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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 - 동물들의 10가지 의례로 배우는 관계와 공존
케이틀린 오코넬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1월
평점 :
친한 관계의 코끼리들이 만나면 오랜 시간 헤어져있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순서의 친근감 넘치는 인사 의례를 한다. 첫 장의 코끼리의 인사부터 압도당한다. 나는 최근 누군가에게 이렇게 반갑게 마음과 예의를 담아 인사를 한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게 된다.
30년 이상 코끼리를 연구한 연구자이자 동물행동학 권위자 케이틀린 오코넬은 야생동물들의 인사, 집단, 구애, 선물, 소리, 무언, 놀이, 애도, 회복, 여행이라는 10가지 사회적 의례를 통해 지구에 얼마나 많은 야생 동물들이 사회적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지, 그러한 동물들의 의례를 통해 우리의 삶에 있어 공동체, 타인과의 관계, 의례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인사는 상대를 ’인정하고, 호의적으로 반기며, 환영한다‘는 뜻을 드러내는 의례다.’(P48)
관계는 인사에서 시작한다. 호의적인 관계인지 경계의 대상인지 인사 의례를 통해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혼자가 아닌 집단은 사냥이나 생존에 휠씬 유리하게 작용한다. 선물 의례는 관계 유지에 긍정적인 도움을 주고 사회적 위계를 보여주며, 구애 의례는 모든 동물에게 가장 우선시되는 번식과 생존에 있어 무척 중요한 행위이다. 소리를 통해 영역을 주장하고 무리와 의사소통을 하며, 놀이를 통해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학습하고, 가까운 무리의 죽음에 같이 슬퍼하고 애도한다. 새끼의 죽음에 포식 동물의 습격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자리를 머무는 기린과 얼룩말, 죽은 새끼를 안고 다니는 코끼리와 침팬지, 형제의 죽음에 울려퍼지는 늑대의 하울링,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해야 그 아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건 모두에게 동일하다. 코끼리, 고래, 사자, 늑대, 얼룩말, 코뿔소, 홍학..서로를 지키고 협력하며 살아가는 동물들의 사회적 행동들은 사랑스럽고 경이로우며 감동적이다.
이렇게 보고 있자면 이 사회적 의례들은 동물과 사람에게 비슷하게 작용한다. 현대사회는 사회적 관계가 더 복잡한 만큼 의례 역시 중요시되어야 할 것이다. 인사를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맺고, 집단을 이루고 단합함으로써 공동체의식을 형성하고 더 강한 힘을 발휘한다. 공감과 애도는 슬픔에 대한 치유에 도움이 된다. 동물들의 모습은 잊고 있던 중요한 것들을, 나도 모르는 사이 소홀히 했던 타인, 그리고 관계에 대한 의례들을 떠올리게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은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켰다. 온라인으로 관계를 맺고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혼자 있는 것이 점점 당연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조금씩 상실되는 느낌조차도 이제 익숙해지는 것 같아 조금 무섭기도 하다. 이런 때여서인지 저자가 들려주는 야생 동물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사회적 의례를 행하는 모습이 더 깊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세상이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깊이 전해졌다.
의례는 단순한 의식이 아닌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형태이다. 야생동물들의 행동은 사소하다고 생각했던 의례들이 관계와 공존에 얼마나 중요한가 다시금 깨닫게 된다. 다른 사람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선물을 주고받고 함께 응원하며 슬픔에 애도하고 자연과 함께 하는 것은 생활의 밸런스를 맞추고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 무척 중요하다. 동물들도 봄맞이 대청소를 한다고 한다. 멈춰 섰던 시간과 굳은 몸과 마음을 대청소하고 나 역시 봄맞이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