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에프 모던 클래식
커트 보니것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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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웃기고 우아하게 비꼴 수 있다니. ‘역시 커트 보니것!’ 이라는 찬사가 절로 나온다. 16년 만에 다시 출간된 블랙 유머와 풍자의 대가 커트 보니것의 ‘갈라파고스’는 우리를 1986년과 그 후 100만 년 후의 인류의 미래의 세계로 초대한다.


1986년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과 금융위기, 전쟁으로 인류는 멸종의 위기에 처하고, 해양생물의 보고인 갈라파고스 제도로 ‘세기의 자연 유람선 여행’을 떠나 제도의 산타로살리아섬에 표류된 ‘바이아데다윈호’의 선장과 승객들은 100만 년 후 인류의 조상이 된다.


에콰도르의 영토 갈라파고스 제도가 유명해 진 것은 찰스 다윈이 젊은 시절 과학적인 관점에서 갈라파고스 제도의 소중함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타고 떠나는 배 역시 다윈호이다. 자연선택의 법칙, 종의 기원을 주장한 다윈에 의해 존재감을 드러낸 갈라파고스에서 새로이 태어난 100만 년 후의 새로운 아담과 이브의 자손들은 뇌가 작아지고, 지느러미와 비슷한 손과 발을 가지고 물속에서 장시간 자유롭게 물고기를 잡을 수 있으며, 치아를 제외한 도구를 가지지 않고, 무기를 만들지 못하고, 칸카보노족의 언어를 사용하며, 식인 고래와 상어가 인구의 수를 적정수준으로 유지시켜주는 사회에서 살아간다.


유령 레온의 시선으로 본 100만 년 전 인류는 왜 불행했고, 멸망에 까지 이르게 되었나. 바로 그것은 진화를 거듭한 ‘큰 뇌’ 때문이다. 과도한 문명의 발전과 탐욕, 전쟁에 대한 욕망 역시 커다란 뇌 때문이다. 100만 년 후의 인간의 뇌는 작아지고, 동물에 가까워진 삶을 사는 것을 다윈의 자연 선택의 법칙에서 본다면 인간에게 커다란 뇌는 필요 없다는, 문명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저자의 생각이 느껴진다.

 

‘살아 있었을 때 나는 나 자신의 큰 뇌에게서 조언을 자주 들었는데, 그 조언들은 나의 생존이나 인류의 생존 면에 있어서는 아무리 관대하게 봐줘도 미심쩍은 조언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의 뇌는 내가 미 해병대에 들어가 베트남에 싸우러 가게 만들었다.

참 고맙기도 하군, 커다란 뇌야.‘ (P39)


커다란 뇌를 가진 메리의 남편 로이는 뇌종양으로 점점 이상해지다 죽음에 이르고, 사기꾼 웨이트는 진화한 뇌를 타인을 속이고 기만하는데 사용한다. 문겐지 히로구치가 발명한 수 많은 언어 통역, 질병 진단이 가능한 지식의 보고이자 문명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만다락스는 명의 세계를 떠나 갈라파고스에 도착하고 어느 날 새로운 아담에 의해 바다에 던져진다. 그리하여 100만 년 후의 인류는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간다.


현대 문명의 폭력성과 이기심, 인간의 과도한 욕망에 대한 경고, 반전의 의미를 담은 문장 하나하나가 유쾌하지만 날카롭게 현대를 비웃는 것만 같다. 개인적으로 진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나조차도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그의 문장에 세뇌되어 커다란 뇌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저자의 힘은 아직도 여전히 무시무시하게 강력하다. 다시금 커트 보니것이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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