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LiPE 2 : 튤립의 여행 팡 그래픽노블
소피 게리브 지음, 정혜경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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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적 질문을 던지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이다. 재밌었어? 오늘 뭐하고 놀았어? 이런 질문 밖에 하지 못하는 내가 못마땅해도 그것마저 생략하면 내 책무를 다하지 못한 기분이라 오늘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재밌었어? 누구랑 놀았어? 매일 교문을 나오면 듣는 데자뷰 같은 질문이 따분할 법도 한데 재잘재잘 이야기를 들려주니 고마울뿐이다. 그 고마운 존재와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다. 주차를 한 뒤, 나는 차에 있는 쓰레기를 간단히 정리하고 있었고 아이는 화단에 심어진 나무들에 새싹을 관찰하고 있었다. 나무를 보던 아이가 쪼그려 앉아 뭔가를 만지려 하는 순간- 마침 내가 뒤를 돌았는데 손가락이 향하는 종착지에는 누군가 뱉아놓은 침이 있었다. 얼른 아이를 불러 시선을 돌렸지만 우려했던 일은 벌어진 뒤였다. 나이까지 들먹여가며 얼마나 더 그리고 어디까지 잔소리를 해야 분별력과 위생개념이 생기겠냐고 아이를 다그치다 못해 퇴근한 남편을 앉혀놓고 이 사건을 일렀다.

남편은 이렇게 질문했다. “왜 그걸 만졌어? 아니다. 왜 그걸 만지고 싶었어?”
호수가 답했다. “굳어버린것 같았어, 그래서 굳은 건지 얼어버린 건지 궁금했어.”
남편이 다시 물었다. “호수가 다른 사람이 뱉은 침이 지저분하다는 걸 모르진 않았을 거 같은데 꼭 확인해야만 했어?”
호수다 또 대답했다. “그 순간에는 더럽다는 생각보다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어.”
아빠는 이어서 물었고 “그래서 그 굳은게 아닌걸 확인하고 나니 어땠어?”
호수는 차분히 답변했다. “그때 좀 놀라서 손을 뗐는데 엄마가 화를 내는 바람에 미안했어.”
오은영 박사님이 양육자들에게 건네는 솔루션에 정석을 보는 듯한 대화가 오가는 와중에도 그 침이 내 아이에 손에 닿은 것이 불결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런 엄마를 둔 호수가 저런 아빠도 함께 가졌다는 안도감도 들었다.

#튤립의여행 은 잘 만들어진 드라마에 대본집을 읽은 것 같다. 최근에 내가 본 드라마 중에는 나의 해방일지가 있었던 거 같은데, 그 드라마에 견주어도 손색 없을만한 대사들이 독자로 하여금 추앙에 마지 않게 한다. 필력이 상당한 작가일수록 문장은 단순하고 울림을 깊다 하였다. 현란한 미사여구와 지적 허영을 뽐내는 글들에 지쳐있는 누군가에게는 담백한 파장을 전할 것이고 단조롭고 딱딱한 문어와 구어 그 사이에 문장들이 식상해진 누군가에는 무해하고도 다정한 말들에 예쁨을 느낄 수 있게 할 것이다. 무엇보다 질문이 대화보다 어려운 내게 어떻게 질문하고 기다릴 것인지 반성하게 하는 책을 만났다. N차 정독 필수 #주니어RHK #호수네책 #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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