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전, 그 법정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다나카 이치로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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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구는 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이 끝난 후 말했다는 전해지는 유명한 말이다. 저자는 1616년을 시작으로 1633년 최종적으로 종교재판 판결을 받을 때까지 갈릴레오가 이단 혐의를 받아 종교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과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바티칸 비밀보관문서를 바탕으로 분석과 사건의 재구성을 하고 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는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자전과 공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 종교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인 17세기의 모습은 아주 달랐다.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중세가 시작되면서 신앙에 대한 부분만이 아닌, 사람이 태어나 죽을때까지 생활의 모든 부분을 카톨릭 교회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1543년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통해 지동설을 주장한 후 70여 년이 지난 1616년 제자 카스텔리와의 편지로 계기로 이단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으로 고발당하면서 시작된 갈릴레오의 종교재판은 1616년 벨라르미누스 추기경으로부터 받았던 지동설은 성서와 모순되는 이단적인 생각이므로 그에 대한 의견을 포기하라는 명령을 1632년 지동설을 인정하는 내용이 담긴 ‘천문대화’라는 책을 통해 위반했다는 죄상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주장했기 때문 종교재판을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와는 달리 현재 남아있는 재판 서류들을 보면 지동설을 부인하는 갈릴레오의 진술을 여러차례 확인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바티칸에서 보관 중이다가 나폴레옹에 의해 프랑스로 옮겨지고, 다시 바티칸으로 반환되던 중 갈릴레오 재판을 비롯한 비밀문서들 상당 부분이 소실되거나 파괴되어 재판 진행에 대해 서류로 확인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다고 하여 무척 안타까웠다.   

그 시대에는 지금과는 달리 자유로운 출판이 불가능하고, 교회에서의 출판물의 검열을 통과해야만했다. 이탈리아에서 이루어지는 출판은 그 지역의 이단 심문관의 허가를, 로마에서의 출판은 종교재판과 이단여부를 판단하는 검사성성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만 출판이 가능했다고 한다. 성서에 기술되어 있는 내용과 반하는 내용이 있는 경우 수정을 해야만 출판이 가능하거나, 금서로 지정되어 출판과, 판매가 금지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니 카톨릭의 권위가 어떠했는지 상상이 된다. 결국 갈릴레오는 1933년 6월 22일 '1616년 벨라르미누스 추기경의 금지 명령'과 저서'천문 대화'에 대한 이단 판결을 선고 받고 이단 기 선서를 한 후 평생 자택 연금을 당하게 된다. 재판 관련 서류를 보다 보면 지금까지 알던 갈릴레이의 모습과 다른 면도 보이지만, 그것은 결코 실망이라는 감정은 아닌 것 같다. 종교가 곧 삶이었던 시대, 뛰어난 과학자였지만, 동시에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그의 종교와 과학 사이에서의 고뇌는 상상하는 것 이상이 아니었을까?

재판의 흐름을 잘 이해하기 위해 책 초반에 설명하고 있는 종교재판의 의미와 과정은 흥미로웠다. 그 시대의 종교재판이란 과학적으로 합리적인가에 대한 타당성이 아닌 성서에 용인되는가에 대한 여부로 죄의 성립여부가 결정되었고, 이단심문관이 재판관이자 곧 검사였다고 한다. 피의자가 자백을 하지 않는 경우에 행해지는 고문은 정식 수사 기법으로, 고문에 의한 자백은 처벌을 결정하는 신빙성 높은 증거였다고 하니, 이 역시 종교의 권위가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는 사례일 것이다.

이 책은 종교와 과학, 어느 한편에 서지 않고 재판문서와 편지 등 당시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어 그 시대의 종교와 사람들의 관계, 과학의 발전이 시대에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당시의 사회상을 다양한 방향에서 볼 수 있게 해준다. 너무나도 유명한 갈릴레오의 재판을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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