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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다 모든 것이다 - 여성 선지식의 삶을 통해 배우는 깨달음의 본질과 마음공부법
임순희 지음 / 불광출판사 / 2020년 12월
평점 :
‘나는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다. 모든 것이다.’ 이 한 문장만 봐서는 언뜻 그 의미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 예전에 보았던 뤽 베송 감독의 영화 〈루시(LUCY)〉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온 “I am everywhere.”가 연상될 뿐이다. 여자면 여자이고 남자면 남자이지 모든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처음에 언급한 ‘나는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다 모든 것이다’ 이 문장은 현재 전국 주요 도시에서 ‘몽지릴라 선(禪)공부 모임’을 열고, 그 모임에서 선(禪)을 통한 진짜 행복에 이르는 길을 전하고 계신 임순희 작가님의 신간 책 제목이다. 부제로 적힌 ‘여성 선지식의 삶을 통해 배우는 깨달음의 본질과 마음공부법’을 읽으니 그제서야 명확하지는 않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이 책의 출간 목적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책 제목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직 아니다. 그것은 본문을 읽어야만 선명하게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 출신의 저자가 늘 동경해왔던 육지에서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가의 길을 걸어도 보고, 행복을 찾기 위해 사랑도 해보았으나 무언가에 갇힌 듯한 답답함이 지속되어 바깥에서는 도저히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자각을 하여 지금까지 추구해온 삶의 방식을 모두 멈추고, 선(禪)공부를 하고 있던 남편과 함께 마음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10개의 파트로 구성된 이 책은 석가모니 붓다의 가르침을 받고 몸소 깨달은 39명 여성들의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겪어야만 했던 온갖 홀대와 차별 속에서도 깨달음을 성취한 여성들의 삶을 통해 정신적 방황을 하는 현대인들의 삶을 반추해보았다. 마음공부 하는 여성들의 체험사례와 공부의 여정을 통해 마음공부의 길이 결코 특별한 사람만이 가는 길이 아님을 이 책을 통해 알리고자 했던 저자는 참된 자신은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닌 남녀로 나뉘기 이전의 본래 우리 자신이라고 설파한다. 이 책을 통해 삶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죽음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워지는 대자유의 길을 함께 하기를 당부한다.
기원전 5~6세기경 붓다가 살던 인도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서 남성과 동물의 중간 지점에 놓인 존재로 인식되었다. 어려서는 아버지에 의지해서 살고, 결혼하면 남편에 의지해서 살다가,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 아들에 의지해서 살아야만 했다. 마치 조선 시대의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떠올리게 한다. 한마디로 여성들은 스스로는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기에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살아가야만 하는 무능한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식이 팽배하였고, 남성에게만 출가의 기회가 주어졌던 당시의 인도 사회에서 여성이 출가를 허락받고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었으나 석가모니 붓다의 이모이자 양어머니인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붓다의 시자 아난다와 함께 여러 번의 간청 끝에 출가를 허락받아 75세의 나이에 불교 교단의 첫 출가 비구니 스님이 되었고 아라한과를 증득하게 되었다. 이후 수많은 여성들이 불교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성취하게 되었다. 붓다는 이들 출가한 여성들에게 비구니로서 지켜야 할 팔중법(八重法)이라는 계율을 주었는데 비구보다 더 무거운 계율을 내린 데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세속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는 당대 인식과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의 차별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해진 시기는 삼국시대인데, 고구려는 소수림왕 2년 때인 서기 372년에 전진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였고, 백제는 침류왕 원년인 384년에 동진으로부터 불교를 수용하였다. 반면에 중국과 직접 교류가 어려운 지리적 위치에 있던 신라에는 상대적으로 불교가 늦게 전해졌는데 공인된 것은 법흥왕 14년이던 527년 이차돈의 순교 이후이다. 한반도에 불교가 전해진 이래 첫 여성 불자이자 비구니로 기록에 남아 있는 사람은 모례의 누이동생 사씨(史氏)이다. 신라를 방문한 스님들이 한결같이 일선군(지금의 경북 선산 지역)의 모례라는 사람 집에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씨는 아도 스님에게 감화되어 출가를 해서 영흥사(永興寺)라는 절을 짓고 살았는데, 신라 불교를 중흥시킨 법흥왕과 왕비가 말년에 출가해 영흥사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진흥왕과 왕비 역시 영흥사로 출가해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의 처 지소부인 또한 남편이 죽은 뒤 출가해서 스님이 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최초의 비구니인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분별망상을 갈아 없애는 쇠 맷돌이라 불린 유철마(劉鐵磨)스님,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라 했던 말산요연, 남편과 함께 선공부를 한 감지 부인, 아들을 향한 애착에서 눈 뜬 꾸마라 까싸빠의 어머니, 죽은 아들을 살리려 했던 끼사 고따미, 열 명의 아들과 딸들에게 버림받은 소나, 붓다마저 버리고 본성을 깨달은 계씨 부인, 빼어난 외모에 자만했던 케마 왕비, 아난다를 사랑한 천민의 딸 프라크르티, 애욕을 깨달음의 불꽃으로 바꾼 광덕의 아내, 기구한 운명을 해탈의 도약대로 삼은 웁빨라완나, 난봉꾼의 마음을 돌려놓은 수바, 번뇌가 보리(菩提)이고 진흙에서 연꽃이 핀다고 한 명실도인, 천 조각을 걸치고 걷는 여자 빠따짜라, 사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했던 무착묘총, 스승을 그리며 노래한 무제혜조와 초종,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여자 앗다까시, 향락의 장소를 깨달음의 성지로 바꾼 암바빨리, 졸음을 쫓으려 손바닥을 꿰고 염불한 여종 욱면, “입을 열어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일갈한 정십삼낭, 사형수와 사랑에 빠진 꾼달라께시, 덕산 선사의 말문을 닫게 한 떡 파는 할머니, 말없이 두 손을 펼쳐 보인 최련사, 마음도 부처도 물건도 아니라 했던 적수도인, 당신이 타고 있는 소를 따라 가라한 평전수, 법의 즐거움마저 놓아 버린 향산불통, “한 물건도 없는데 무엇을 씻는단 말인가”라고 한 공실도인, 현묘함도 눈 속의 모래라 했던 각암도인, 도를 깨친 가족의 걸림 없는 삶을 보여준 방 거사 가족, 곡소리로 선사들과 솜씨를 겨룬 능씨 할머니, 오대산에 가려거든 곧장 가라 일러준 오대산 할머니, 줄 것이 따로 없고 받을 것이 따로 없다는 것을 알게 한 유씨 할머니, 황벽 선사를 일깨운 이름 모를 할머니, 열일곱 스님을 꾸짖은 묘신 스님, 산승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했던 혜광정지, 여성이 여성에게 법을 전한 나암혜온, 수많은 엉터리 장로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를 받은 묘도 선사, 불도(佛道)로 억압의 시대를 뚫어낸 이여순 스님까지 총 39명의 깨달음을 얻은 여성 선지식의 행적을 각종 경전의 기록에 입각해서 설명이 되어 있고, 39명이 깨달은 내용을 여러 형태로 서술하여 이 책 한 권으로 불교의 핵심 종지(宗旨)를 모두 드러내고 있다. 나와 남이 따로 없고 모든 것이 하나이며, 내 것이라는 집착과 분별을 내려놓으면 지금 이 순간 나의 참 본성, 깨달음의 세계가 저절로 눈앞에 드러난다는 것을 체험하실 분들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