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 삶 - 사유와 의지
한나 아렌트 지음, 홍원표 옮김 / 푸른숲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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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사유하여야 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사유하게 하는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치사상가 중 한명이자, 다시금 뜨겁게 주목받고 있는 한나 아렌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저서이자 마지막 저작인 ‘정신의 삶’이 출간되었다. <인간의 조건>에서 활동적 삶을 노동, 작업, 행위를 다루는데 비해, 이번 <정신의 삶>에서는 사유, 의지, 판단으로 기획되었다. 아쉽게도 [사유]의 출판과 [의지] 원고를 마무리 한 뒤인 1975년 12월 4일 심근경색으로 인한 갑작스런 사망으로 [판단]은 칸트 정치철학 강좌의 강의자료로만 남아 있어, 이 책에서도 부록 형태로 수록되어 있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예루살렘의 아이히만 中)

‘사유하지 않는 것이 악이다.’악의 뿌리를 무사유로 보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논리를 끌어낸 아이히만의 재판 이후 한나 아렌트는 사유를 비롯한 정신활동이라는 주제에 깊이 빠져들었다. 사유하지 않는 사람은 특별한 신념이나 악의 없이도 누구든 특정한 환경에서 악을 범할 수 있다는 무사유의 위험성은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사유란 무엇인가. 한나 아렌트는 고대에서 현대까지,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소크라테스에서부터 하이데거, 칸트, 헤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여 사유에 대해 탐구한다. 그 방대한 철학적 지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가 말하는 사유의 근원은 그리스와 로마이다. 세계라는 장관에 대한 경외를 사유의 근원으로 보는 그리스와 세계 속에 내던져진다는 두려움을 근원으로 인식한 로마. 경외와 공포라는 이원적 근원으로 사유라는 개념이 시작된다.

 

플라톤은 사유의 본질을 ‘나와 나 자신 사이의 소리 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사유란 자기 자신을 자각하고 내면의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정신활동이다. 그리고 그 사유활동의 부산물은 양심이다. 그렇기에 사유는 선의 영역에 닿아있다. 그것이 우리가 끊임없이 사유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은유와 언어, 사유의 관계에 대한 그의 해석은 무척 흥미로운 지점이다. 은유적인 사유언어는 우리의 정신세계와 현상세계의 사이를 좁힌다. 언어를 통해 사유가 이루어지고, 은유적으로 표현됨으로써 고독한 사유라는 정신활동과 사회, 정치라는 현상세계는 가까워진다.

 

역사적, 철학적 관점으로 분석한 의지는 사유보다도 더 어려운 개념이었다. 나에게 의지는 자유와 힘이라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무언가를 선택 하고 성취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의지를 통해 자신의 힘을 표현하고 나를 둘러싼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정신의 삶’은 철학적 지식 없이 읽기에 무척 어려운 책이다. 여러 번 재독을 해야만 그의 정치철학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기도 하다. 한나 아렌트가 정의한 신비스러운 하나 속의 셋 - 사유, 의지, 판단은 무척 철학적이지만 또한 삶의 매순간에 닿아 있다. 우리는 매일 생각하며 살아간다. 아무 생각도 없이 살아가기란 의외로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무언가에 대해 깊이 사유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학교, 회사, 정치적 상황, 우리는 사회 곳곳에서 자주 사유하지 않음으로 일어나는 악과 마주한다. 정신의 삶을 실천한 한나 아렌트라는 정치사상가에 대한 관심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그의 철학이 많은 주목을 받고 관련 저서가 끊임없이 출간되는 이유는 그의 사상이 그만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돌파구가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유는 삶과 마찬가지로 죽음에 이르러 종결되지만 우리의 인간다움을 가능케 하는 활동이기에 그만큼 중요하다.(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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