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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헤르만 헤세 지음, 전혜린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는다는 것은, 책장을 넘기는 행위를 넘어 내 안의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는 여정이었다. 책을 읽으며 이토록 강렬하게 나의 존재를 흔든 책은 드물었다. 이 책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내면에 잠든 나를 깨우는 거울이자, 경탄스러운 진리를 담은 글이었다.
『데미안』은 나에게 두 개의 세계를 보여주며 시작된다. 부드러운 빛과 안정, 사랑이 있는 ‘밝은 세계’와 소란과 혼돈, 불안이 가득한 ‘어두운 세계’. 싱클레어는 이 두 세계의 경계에 서서 갈등한다. 그리고 그 갈등의 시작은 한 번의 거짓말이었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고, 이방인이 되고 싶지 않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작은 거짓말. 나는 그 거짓말이 낳은 파국을 보며, 나의 삶도 이 두 세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프란츠 크루머의 협박 아래, 싱클레어는 자신의 ‘밝은 세계’가 얼마나 허약한지 깨닫는다. 그는 아버지의 사소한 꾸짖음 뒤에 숨어, 자신이 저지른 진짜 죄(자신의 연약함을 감추려 했던 자기기만)를 감추려 한다. 이때 나는 싱클레어에게서 삐뚤어진 우월감을 보았지만, 이내 그것이 ‘밝은 세계’의 한계를 직시하고 그 세계로부터 분리되기 위한 고통스러운 첫걸음임을 이해하게 되었다.“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문장은 나의 마음에 깊이 박혔다. 내가 의지해왔던 모든 것이 무너져야만 비로소 나만의 길을 세울 수 있다는 헤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이 책은 ‘죽음’과 ‘탄생’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싱클레어는 자신이 믿어왔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처음으로 나는 죽음을 맛보았으며, ...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이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새 뿌리를 갖고자‘하면 어둠 속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서, 그는 무너진 세계에 머무르는 대신, 어둠 속으로 들어가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야 함을 깨달았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삶을 깊이 성찰하게 되었다. 불완전하고 나의 모습들을 자조적으로 보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그러나 『데미안』은 그 실패와 좌절이야말로˝더 이상 채워야 할 공백이 아니라, 나를 완성해가는 조각들˝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의 상처는 가려야 할 흉터가 아니라, 오히려 고통의 순간에 빛을 발했던 나의 흔적임을 알게 되었다.
『데미안』은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길이 결코 순탄치 않으며, 수많은 고통과 외로움이 동반되는 투쟁임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고통과 투쟁의 과정이야말로 가장 경탄할 만하고 아름다운 일임을 깨닫게 해준 책이다. 이 책은 앞으로도 내가 길을 잃을 때마다, 나를 둘러싼 껍데기를 깨고 진정한 나로 투쟁하는 용기를 일깨워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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