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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무척이나 독특하고 흥미로운 미술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소설가로서, 에세이스트로서 종횡무진 활약 중인 줄리언 반스가 요리에 이어 이번에는 미술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미술은 어떠한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술사조나 경향에 따라, 기법이나 형태에 따라, 혹은 어떠한 주제를 삼아 읽어가느냐에 따라 화가나 작품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맨부커상 수상자이기도 하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설가인 반스가 풀어나가는 미술 에세이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첫 페이지부터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과연이라고 해야할까 지금까지의 미슐 에세이들과 또 다른 느낌이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시작하는 서문을 시작하여 총 17편으로 이루어진 각각의 장은 화가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 생애와 인간관계, 작품에 대한 배경 등을 통해 화가의 인간적인 면모와 예술적 감성, 작품에 대한 감상들은 어느 때는 지극히 사적인 에세이로, 때로는 하나의 단편소설처럼, 또 어느 때는 한 사람에 대한 전기의 일부분처럼 읽혀진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테오도르 제라코의 ‘메두사의 뗏목’에 대한 실제 사건에 대한 자세한 기록들과 제작 비화,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그림을 읽어나가는 방식을 보다 보면 지금 당장이라도 루브르 박물관으로 달려가 실제로 작품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세상의 기원’으로 큰 충격을 주었던 귀스타브 쿠르베의 여성에 대한 인식이나 피카소와 브라크의 관계를 통한 피카소의 의외의 모습, 브루주아이자 동시에 수도자스러운 면모를 갖춘 현대미술의 시조라 불리는 세잔의 인간적인 면모 같은 화가들의 개인적인 부분들이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해 더 흥미를 유발시킨다.
게다가 평소 알지 못했던 화가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었다.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은 터라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고 흥미를 가지게 된 화가와 작품이 생겼다. 처음 접하는 발로통의 ‘거짓말’과 목판화 시리즈와 더불어 혹평일색인 그의 누드화, 컬러리스트라고도 불리는 호지킨의 작품들에 대한 글을 읽다보니 어느새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났다.
‘미술은 단순히 전율을 포착해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 전율이다.’
미술 감상은 지극히 사적인 행위다. 같은 작품을 봐도 개인마다 다르게 느끼고, 좋아하고 감동받는 작품 역시 제각각 다르다, 무척이나 능동적이고 개인적인 행위이기에 그만큼 매횩적이다. 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은 그렇기에 더욱 매력적인 글이다. 또한 화가에 대한 이해가 작품을 감상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그림을 이해하는 방식이 얼마나 다양한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짧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그와의 미술 산책의 시간이 끝나는 것이 이렇게나 아쉽게 느껴지다니. 역시 줄리언 반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