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타 이슬라
하비에르 마리아스 지음, 남진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토마스 네빈슨'이 열네 살 때 ‘베르타 이슬라’가 다니던 학교로 전학을 왔다. 둘은 그 이후로 내내 친하게 지내다가 연인으로 발전했다. 

베르타가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인문학을 공부하는 동안 뛰어난 언어실력과 모방 능력을 가지고 있던 토마스는 옥스퍼드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재학 중 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어쩔 수 없이 영국 비밀정보부를 위해 일하는 스파이가 된다. 

이후 두 사람은 스물 셋도 안된 어린 나이에 결혼하지만, 토마스가 업무를 핑계로 자주 집을 비운다. 자신이 영국 대사관에서 일하고 있으며, 교육 때문에 자주 오랜 시간 영국에 파견을 나가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집에 돌아올 때마다 토마스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미세하게 얼굴과 몸매가 조금씩 달라져 있고, 어떨 땐 목소리나 성격도 달라져 있다. 몸에 상처를 입어 오기도 하고, 그 상처가 감쪽같이 사라지기도 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원래 베르타가 알던 토마스로 돌아오긴 하지만, 이 상황이 자꾸만 반복되자, 베르타는 어떤 토마스가 진짜 토마스인지, 자신이 알던 토마스가 맞긴 한건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진다.

토마스는 사람을 속이고, 죽이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목적을 이루면서, 본인 스스로는 대의와 평화, 조국을 위해 일한다는 신념이 있다고 정당화한다. 하지만, 베르타에게는 그런 신념이 무의미하다. 토마스의 신념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도 없다.

사실 어릴 적부터 비밀 정보부의 스파이는 못 하는게 없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멋있는 모습이라는 로망이 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그건 영화나 소설 속 미화된 허상일 뿐이었다.

현실에서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의 가족은 한 순간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걱정, 불안, 초조, 두려움에 고통 받는다. 꼭 필요한 순간에 연락도 되지 않고, 옆에 있어 주지도 않는다. 힘든 일이 생겼을 때, 기대거나 의지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불안한 생활이 반복될수록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조금씩 어긋나게 될 것이다.
 
가족, 특히 아내의 시선에서, 스파이 남편과 그 남편과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미묘한 감정과 영향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