몰랐던 무지와 무능은 죄가 아닐까. 마리 앙투아네트의 여인으로서의 삶이 행복하지 못했던 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통치자로서의 책임감을, 왕비로서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을 너무 늦게 가지게 된 것은 그만큼 더 아쉬운 일이다. 칼날이 내려오는 마지막 순간 마리 앙투아네트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인간은 불행 속에서만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 수 있게 된다.“ (P19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