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수집가 I LOVE 그림책
크빈트 부흐홀츠 지음, 이옥용 옮김 / 보물창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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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집가일 뿐이야. 난 순간을 수집한단다.”



잊혀지고 지나가는 순간, 간직하고 싶은 순간, 무수히 많은 순간들. 만약 내가 순간을 수집한다면 어떤 장면들이 담길까.



하펜슈트라세 섬의 한 주택 5층에 화가 막스 아저씨가 이사를 왔다. 구닥다리 철테 안경을 쓰고 조금 뚱뚱하며 바이올린을 켜는 소년은 자신을 예술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막스 아저씨의 화실에 거의 매일 머물면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하고 책 속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때로는 캐나다 눈코끼리, 하늘을 나는 자동차 같은 환상적인 여행 이야기를 들으며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막스 아저씨는 계속 그림을 그리지만 완성된 그림들을 벽에 뒷면을 보이게 기대어 놓았기 때문에 아무도 그 그림을 볼 수 없었다. 어느 날 먼 여행을 떠나는 아저씨는 소년에게 집 열쇠와 관리를 부탁했고 막스 아저씨가 떠나 텅 빈 화실에 찾아간 소년은 메모와 함께 벽이 아닌 자신을 향해 늘어선 그림들을 마주한다.



눈 오는 어느 캐나다의 주택가를 지나는 눈코끼리들, 넓은 초원 어딘가에 집 앞에 도착한 거대한 선물 소포, 왕과 소녀와 사자가 함께 배를 타고 떠나는 항해.



환상적이지만 낯설지 않은 순간들.



“어떤 그림이든 비밀이 있어야 하지. 나조차 그게 뭔지 모를 수도 있어.

그리고 사람들이 내 그림에서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걸 발견할 수도 있단다.”



아련하고 어디엔가 존재했으면 하는 풍경, 크빈트 부흐홀츠가 보여주는 매혹적이고 몽환적인 순간들은 소년과 함께 나 역시도 그림 속으로 오랫동안 여행을 떠나게 해주었다. 동화책 속 마치 나만을 위해 펼쳐지는 작은 전시회에 초대된 것만 같은 기분으로 페이지들을 넘기며 만나는 일상적인 장면 속에 담긴 비일상의 순간이 만들어내는 특별하면서도 아름다운 순간들은 때로는 포근하고 다정하게 다가오기도, 때로는 쓸쓸하고 외롭게 만들기도 하고 어느 순간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게 만든다.



종종 글과 그림 속으로의 여행은 무엇도 될 수 있고 어디로도 갈 수 있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부흐홀츠 덕분에 모처럼 무척 즐거운 세계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어쩌면 어른에게도, 아니 어른이기에 더욱 동화와 환상이 필요한 순간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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