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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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강포에 어린 여자아이를 안고 등 뒤에는 커다란 봇짐을 메고 원청이라는 도시를 찾아 회오리바람이 부는 어느 날 시진에 도착한다. 하지만 원청이 어디 있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원청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황허 북쪽마을에서 부유하게 자라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외롭지만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린샹푸의 집에 어느 저녁 아창과 샤오메이라는 남매가 찾아온다. 아주 먼 남쪽 원청이라는 도시에서 경성의 이모부를 찾아 북으로 가는 길이라는 두 사람은 다음날 아침 아픈 샤오메이를 남기고 아창만 떠난다. 아청을 기다리며 두 사람은 결혼을 하지만 얼마 후 기쁨을 상징하는 까치 두건과 경사스러움을 뜻하는 사자 두건만 남긴 채 린샹푸 집안의 대대로 모아온 재산의 일부와 함께 샤오메이는 사라진다. 샤오메이의 배신에 분노와 회한으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린샹푸는 목공기술을 배우고 농사를 하며 집사인 텐다와 또 묵묵하게 살아가던 중 그의 아이를 임신했다며 샤오메이가 돌아오고, 그와 다시 결혼을 하고 딸을 낳은 후 그녀는 또다시 사라진다. 

돌아온 샤오메이에게 린샹푸는 다시 사라지며 딸과 함께 어디든 그녀를 찾아가겠노라 말한다. 그리고 그는 그 약속처럼 갓난아이인 딸을 안고 집 만한 큰 봇짐을 메고 걷고 마차를 타고 강을 건너 샤오메이와 원청을 찾아 지금까지 자신이 이루워왔던 것들과 익숙하고 소중한 것들을 뒤로 하고 기나긴 여정을 떠나 아창과 아침내 샤오메이가 이야기한 모습과 비슷한 시진이라는 도시에까지 오게 되고 결국 그 마을에 정착하여 딸을 키우며 샤오메이를 기다린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야기 속에는 샤오메이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청나라가 멸망하고 중화민국이 설립되던 혼란의 시기, 군벌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토비들로 인해 약탈과 살인이 무분별하게 일어나는 속에서도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한파 속을 헤치고 딸을 위해 젖을 구걸하던 중 만난 천융량과 리메이롄, 그들의 아들 천야오우와 천야오원, 시진 상인회 회장 구이민과 그의 아들, 딸들, 그리고 린샹푸의 딸 린바이자. 자연과 사람이 만들어낸 힘든 환경 속에서 그들의 삶은 먹먹하고 외롭고 또 의연하고 담담하며 강인하다. 

살아간다는 건 힘든 일이다. 원청 속 인물들의 삶은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 때문일까, 한페이지, 한페이지 읽는 내내 먹먹하다는 감정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린샹푸의 곧고 의연함이, 천융량의 강인함이, 샤오메이의 슬픔이, 톈다와 형제들의 우직함이 그들과 함께 나 역시 슬프고 기쁘게 만든다. 운명이란, 삶이란 무엇일까. 린샹푸는 샤오메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고향에서 평온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두 사람의 삶을 크게 뒤바꾼 그들의 운명같은 만남은 린샹푸를 새로운 토지와 여러사람과의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주었고, 다음 세대인 린바이자와 천야오우 역시 자신의 운명과 삶을 이어갈 것이다. 아무리 혼란스럽고 힘든 세상 속에서도 사람들은 결국 살아가는 것이다. 다만 힘든 순간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옳은 선택이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선택하고 또 선택할 뿐이지 않을까. 

‘원청이 어디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

<원청>은 중국 3대 현대 작가로 손꼽히는 위화의 첫 전기(轉奇)소설이라고 한다. 현실적으로 믿기 어려운 괴이하고 신기한 내용을 다루는 전기소설이라고 하기에는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삶은 너무나도 현실적이지만 이야기 전체를 감싸고 있는 분위기는 가히 전기소설이라고 불리기 손색이 없다고 느껴진다. 린샹푸가 찾아 헤메는 원청은 샤오메이를 찾으러 가는 희망의 길로도, 결코 닿을 수 없는 신기루 같기도 하다. 아무도 모르는 곳, 하지만 언젠가 꼭 도달하고 싶은 장소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책을 덮은 후 꽤 오랜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책 표지를 바라보았다. 표지를 가득 채운 산들 너머로 어쩌면 원청에 다다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매 작품마다 긴 여운과 감동, 그리고 먹먹함을 안겨주는 위화는 이번에도 역시나 위화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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