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 - 자전적 이야기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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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는 타인에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또한 언어에는 그 나라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외국어 공부를 하다보면 ‘우리 집’과 'My home' 같은 단어는 동일한 의미를 가지면서도 공동체 문화와 개인주의 문화 같은 국가 별 문화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태어날 때부터 함께했던 언어를 자의가 아닌 이유로 잃어버린다는 것은 그때까지의 자신의 일부를 빼앗기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에게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로 친숙한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자전적 이야기 ‘문맹’ 은 모국어인 헝가리어를 잃고 문맹이 되어버린 작가가 프랑스어를 새로 배우고 다시 글을 쓰게되는 그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부터 질병과도 같다고 표현할 정도로 읽기와 쓰기에 몰두하던 그녀는 국가의 정치적인 상황으로 인해서 모국 헝가리에서 썼던 시와 글들을 모두 두고 남편과 갓난 아이, 그리고 사전이 든 가방만을 들고 스위스로 망명을 하게되고, 프랑스어라는 새로운 언어를 만나게 된다.
학습이나 취미가 아닌 삶으로써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또 다른 나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언어의 상실과 탄생이라는 고통 속에서도 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은 그녀의 글은 그래서인지 작고 가벼운 책의 크기에 비해 무척 무겁다.

간결한 문장 속에 담긴 책 속 그녀의 이야기는 항상 현재형이다.
 
나는 읽는다. 이것은 질병과도 같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눈에 띄는 대로 모든 것을 읽는다.(P9)

'시작‘
네 살의 그녀는 ‘읽는다’라는 전쟁을 이제 막 시작한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어를 쓰는 작가들처럼은 프랑스어로 글을 결코 쓰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쓸 것이다.
이 언어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운명에 의해, 우연에 의해, 상황에 의해 나에게 주어진 언어다.
프랑스어로 쓰는 것, 그것은 나에게 강제된 일이다. 이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한 문맹의 도전 (P112-113)

그리고 문맹이 된 그녀는 새로운 언어와 함께 또 다른 전쟁을 시작한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온 망명길 속에서도 그녀는 사전과 함께였고, 이제 또 다른 사전과 사랑에 빠졌다. 조국을 잃고, 언어를 잃었지만, 공장에서 들려오는 기계소리에 운율을 맞추어 그녀는 이제 프랑스어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아이와 함께 사전을 손에 들고 언어를 배워나간다. 소설과, 희곡들. 그녀의 이야기들이 하나씩 하나씩 태어난다.

그녀의 말처럼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어를 사용하던 작가들처럼 글을 쓰진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운명의 고통에 무릎 꿇지 않고, 사랑하는 언어의 상실을 이겨낸 그녀의 글은 간결하지만 큰 울림으로 내 마음속을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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