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흉을 본다. 그런데 내 남편을 흉을 보면서도 그래도 너의 남편보다 내 남편이 낫다는 마음도 함께이다. 흉을 보다가도 은근슬쩍 그이가 그럴수 밖에 없었던 이유, 어쩌면 흉을 보면서도 내 마음 한켠에 담아둔 그이를 이해하고자 하는 합리적 견해를 흘린다. 말이 흘리는것이지 대변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짚신도 제 짝이 있는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남의 남편과 안살고 내 남편과 살고 있는거겠지. 이런 감정에 조차 진솔한 문장들이 재미있다.친구들간에 감춰놓고 느끼는 나만의 비교우위의 감정 혹은 어쩔수 없이 인정하는 못가진 것에 대한 담담함 같은 미묘한 내면의 소리 까지도 군더더기 없이 적어간 문장들이 100년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에 대한 괴리를 좁혀준다. 독립운동을 하는 시절에 사진으로만 만나 하와이까지 시집을 가고 내 의지로 돌아올수도 없는 이 모든 상황이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는 나와 100년전 그녀들의 감정이 섞인다. 친정엄마와 가까이 지내며 육아하는 누구 혹은 누구에 누구 이야기만 들어도 부러워했던 내게, 마을의 크고 작은 인맥들은 타지에서의 삶을 즐겁게 지내는 원동력이었다. 지금의 내 직장도 그런 마을공동체에서 시작되었고 나의 크고 작은 살림살이들도 꼬마의 살림들도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며칠전에도 포장도 뜯지 않고 언젠가 쓰겠지 하고 고이 싸놓았던 키티머리띠를 발견했는데 우리 꼬마를 줘도 되겠냐는 문자를 받았다. 연속성이 전혀 없게 느껴질 위 세 문단이 내가 책을 읽는 포인트였다. 민족, 나라, 친구, 가족 이 모두를 꾸리는 여성 그리고 그 여성들의 이야기를 몇문장으로 표현하기에 아쉬워 말이 길었다. 나는 가엽거나 딱한 마음도 깊이를 헤아릴수 있을때 가능한 감정이구나 알게됐다. 그 모든 이름표를 달고 있는 그녀들의 깊이를 알 수 없으니 나는 그저 내 나름의 응원의 마음을 보탤뿐이다. 나와 다른 주인공이 되어 이입했을 독자의 서평이 궁금해지는 책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