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7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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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걸리버 여행기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걸리버가 소인국과 거인국을 여행하면 겪는 기상천외하고 신비한 모험의 세계는 나를 두근두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성인이 된 지금 완역본으로 다시 읽은 걸리버 여행기는 동심파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를 만한 풍자소설이었다.


종교, 정치적 상황이 매우 혼란스러웠던 1700년대 영국의 잉글랜드계 아일랜드인인 저자 조너선 스위프트는 책에 등장하는 선상 의사 걸리버의 16년 7개월 동안 릴리펏(소인국), 브롭딩낵(거인국), 라퓨타와 발니바비, 일본, 후이늠국(말의 나라)의 총 4번의 여행기를 통해 영국의 정치적 상황과 사람들의 타락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동화에서는 흥미진진한 모험이야기로만 읽혔던 거인국과 소인국 여행기는 이제 마냥 재미있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업무적인 능력이 아닌 밧줄 곡예를 잘 하면 고관 자리에 오를 수 있고, 달걀을 먹기 전에 깨트리는 방식 차이로 다른 나라와의 전쟁이 벌어지는 소인국 릴리펏의 모습들을 통해 그 당시의 영국의 정치체재를 비판하고 있는 모습이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소인국에서 맨손으로 함선을 수십 척 나포해 영웅대접을 받던 걸리버는 거인국 브롭딩낵에서는 신기한 동물취급을 당한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나 서커스단에서 동물들에게 공연을 시키듯 밭에서 그를 발견한 주인은 걸리버에게 공연을 시키고 돈을 번다. 왕비가 걸리버에게 흥미를 가지게 되어 왕국에 살게 된 후에도 영국에 관심을 가지는 왕과 정치, 교육, 전쟁 등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손님으로의 대우받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왕비의 난쟁이가 걸리버에게 싸움을 걸고, 미니 배를 만들어 항해 기술을 선보이는 걸리버의 모습을 왕궁사람들이 웃으며 구경한다. 손님으로서 환대해준 왕에게 보답으로 화약과 대포의 제작법을 알려주려 하는 걸리버에게 혐오감을 표시하는 왕의 모습을 통해 저자의 전쟁에 대한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말의 나라에서 후이늠과 야후를 만나고 돌아온 걸리버는 이성적이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말의 모습을 가진 후이늠에 대한 존경과 함께 야만적이고 본능적인 인간의 모습을 한 야후를 마음 깊이 혐오하게 되어 집으로 돌아와서도 가족과의 관계조차 거부감을 표시하며 말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인다. 분명 정치적인 상황이나 이기심, 편견으로 인해 벌어지는 폭력과 다툼,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실을 보고있자면 인간이란 참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모든 인간을 끔찍한 동물로, 사랑하는 가족의 냄새조차 혐오하고 참을 수 없어하는 걸리버의 모습 또한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많다.


유감스러운 부분은 매 여행기마다 다수의 여성을 충동적이고, 냄새나고, 부정을 저지르며 남성을 유혹하는 존재로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거인국에서 걸리버를 구해주고 보살피는 글룸달클리치 같은 여성도 등장하지만, 대부분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글이 쓰여진 시대나 저자의 여성관계를 고려하더라도 불편한 점인 것은 사실이다.


소인국 여행기에서 걸리버는 거짓말하기, 둘러대기, 기만하기, 모호하게 말하기를 인간의 악습이라고 표현한다. 후이늠을 존경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1700년대나 2019년이나 인간의 악습은 여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나를 모험의 세계로 빠져들게 해 준 걸리버 여행기는 이제 완역본의 신랄한 풍자를 통해 사회와 인간에 대한 비판의 세계로 안내한다. 두 버전 모두 흥미로운 건 사실이다. 역시 완역본은 읽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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