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라기엔 시집 같고, 시집이라 하기엔 글로 풀어낸 요리집 같은 책. 읽고 읽다 어떤이의 목소리를 통해 들고 싶은 영롱하게 반짝이는 문장들. 이 책은 여름 뙤양볕 아래에 든눠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가 읽어주는 것을 들어도 당장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하고 싶을 책이다. 책을 덮자마자 곧장 당근씨앗을 사서 우리의 텃밭으로 달렸다. 꽃을 보기 위해 딜을 심은 것처럼 당근의 잎을 가질 수 있다면 내 3평의 텃밭의 한고랑쯤 기꺼이 내어주고 싶었다. 나는 입으로 들어가는 기쁨이나 완성된 요리의 성취보다 재료를 준비하는 전반의 단계를 더 사랑한다. 내 텃밭에서 나는 재료로 무엇을 만들 수 있나 상상해보는 재미로 거듭 같은 장을 펄럭여도 지겹지 않은 이 책을 누구에게 선물해야 할까 고민해본다.문장에 머문다. 1.2.3. 순서대로 나열된 레시피가 아닌 문장으로 풀어낸 그 모든 말들에 머문다. 손가락 끝을 더 야무지고 아름답고 섬세히 움직이고 싶다. 내가 무엇이라도 된 듯 머리카락도 질끈, 앞치마 끈도 질끈 오늘도 새벽녘 동이트는 것을 보며 오늘의 식사메뉴 밑작업을 해둔다. 일을 하고 혹은 아이의 학원을 바쁘게 라이드 하고 나서 돌아오는 식사준비 시간에는 느끼지 못할 만끽의 순간들을 이 책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뻤다. 고맙습니다 #식탁위의고백들 #이혜미에세이 #창비 #호수네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