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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발을 담근 채 ㅣ 독고독락
이새벽 지음, 김승아 그림 / 사계절 / 2026년 6월
평점 :
숨 쉬고는 있지만 어딘가 생생하지 않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필요와 불필요를 빠르게 가르고, 불필요한 것들은 가능한 한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싶어지는 시대다. AI는 그런 욕망과 자연스럽게 만난다. 질문하면 정리된 답이 돌아오고, 복잡한 생각의 과정을 건너뛴 채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감정도 비슷하다. 누군가와 부딪히고 오해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거치기보다, 정제된 언어로 객관적인 답을 건네는 존재를 찾게 된다. 그럴수록 관계 속에서 감정을 부딪치고 다루는 경험은 줄어든다. 유대와 관계성이 조금씩 사라지는 듯한 감각. 이새벽 작가의 #물에발을담근채 는 짧은 분량의 청소년 소설이지만, 첫사랑의 설렘에서 출발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차별과 혐오, 배신과 성장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촘촘하게 담아낸다.
초등학교 5학년인 우리 집 아이 호수 역시 이 작품을 인상 깊게 읽은 거 같았는데, 아이의 독후감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점은 이제 청소년 문학 역시 단순히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넘어 인간과 AI, 혹은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장애와 비장애, 다수와 소수의 문제를 이야기하던 자리에 새로운 질문이 등장한 것이다.
아이는 또 이 이야기가 과연 얼마나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고 했다. 인간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 안드로이드가 등장하는 모습을 보며 수십 년 뒤를 상상했지만, 기술의 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생각보다 가까운 미래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작품 속 “높은 콧대와 밝은 피부, 반짝이는 효과” 같은 반복적인 묘사가 단순한 표현인지, 아니면 성빈의 정체를 암시하는 복선인지 궁금해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어린 독자가 자연스럽게 세계관과 서사의 단서를 추적하게 만든다는 점 역시 이 작품의 매력이다.
호수의 독후감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마지막 부분이다. 아이는 “왜 마지막이 슬프고 감동적이었는지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고 썼다. 성빈과 ‘나’가 다시 만나서인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서인지, 아니면 그저 자신의 감정 때문인지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 어떤 감정이 남았다고 했다. 어쩌면 좋은 문학은 바로 그런 경험을 남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감정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느끼게 만드는 것 말이다.
또 아이는 자신이 읽은 많은 로봇과 AI 이야기 가운데 이 책이 가장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고 말했다. 다른 작품들이 우정이나 질투 같은 비교적 단순한 감정에 머물렀다면, 이책은 친구와의 관계, 좋아하는 마음, 상처와 후회, 차별과 용서가 한꺼번에 얽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안드로이드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결국 사람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점에서 더욱 깊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성빈은 인간이 아니지만 서운함과 상처, 외로움과 분노를 배운다. 그렇다면 감정을 느끼고 관계를 갈망하는 존재를 우리는 어디까지 인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반대로 인간인 우리는 정말 인간답게 행동하고 있는가.
결국이책은 AI에관한이야기이면서도인간에관한이야기다. 감정을느끼는존재를우리는어디까지받아들일수있는지, 그리고타인의다름앞에서우리는어떤선택을하는지를묻는다. 어쩌면인간다움이란인간이라는종에주어지는자격이아니라, 타인의마음을이해하려는노력과관계를끝내포기하지않는태도에있는것은아닐까. AI가점점인간을닮아가는시대에, 이소설은오히려우리에게인간다움이무엇인지다시묻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