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87주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엔 호수랑 종일 도서관에만 있어도 모든 세상이 나의 품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새로운 그림책을 찾을 때마다 열리는 문으로 들어가다 보면 그곳엔 늘 새로운 유토피아가 존재했다. 나는 그때에도 이 책을 읽었다. 신박한 그림책을 찾은 기쁨과 함께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내 마음도 함께 띠용용 소리를 내며 폴짝폴짝 날뛰던 순간이 기억난다. 간결하고 명료하면서도 또렷한 메시지를 담은 이 책이 철학이 아닌 그림책 분야에 놓인 것이 놀라웠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내용과는 반대로 읽지 않을 권리에 대해서도 생각했던 것 같다. 책의 주인공처럼 읽지 않는 사람을 인정하는 것 역시 책을 읽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포용의 지혜라고 느꼈다.읽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시기가 지나면,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시기로 접어든다. 책 속 활자를 마주했던 시간은 지문을 읽어내려 가는 시간으로 바뀌거나 혹은 미디어 매체로 옮겨간다. 하나도 자연스럽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책과 점점 멀어지고 책은 잊혀진다. 독서가 습관이라는 말에도 동의하지만 습관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조금씩이라도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 시간을 꿰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책이 다른 자극보다 즐겁거나 비등해야 한다. 재미라는 주관적 감정을 채울 수 있는 책을 고르는 능력은 독서력 만큼이나 중요하다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그래책이야 는 책이 얼마나 중독성있는 매체인지 들려준다. 나의 읽기가 그림책을 거쳐 아동문학, 청소년 문학에 까지 도착해 있는 까닭도 아이와 내가 공유할 수 있는 유익하고 접근성이 뛰어나지만 장기간 이어갈 수 있는 활동이 책이라는 확신에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집 어린이를 미디어로부터 완벽 차단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그래도 마주 앉아 함께 나눌 책을 고르고 읽고 나누는 부모는 될 수 있을 거 같다. #그래책이야 는 핸드폰 스크롤을 무의식적으로 넘기고 있을 손가락을 책을 넘기는데 사용할 수 있도록 인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