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더, 경성을 누비다 - 식민지 조선이 만난 모던의 풍경
김기철 지음 / 시공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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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개봉한 영화 ‘1947 보스톤’의 주인공, 임시완 배우가 연기한 마라톤 선수 서윤복이 마라톤 선수가 되기 전 직업은 냉면 배달이었다. 뛰어서 냉면을 배달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 당시에도 음식 배달이 되었다니, 역시 배달의 민족....이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그보다 전인 1920년대에도 자전거 등을 이용한 설렁탕, 냉면, 국밥 등 다양한 음식 배달 서비스가 이루지고 있었다고 한다. 가수 선발대회, 신문 사회면을 장식한 교통사고 기사, 만원버스, 어딘가 익숙한 일상적인 풍경에 100년 전 경성의 모습이 지금과 그닥 낮설지 않게 다가온다.



100여 년 전 경성. 일본에 의한 식민지 상황, 갑작스럽게 쇄국이 풀리고 근대를 맞닥뜨린 시대를 살아가야했던 조선인의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 당시 신문과 잡지를 통해 만난 100년 전 경성은 암울한 식민지 시대의 모습과는 또 다른 면들을 보여준다. 물론 무척이나 어렵고 힘든 시기였고, 조국 독립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투쟁을 하며 고통스럽게 살았던 시대였지만, 또 한편으로 근대와 모던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맞이하고 적응하며 씩씩하고 유연하게 살아가는 시대이기도 했다.



지금은 익숙해진 풍경인 마스크 착용이 1920년대에도 전염병 예방을 위하여 신문 등을 통해 권장되었다. 경성에 첫 아파트가 지어지고, 주식 시장 열풍이 불고, 세계문학전집이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모던걸, 모던보이라고 불렸던 이들은 아침, 저녁 식사를 배달과 테이크아웃으로 해결하곤 했으며 땅 투기, 민관유착 같은 권력형 부패 스캔들 기사들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 화가 나혜석은 지금도 쉽게 떠나기 힘든 1년 반의 세계여행을 다녀오고, 무용가 최승희는 유럽과 아메리카를 포함한 월드 순회 공연으로 피카소, 마티스를 비롯한 세계의 많은 이들을 한국 무용으로 사로잡았다. 출세가 보장된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독립운동에 몸을 바친 이종혁, 조철호, 지청천 같은 이들이 많이 있었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 철도, 버스, 백화점, 카페, 극장, 갑작스레 찾아온 근대는 당혹감만큼이나 자유롭고 신선한 자극이기도 했을 것이다. 다양한 일상이 담긴 기록들을 읽다보면 식민 통치의 어두움 속에서도 급변하는 사회에 빠르게 적응해야만 했던 그 시대 조선의 삶이 얼마나 치열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또한 그 시기부터 조선 여성들의 삶 역시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억압적인 유교적 관습에서 차츰 벗어나 사회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도 가사, 교육,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심, 직업 등에 변화를 이루어낸 멋진 여성들이 대거 등장하는 시대이기도 했다.



한 시대는 한 가지 풍경으로 그려낼 수는 없다. 어둡지만 그 속에서도 반짝임이 있고,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고 지켜내고마는 것들이 있다. 어느시대보다 더 빠르고 치열하고 위험했던 100년 전 경성 거리를 거닐던 사람들을 한순간이나마 만나볼 수 있는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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