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랜드 - 심원의 시간 여행
로버트 맥팔레인 지음, 조은영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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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는 두렵기에 버리고 싶고,

사랑하기에 지키고 싶은 것들을 언더랜드로 가져갔다. (P16)

언더랜드에서는 소중한 것을 지키고, 유용한 것을 생산하고, 해로운 것을 처분하는

세 가지 과제가 문화와 시대를 아우르며 반복된다.

은신처(기억, 소중한 물건, 메시지, 연약한 생명)

생산지(정보, 부, 은유, 광물, 환영)

처리(폐기물, 트라우마, 독, 비밀) (P16)

그러고보면 땅 밑 세상은 우리 삶과 무척이나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산업화를 이끌어낸 화석, 석유, 천연가스 같은 자원을 제공하고, 추억, 죽은이들에 대한 기억들을 묻는 곳이며, 어린시절 꿈과 모험의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하늘을 의식하듯 언더랜드를 떠올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자연 작가인 저자 로버트 맥팔레인은 1만년 전 납골당이 있는 절벽아래 멘딥힐스 동굴부터 파리의 카타콤, 경의로운 곰팡이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에핑 포레스트 숲, 볼비의 암흑물질 연구소에서 필란드 올킬루오토섬의 핵폐기물 저장소까지 신비롭고 다양하며 때로는 두렵기도 한 언더랜드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사실 이 책의 소개를 볼 때 과학 분야의 책으로 분류되어 있었기 때문에 언더랜드에 대한 자연과학적 분석이 담긴 책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책을 펼치고 나니 땅 밑 숨겨진 세상에 대한 탐험기와도 같았다. 1만 년 전의 납골당의 유골과 불비의 지하 광산에 수명을 다해 버려진 채굴기, 로포텐의 오래된 동굴벽화와 파리의 카타콤에 그려진 그래피티는 언더랜드의 거대한 시공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준다.

지금도 지하 깊은 곳 볼비 암흑물질 연구소에서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아직 정체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암흑물질에 대한 연구가 한창 일 것이다. 우주의 탄생과 동시에 생성되었으며,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암흑물질을 연구할 수 있는 장소가 지구상에 유일하게 지하 900미터 아래 언더랜드 뿐이라는 사실은 아니러니하다. 하늘보다 더 멀고 먼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을 보기 위해 땅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는 점은 공간을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든다.

파리의 지하에 위치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도시 카타콤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 흥미롭다. 통상적으로 알고 있던 지하묘지가 아니라 더 깊고 다양한 공간이 존재하고, 지하 납골당으로, 전쟁시에는 벙커로, 레지스탕스들의 공간, 또 언젠가는 은폐와 범죄가 일어나는 장소로, 이제는 밤이 되면 그 곳을 사랑하는 카타필(cataphile, 아래를 사랑하는 사람들)들이 좁고 어두운 공간을 건너, 기차가 지나는 땅 아래를 지나 카타콤에 모여 모임을 가지고 파티가 벌어지는 지하세계는 마치 어렸을 적 본 모험소설의 한 장면과도 같아 저자와 함께 언더랜드로 탐험을 떠나는 것만 같았다.

핀란드 남서부 올킬루오토섬 암반 깊은 곳에는 10만 년을 버틸 수 있는 고준위 핵폐기물 저장고가 건설 중이다. 숲속 지하 나무들의 균사를 통한 적자생존이 아닌 협력을 통한 공생관계와 거미줄 같이 복잡한 통신망과 네트워크로 고도화된 우드 와이드 웹은 놀랍기만 하다. 동굴에서 숲으로, 빙하에서 바다 속으로, 저자가 안내하는 다양한 형태의 언더랜드는 우리에게 그 공간이 주는 의미를, 앞으로 우리의 머나먼 미래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깊은 심원의 장소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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