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걸스 1 걷는사람 세계문학선 3
마샤 홀 켈리 지음, 진선미 옮김 / 걷는사람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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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란 인류가 할 수 있는 가장 어리석은 선택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한 순간에 일상이 사라지고, 학살, 약탈, 고문, 인체실험 같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의 잔인한 일들이 수없이 벌어진다. 그 한없이 참혹한 시간 속을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 세 여인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마음에 묵직한 물음과 울림을 준다.

제2차 세계대전과 폴란드의 여성전용 수용소인 라벤스브뤼크 수용소를 배경으로

미국 브로드웨이 배우이자, 은퇴한 후 프랑스 영사관에서 전쟁 피해자들을 돕는 ‘캐롤라인’

폴란드 루블린에서 가족과 평화로운 삶을 살던 어느 날 독일의 침공을 받고 반나치 활동에 참여하다 어머니, 언니 수산나와 함께 라벤스브뤼크 수용소로 끌려간 소녀 ‘카샤’

그리고 여성으로서 쉽지 않은 의사의 길을 걷기 위해 그 수용소에 근무하는 독일인 의사 ‘헤르타’.

1939년부터 1959년까지의 시간 속 세 여인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전쟁, 고통, 자유, 용서와 사랑의 순간들을 풀어나간다.

카샤의 눈을 통해 보여지는 수용소의 삶을 참혹하다. 수용소로 끌려간 카샤는 어머니와 떨어져 언니 수산나와 함께 인체실험을 당하고 ‘래빗’이 된다. 나치의 실험토끼이며, 수술 받은 후 수용소를 껑충거리며 뛰어다녔기 때문에 래빗이라고 불려진 소녀들. 평화가 당연했던 하루하루가 한 순간 파괴되고 가혹한 수용소 환경 속에서 소중한 것을 하나씩 하나씩 잃어간 카샤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언니와 수용소를 탈출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도 치유되지 못한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동화 속 해피엔딩처럼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또 다른 가혹한 상황들이 눈앞에 들이닥친다. 전쟁이 끝난 후 카샤가 겪는 고통, 후회, 죄책감은 그녀의 삶을 계속해서 고통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그녀는 고통에 굴복하지 않고, 고통의 상징이기도 한 헤르타를 만나러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수용소에 도착한 날 수용소 여인에게 극약 주사 놓기를 주저하던 헤르타가 경제적인 이유로 수용소에서 근무하기로 결정 한 후 점점 무감각하게 생체실험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떠올랐다. 독일 외에 다른 민족들을 증오해서, 원한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주어진 일이기 때문에 묵묵히 생체실험을 하고, 사람을 죽이면서도 점점 아무런 의문을 가지지 않는 헤르타의 모습은 무섭기까지 하다.

전쟁 중에도 끊임없이 피해자들을 돕고, 카샤를 비롯한 74명의 래빗이라 불리었던 여성들을 도왔던 캐롤라인의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실제 인물이자 저자가 이 책을 쓰는 계기가 되었던 그녀의 삶은 그녀의 저택 코네티컷 베들레헴의 ‘더 헤이’의 라일락이 가득한 정원 속 라일락처럼 강하고 아름답다.

“그렇지만 나는 한 면만을 생각했던 거야. 아버지는 라일락이 거친 겨울을 지낸 후에만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사랑하셨어.”

캐롤라인은 손을 뻗어, 내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었다. 엄마도 아주 자주 이렇게 해주셨다. “그런 어려움을 거친 후에야 이 모든 아름다움이 나타나게 되니 기적이지. 그렇지 않아?” (P282-283)

캐롤라인, 헤르타는 실존 인물이고, 카샤와 수산나 역시 실재 수용소에서 인체실험을 당했던 자매를 모델로 쓰여졌다고 한다. 실화를 토대로 한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책을 읽는 동안 그녀들의 고통, 힘겨웠던 시간들이 더 마음깊이 가다왔다. 하지만 소설의 제목처럼 카샤와 수산나, 캐롤라인, 그리고 그 시간을 겪었던 많은 사람들의 라일락과 같이 괴로운 시기에 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 강인함에 나 역시 힘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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