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 금욕과 관능의 미술사 해시태그 아트북
헤일리 에드워즈 뒤자르댕 지음, 고봉만 옮김 / 미술문화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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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은 현대인들에게 무척 친숙한 색상 중 하나다. 주변 어디서나 쉽게 검정을 찾아볼 수 있고 그만큼 많이 선호되는 색이기도 하다는 뜻일 것이다. 검정은 어둠, 죽음, 공포, 무거움을 상징함과 동시에 근원과도 같은 편안함, 보호감 같은 이미지, 종교적, 권위적인 시대적, 계급적인 의미 또한 담고 있다. 그래서일까 예술가들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음과 동시에 상반되는 이미지로 사용되어 왔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뉴턴은 검정은 색이 아니라고 단언했고,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빛을 사랑했던 르누아르는 검정을 색의 여왕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대체 검정은 어떤 색인 것인가.

하나의 색에 담긴 다양한 의미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사용되어 왔는지 구석기 후기에 그려진 라스코 동굴 벽화부터 다양한 미술사조, 현대예술 작품들을 통해 오랜 시간 속 검정의 역사를 더듬어 가 볼 수 있도록 해준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카라바조, 프란시스코 고야, 휘슬러, 피카소, 석도의 수묵화, 만 레이의 사진 등 벽화, 회화, 조형, 고대 그리스의 도자기, 조각, 팝아트 속 작가가 추구한 검정은 고독과 공포로, 한편으로는 권력의 상징으로, 때로는 우아함과 관능으로 표현된다.

조르주 드 라투르나 카라바조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어둠이 있기 때문에 빛이 더 선명할 수 있다는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검정이 모든 빛의 파장을 흡수하는 색이라는 것은 결국 그 안에 빛을 가득 담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의 검정은 빛 만큼이나 포근하다. 알면 알수록 팔색조 같은 매력을 가진 색이 아닐 수 없다.

‘당신의 검정은 어떤 색인가’(P6)

나에게 검정은 어떤 색인가.

한없이 가라앉게 하면서도 나를 감싸줄 것 같은 안전하고 포근한 색이며, 더럽혀지지 않는 이미지다. 편하면서도 격이 있다. 그러고보면 어린 시절 까만 어두움은 공포에 가까운 이미지였다. 언제부터 검정이란 두려움 보다는 안정감에 가까워졌던 걸까.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 위치한 로스코 채플을 가득 채운 추상표현주의의 선구자 마크 로스코의 검은색 그림들은 방문한 사람의 영혼을 위로해준다고 한다. 2015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마크 로스코전에서 로스코 채플을 일부 재현한 방에서 한참을 발을 떼지 못하고 머물렀던 기억이 있다. 그 단순한 검정의 공간이 왜 그렇게 안식으로 다가왔는지. 오랜 여운이 남아 나에게 ‘검정’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기도 하다.

예술과 관련된 책을 보다보면 언제나 떠오르는 생각이지만 이 책 역시 소개하고 있는 여러 작품들이 하나하나 긴 시간을 들여 바라보고 싶고, 언젠가 실제 작품을 만나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애니시 커푸어의 작품 ‘림보로의 하강’이나 리처드 세라의 ‘회로’가 어떤 공포를 줄지 책으로 보는 것 만으로도 기대가 되는 느낌이다. 알지 못했던 멋진 예술작품을 알게 되는 것은 역시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라는 걸 다시한번 느꼈다.

하나의 색을 테마로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이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준 ‘검정(Noir)'을 읽고나니 해시태그 아트북 시리즈 다음 권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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