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의 인사 - 제12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 수상작 샘터어린이문고 76
어윤정 지음, 남서연 그림 / 샘터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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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살고보니, 내가 잘나서 잘된 것은 하나도 없더라구요. 운, 상황, 시기는 물론이고 부모님의 기도빨까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나를 돕고 있었고 내가 머물렀던 모든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서 지금에 내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환갑을 바라보는 연세에 선생님이 엷은 미소를 띄며 말씀하셨다. 우연한 것이 있을 수는 있지만 우연하게 찾아온 행운을 지키는 것에 내 노력만 들어갔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만이라는 말씀을 들으며, 과거에 나였다면 납득 조차 어려웠을테지만 현재의 나는 그것이 비단 맹목적 희생이 아니었다해도 누군가 혹은 어떤 기운이 나를 돕고 있었다는 것에 동의가 되었다.

내겐 멀리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점점 거리를 좁혀 추격해 온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것. 경험한적 없는 슬픔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형언 조차 되지 않는 애달픔과 그리움을 어찌 감당할까. 사랑하는 사람과 잘 이별하는 것도 훈련으로 가능한거라면 좋으련만 무뎌지거나 단련되지 않는 가장 날카롭고 뾰족한 고통은 가족의 죽음이라 짐작하며 #거미의인사 를 읽으니 끝맺음을 못할 것만 같았다. 떠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며 남아있는 가족의 숨결 가까이 맴돌고 있다는 가정 자체가 허망함을 한꺼번에 몰고 왔다. 숨을 고르고 최대란 감정과 나를 멀찍이 두려 애쓰며 읽었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이 남기고간 추억의 잔재를 가족들이 추스르는 장면마다 나도 같이 와르르 무너지기를 반복하며 그리 길지 않은 책을 여러번에 걸쳐 읽었다.

이 이야기는 슬픔에 잠식될 권리와 떠난 사람을 기리고 영면을 기도하는 남은 사람들에 감정을 폭 넓게 포용하고 있다.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환생을 택한 영혼에게도, 떠난 사람을 놓아주지 못한채 지금을 살지 못하는 가족들에게도. 존재하는 사랑에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길 수 있게 한다. 영원한 안녕을 받아들이는 유예의 과정을,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에 시점으로 평등하게 갈라서 들려줌으로써 치우칠 수 있는 감정을 다잡게 한다. 그 무엇보다 경험해보지 않고선 짐작하기 어려운 (이별 후에) 슬픔을 막연하게 심어주지 않고자 환생이라는 이타적인 방법을 선택했음이 느껴진다. 그 노력만큼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대상이 사라져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추억속에서도 존재하고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좋겠다 #거미의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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