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의 영지순례 - 기운과 풍광, 인생 순례자를 달래주는 영지 23곳
조용헌 지음, 구지회 그림 / 불광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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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의 여파로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집콕생활을 하고 있다. 작년 추석에 이어 올해 설날 명절도 질병관리청의 권유대로 친지나 친구들과의 모임을 자제하고 전화나 SNS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고 있는 상황이다. 곧 시작될 백신 접종의 효과로 인해 확산하는 코로나의 기세가 꺾여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아이들도 비대면 수업받느라 스트레스가 많았을텐데 아직은 다소 이른 감이 있으나 코로나가 종식되면 그동안 움추렸던 몸과 마음을 활짝 펴고 가족들과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 때마침 강호 동양학자이신 조용헌 선생님의 신간이 나왔기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책을 단숨에 읽어보았다. 이미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림과 함께 보는 조용헌의 담화(談畵), 조용헌의 휴휴명당(休休明堂) 그리고 조용헌의 인생독법(人生讀法)을 읽은지라 흔히 하는 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신간 조용헌의 영지순례(靈地巡禮)속으로 뛰어들었다. 2015년 여름에 출간된 조용헌의 휴휴명당(休休明堂)2020년 겨울에 출간된 이번 조용헌의 영지순례(靈地巡禮)를 비교해 보니 소개된 장소만 다를 뿐 구성은 거의 비슷하다. ‘도시인이 꼭 가봐야 할 기운 솟는 명당 22기운과 풍광, 인생 순례자를 달래주는 영지 23으로 바뀌었고, 고창 선운사 도솔암이 두 책에서 유일하게 겹치는 곳이다. 선운사와 도솔암은 몇 년 전에 다녀온 적이 있어 더욱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았다. 아울러 팔공산 갓바위는 본인이 사는 곳에서 멀지 않아 거의 매년 올라가는 곳이고, 특히 딸아이 임용시험을 앞두고는 더욱 자주 오르내려서인지 무척 반가웠다. 경주 문무대왕릉 역시 바다가 보고 싶을 때 자주 방문하는 곳인지라 낯설지가 않다. 두 책 모두 사진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어 마치 직접 가서 본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책은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은 신령의 땅-그곳에 가면 힘이 솟는다.’, 2장은 치유의 땅-그곳에 가면 슬프지 않다.’, 그리고 마지막 3장은 구원의 땅-그곳에 가면 길이 보인다.’이다. 저자는 영지(靈地)’를 한국식으로 명당(明堂)이라고 규정하고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는 곳에서는 특별한 에너지가 솟으므로 이러한 공간에 머물면 땅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몸속으로 들어옴으로써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고 정신이 또렷해지므로 자기정화(自己淨化)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한다. 인법지(人法地), 즉 사람은 땅에서 배우고, 지법천(地法天), 즉 땅은 하늘로부터 배우고, 천법도(天法道), 즉 하늘은 도에서 배운다. 그리고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 도는 자연으로부터 배운다. 자연은 우리에게 말 없는 가르침을 끊임없이 주고 있다는 것이다. 대륙에서 툭 튀어나와 삼면이 바다와 접한 한반도는 그 자체가 천하의 명당이라 할 수 있는데, 신라 말기 도선국사는 전국에 3,600군데의 명당이 있다고 말했으니 명당의 관점으로만 보면 우리나라는 하늘이 내려준 축복받은 땅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아울러 저자는 한국의 영지는 기운도 좋지만 그 풍광 또한 일품인지라 아름다운 풍광을 통해 치유의 효과가 있다면서 만사가 시들하고 허무하며 분노심이 들 때는 장엄한 풍광을 마주하라고 조언한다. 땅에서 올라오는 기운이 척추뼈를 타고 올라와 머리를 거쳐 얼굴의 양미간으로 흘러 내려오는 맛을 느끼면 분노는 차츰 사그라든다고 한다.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이 되고, 젖소가 마시면 우유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천지자연의 기운을 누가 받아 쓰느냐가 관건인데 쓰는 사람의 그릇과 기질, 목적에 따라 각기 달리 발현된다고 한다.

 

   전남 장성군에 있는 백양사(白羊寺)는 절 뒤쪽에 약간 흰색을 띤 거대한 암벽이 서 있는데 멀리서 보면 커다란 백학이 앉아 있는 모습 같아 백학봉(白鶴峰)이라고 부른다고 하고, 백양사 뒤쪽 산길로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가면 운문암(雲門庵)이 나오는데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공부하기 좋은 이름난 수행터로 북쪽에서는 금강산 마하연을, 남쪽에서는 백양사 운문암을 양대 도량으로 꼽았다고 한다. 운문암의 바닥이 암반이어서 이 터의 강한 기운이 머리 회전을 빠르게 한다고 하니 각종 시험을 앞두고 있는 수험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다. 미국 애리조나주의 세도나(Sedona)도 기운이 강하다고 하지만 밀도와 에너지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산들이 결코 밀리지 않으며 사실 계룡산은 세도나 보다 더 기운이 강하고 좋다고 한다. 계룡산은 산 전체가 통바위로 되어 있어 기운이 강한 편이다. 계룡산 등운암(騰雲庵)은 암자 바로 머리 위에 연천봉의 정상이 있어 도사들의 영발 충전소라고 불린다.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되면 충전기를 콘센트에 꽂아야 하듯이 연천봉 암반이 콘센트 작용을 하여 음력 보름날 전후에는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무속인들이 기도를 드리러 이곳을 찾는데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경쟁이 벌어진다고 하니 명당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하늘에 뜨는 달을 천중월(天中月)이라 하고, 산봉우리 위로 뜨는 달을 산중월(山中月)이라 하듯이, 물속에 뜨는 달은 수중월(水中月)이라고 한다. 하늘의 달이 물속에 비칠 때 이를 보는 것이 또 다른 묘미인데 충청도 서해안의 천수만 가운데 섬에 있는 암자인 간월암(看月庵)이 수중월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한다.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저녁에 지는 석양을 보기에 좋은 지점이 땅끝마을 해남의 미황사(美黃寺)라고 한다면 달을 보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간월도의 간월암이라고 한다. 간월암에서 보는 달은 고요하면서도 충만함이 느껴지므로 인생이 허무하다고 느끼거나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은 간월암에 가서 달빛 바다를 한번 보기를 추천한다. 이외에도 전쟁이나 전염병을 피해서 목숨을 부지하기 좋은 10군데의 아주 좋은 피난터라는 십승지(十勝地)’, 누구나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팔공산 갓바위(관봉 석조여래좌상) 부처님, 동해안 최대의 무속 성지인 경주 감포 앞바다 문무대왕릉, 철원의 심원사(深源寺), 남해의 용문사(龍門寺)와 함께 조선의 3대 지장 기도처로 이름이 난 고창 선운사(禪雲寺) 도솔암(兜率庵), 바다 밑의 용궁에서 용왕이 쓰던 도장이라는 뜻을 가진 가야산 해인사(海印寺), 5만 불보살이 머무는 영지이자 산 전체가 거대한 사찰인 오대산(五臺山) 적멸보궁(寂滅寶宮), 고려시대 때까지만 해도 성직자로서 대우를 받던 승려들이 조선시대의 억불(抑佛) 정책으로 갑자기 천민 신분으로 격하되어 자생적으로 생겨난 불교의 비밀결사조직인 당취(黨聚)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담긴 지리산 칠불사(七佛寺) 23곳의 영지가 영발, 글발 그리고 말발을 두루 겸비하신 조용헌 선생님의 맛깔스럽고 풍성한 해설을 통해 인생의 순례길을 떠난 우리 모두에게 치유와 감동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방전된 몸과 마음을 영지의 기운으로 충전하실 분들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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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다 모든 것이다 - 여성 선지식의 삶을 통해 배우는 깨달음의 본질과 마음공부법
임순희 지음 / 불광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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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다. 모든 것이다.’ 이 한 문장만 봐서는 언뜻 그 의미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 예전에 보았던 뤽 베송 감독의 영화 루시(LUCY)의 마지막 장면에서 나온 “I am everywhere.”가 연상될 뿐이다. 여자면 여자이고 남자면 남자이지 모든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처음에 언급한 나는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니다 모든 것이다 이 문장은 현재 전국 주요 도시에서 몽지릴라 선()공부 모임을 열고, 그 모임에서 선()을 통한 진짜 행복에 이르는 길을 전하고 계신 임순희 작가님의 신간 책 제목이다. 부제로 적힌 여성 선지식의 삶을 통해 배우는 깨달음의 본질과 마음공부법을 읽으니 그제서야 명확하지는 않지만 어렴풋하게나마 이 책의 출간 목적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책 제목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직 아니다. 그것은 본문을 읽어야만 선명하게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 출신의 저자가 늘 동경해왔던 육지에서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가의 길을 걸어도 보고, 행복을 찾기 위해 사랑도 해보았으나 무언가에 갇힌 듯한 답답함이 지속되어 바깥에서는 도저히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자각을 하여 지금까지 추구해온 삶의 방식을 모두 멈추고, ()공부를 하고 있던 남편과 함께 마음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10개의 파트로 구성된 이 책은 석가모니 붓다의 가르침을 받고 몸소 깨달은 39명 여성들의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겪어야만 했던 온갖 홀대와 차별 속에서도 깨달음을 성취한 여성들의 삶을 통해 정신적 방황을 하는 현대인들의 삶을 반추해보았다마음공부 하는 여성들의 체험사례와 공부의 여정을 통해 마음공부의 길이 결코 특별한 사람만이 가는 길이 아님을 이 책을 통해 알리고자 했던 저자는 참된 자신은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닌 남녀로 나뉘기 이전의 본래 우리 자신이라고 설파한다. 이 책을 통해 삶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죽음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워지는 대자유의 길을 함께 하기를 당부한다.

 

   기원전 5~6세기경 붓다가 살던 인도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로서 남성과 동물의 중간 지점에 놓인 존재로 인식되었다. 어려서는 아버지에 의지해서 살고, 결혼하면 남편에 의지해서 살다가,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 아들에 의지해서 살아야만 했다. 마치 조선 시대의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떠올리게 한다. 한마디로 여성들은 스스로는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기에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살아가야만 하는 무능한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식이 팽배하였고, 남성에게만 출가의 기회가 주어졌던 당시의 인도 사회에서 여성이 출가를 허락받고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었으나 석가모니 붓다의 이모이자 양어머니인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붓다의 시자 아난다와 함께 여러 번의 간청 끝에 출가를 허락받아 75세의 나이에 불교 교단의 첫 출가 비구니 스님이 되었고 아라한과를 증득하게 되었다. 이후 수많은 여성들이 불교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성취하게 되었다. 붓다는 이들 출가한 여성들에게 비구니로서 지켜야 할 팔중법(八重法)이라는 계율을 주었는데 비구보다 더 무거운 계율을 내린 데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세속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는 당대 인식과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의 차별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해진 시기는 삼국시대인데, 고구려는 소수림왕 2년 때인 서기 372년에 전진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였고, 백제는 침류왕 원년인 384년에 동진으로부터 불교를 수용하였다. 반면에 중국과 직접 교류가 어려운 지리적 위치에 있던 신라에는 상대적으로 불교가 늦게 전해졌는데 공인된 것은 법흥왕 14년이던 527년 이차돈의 순교 이후이다. 한반도에 불교가 전해진 이래 첫 여성 불자이자 비구니로 기록에 남아 있는 사람은 모례의 누이동생 사씨(史氏)이다. 신라를 방문한 스님들이 한결같이 일선군(지금의 경북 선산 지역)의 모례라는 사람 집에 머물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씨는 아도 스님에게 감화되어 출가를 해서 영흥사(永興寺)라는 절을 짓고 살았는데, 신라 불교를 중흥시킨 법흥왕과 왕비가 말년에 출가해 영흥사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진흥왕과 왕비 역시 영흥사로 출가해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의 처 지소부인 또한 남편이 죽은 뒤 출가해서 스님이 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최초의 비구니인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분별망상을 갈아 없애는 쇠 맷돌이라 불린 유철마(劉鐵磨)스님,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라 했던 말산요연, 남편과 함께 선공부를 한 감지 부인, 아들을 향한 애착에서 눈 뜬 꾸마라 까싸빠의 어머니, 죽은 아들을 살리려 했던 끼사 고따미, 열 명의 아들과 딸들에게 버림받은 소나, 붓다마저 버리고 본성을 깨달은 계씨 부인, 빼어난 외모에 자만했던 케마 왕비, 아난다를 사랑한 천민의 딸 프라크르티, 애욕을 깨달음의 불꽃으로 바꾼 광덕의 아내, 기구한 운명을 해탈의 도약대로 삼은 웁빨라완나, 난봉꾼의 마음을 돌려놓은 수바, 번뇌가 보리(菩提)이고 진흙에서 연꽃이 핀다고 한 명실도인, 천 조각을 걸치고 걷는 여자 빠따짜라, 사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했던 무착묘총, 스승을 그리며 노래한 무제혜조와 초종,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여자 앗다까시, 향락의 장소를 깨달음의 성지로 바꾼 암바빨리, 졸음을 쫓으려 손바닥을 꿰고 염불한 여종 욱면, “입을 열어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일갈한 정십삼낭, 사형수와 사랑에 빠진 꾼달라께시, 덕산 선사의 말문을 닫게 한 떡 파는 할머니, 말없이 두 손을 펼쳐 보인 최련사, 마음도 부처도 물건도 아니라 했던 적수도인, 당신이 타고 있는 소를 따라 가라한 평전수, 법의 즐거움마저 놓아 버린 향산불통, “한 물건도 없는데 무엇을 씻는단 말인가라고 한 공실도인, 현묘함도 눈 속의 모래라 했던 각암도인, 도를 깨친 가족의 걸림 없는 삶을 보여준 방 거사 가족, 곡소리로 선사들과 솜씨를 겨룬 능씨 할머니, 오대산에 가려거든 곧장 가라 일러준 오대산 할머니, 줄 것이 따로 없고 받을 것이 따로 없다는 것을 알게 한 유씨 할머니, 황벽 선사를 일깨운 이름 모를 할머니, 열일곱 스님을 꾸짖은 묘신 스님, 산승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했던 혜광정지, 여성이 여성에게 법을 전한 나암혜온, 수많은 엉터리 장로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를 받은 묘도 선사, 불도(佛道)로 억압의 시대를 뚫어낸 이여순 스님까지 총 39명의 깨달음을 얻은 여성 선지식의 행적을 각종 경전의 기록에 입각해서 설명이 되어 있고, 39명이 깨달은 내용을 여러 형태로 서술하여 이 책 한 권으로 불교의 핵심 종지(宗旨)를 모두 드러내고 있다. 나와 남이 따로 없고 모든 것이 하나이며, 내 것이라는 집착과 분별을 내려놓으면 지금 이 순간 나의 참 본성, 깨달음의 세계가 저절로 눈앞에 드러난다는 것을 체험하실 분들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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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옳았다 - 미처 만들지 못한 나라, 국민의 대한민국
이광재 지음 / 포르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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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시던 그 날의 충격이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토요일이었을 것이다. 거실에서 초등학생 아들과 놀고 있을 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중학생 딸이 아빠,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대.” 갑자기 뭔가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멍해졌다.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유일하게 취임식에 참석했던 그 대통령이 퇴임해서 고향으로 내려간 지 13개월 만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우리 헌정사에서 반복되는 대통령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로부터 10여 년의 세월이 흘러갔고 두 명의 대통령이 전직이 되었고 역시나 대통령 비극의 전통은 이어졌다. 후년에 있을 대통령선거를 위해 언론에선 벌써부터 연일 3명의 유력 후보 지지율이 공개되고 있다. 자신이 그 비극의 전통을 또 이어받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얼마 전 문재인의 운명을 다시 읽어보았다. 자신의 대통령선거 주요 공약이자 1990년대 후반부터 끊임없이 무소불위 검찰을 견제하는 장치로서 설치 필요성이 제기되었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高位公職者犯罪搜査處)’, 줄여서 공수처의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날을 기념해 책장에서 꺼내 읽기 시작했다. 공수처 설치에 대해서도 또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고, 이것은 종교 문제와 마찬가지로 의견을 단일화할 수 없는 문제인지라 개인의 성향에 의한 선택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 노무현이 옳았다라는 제목의 책을 읽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봇물 터지듯이 노대통령 관련 책이 출간되었고 그 중에서 몇 권을 읽어 본 적이 있었던 터라 그것의 연장선상이라 단순히 생각했었는데 저자를 보니 17, 18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2010년 강원도 도지사를 역임한 후 정계를 떠나 중국에 머물며 중국 최고지도자들과 친분을 쌓고 싱크탱크 여시재(與時齋)’의 원장으로 재임하며 국가 미래전략을 연구하였고 202021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정계에 복귀한 이광재(李光宰) 의원이다. 특히 대선을 앞둔 시기에 출간된 책이라 단순하게 넘기기에는 의미가 있어 보여 한 문장 한 문장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았다.

 

   19884, 당시 마흔둘의 나이로 정치에 첫발을 내디딘 노무현 국회의원 당선자가 스무살가량 아래인 이광재 보좌관과의 첫 만남에서 나는 정치를 잘 모릅니다. 나를 역사 발전의 도구로 써주세요.”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책은 순전히 내 개인 생각이지만 이광재 의원의 대선 출사표이자 그의 정책제안서로 읽혀진다. 싱크탱크 여시재의 출범과정과 거기에 참여하는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단순한 정책기구가 아님은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은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의 제목만 보아도 이광재 의원이 앞으로 어떤 정책을 펼쳐갈 것인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 책과 관련해서 이광재 의원이 모 방송사에 출연해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그는 국민통합과 국제사회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는 대한민국이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구상과 도전은 미완에 그쳤는데, 자신이 그 일을 완수해내자는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정치에 처음 발을 들였던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립과 갈등의 정치문화는 크게 변하지 않고 분열되어 있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그는 정치권이 이젠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 삶의 본질에 집중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국회가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고 국민의 에너지가 함께 고양되는 국민 참여 정책 플랫폼구축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더불어 국가 전략 콘트롤타워의 부재 문제를 거론하며 국가의 장기전략을 짜는 정책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후반기에 당시 야당에 연정(聯政) 제안을 하였으나 실패한 사례를 들며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개념이지만 유럽의 국가들은 대부분 이를 통해 정책을 실현해 나간다고 하며 연정을 통해 여당과 야당이 정책의 기본적인 틀과 하위 내용을 합의해 둔다면 다음 정권에서 진영이나 정파가 바뀌더라도 이미 합의해둔 정책이 바뀌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풍토에서 실현가능할까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언제까지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로 분열되어 대립해야만 하는지 답답한 현실에서 그의 문제 제기와 구체적인 대안 제시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이젠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생각된다. 세대 간의 갈등, 정치 현안, 기술 혁신, 교육과 복지 그리고 글로벌 시대의 대한민국의 위상에 대한 그의 문제 제기와 정책 대안은 시의적절해 보이며 국민들뿐만 아니라 여야 정치인들이 편견의 색안경을 벗고 열린 마음으로 읽어본다면 코로나19’ 이후 대한민국이 걸어가야 할 방향이 보일 것으로 판단된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꾼 노무현 대통령이 이루려고 했던, 그러나 미처 만들지 못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완성하려는 그의 노력하는 모습에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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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 대한 거의 모든 것 - 일러스트와 함께 따라하기 쉬운 단계별 명상 안내서
지오반니 딘스트만 지음, 서종민 옮김 / 불광출판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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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폰을 통해 눈만 뜨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각종 뉴스와 속보들로 인해 아침부터 우리들의 뇌는 워밍업도 없이 그것들을 분석하고 저장하느라 혹사 아닌 혹사를 당하고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바깥 풍경을 보는 어르신들을 포함한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고 스마트폰 삼매에 빠져 있다. 지나치게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 지내다 보니 머릿속은 뒤죽박죽 되기 십상이고 가짜뉴스와 진짜 뉴스를 구별해 내야만 하는 상황이 되다 보니 정작 자신은 사라지고 온통 정치인이나 연예인 그리고 사건 사고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어 가족들과의 저녁 밥상에서는 만나본 적도 없는 그들을 화제로 귀중한 시간을 흘려 버리는 우()를 범하게 된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찌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만은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되는 일은 줄여야 하지 않겠는가 우려를 표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직장이나 일터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다 보면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없이 파김치가 된 몸으로 귀가하게 된다. 그렇기에 정신없이 하루 일과를 끝내고 저녁 식사를 한 후에 만물이 잠든 고요한 때에 자신과 오롯이 만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우리 현대인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본인도 짧더라도 잠들기 전에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마침 일러스트와 함께 따라하기 쉬운 단계별 명상 안내서라는 부제가 붙은 명상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라는 책이 불광출판사에서 출간되었기에 얼른 흥미롭게 읽어보고 난 후 명상에 도움이 되겠다 싶어 여러분들에게 소개해 드리고자 한다.

 

   책의 제목대로 명상(冥想)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실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명상 이해하기’, ‘명상하는 마음과의 만남’, ‘명상 시작하기’, ‘다양한 명상 방법’, ‘통합하고 심화하기의 다섯 챕터(Chapter) 속에 다양한 소제목으로 상세한 설명이 시각적인 일러스트(Illustration)와 함께 설명되어 있어서 마치 애니메이션(Animation) 영상을 보는 듯하다. 그런데 저자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지오반니 딘스트만(Giovanni Dienstmann)이라는 외국인이다. 그는 명상 지도자이자 작가, 코치로서 전 세계 여러 전통의 도구와 가르침을 21세기의 사람들이 쉽게 소화할 수 있도록 체계적이고 이성적이며 실용적인 방식으로 전해 온 수행가로서 자신의 개인적 성장과 영적 각성의 여정에서 그를 도와준 강력한 도구들은 물론 통찰과 영감을 나눠 오고 있다고 하는데 80개 이상의 명상 기법을 시도하고, 200권 넘는 서적을 연구하였으며, 8,000시간 이상 명상하며 전 세계 명상의 대가들을 만나 왔다고 한다. 현재 유명 명상 블로그인 “Live & Dare”(liveanddare.com)를 운영하고 있다고 하니 이 분야에선 명성이 있는 분이긴 한가보다. 명상을 통해 집중력이 강화되고 창의력이 향상되며 학습능력 및 기억력 향상과 같이 뇌에 미치는 영향도 크고, 최근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우울증 예방에 도움이 됨은 물론 불안감 및 기분장애 조절과 정서 지능과 회복력 향상, 공감능력 향상, 자기 통제 능력 증진, 그리고 긍정적 감정과 관계성 조성 등 정서 건강에 미치는 효과도 크다고 하니 이 책에서 소개되는 명상법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꾸준히 실천해 보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저자는 이 책에서 39가지의 엄선된 명상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좌선(坐禪)’이나 요가(Yoga)’, 걷기 명상인 경행(徑行)’, ‘태극권(太極拳)’, 무상에 관한 통찰인 위빠사나(Vipassana)’와 같은 익숙한 이름을 가진 명상법이 있는가 하면 허밍 비 프라나야마(Humming Bee Pranayama)’, ‘쿤달리니(Kundalini)’, ‘트라타카(Trataka)’와 같은 생소한 이름의 명상법도 소개되고 있어 하나하나 집중해서 경험해 보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테지만 새로운 명상법을 통해 생활의 활력소가 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저자는 모든 명상은 알아차림, 주의집중, 그리고 자기 조절 연습으로서 자신에게 잘 맞는 명상법을 매일 같은 시간에 가능하면 같은 장소에서 습관적으로 실천할 것을 권장한다. 책의 후반부에는 직장인을 위한 명상이나 운동선수를 위한 명상, 그리고 연설가를 위한 명상 등 특정 계층을 위한 명상법도 별도로 수록하였고, 명상에 도움이 되는 도서들을 참고자료항목에 담아 두어 전문적으로 활용하기에도 편리하게 구성되어 있다. 부디 이 책이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많은 분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게 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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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道德經) - 노자는 최고의 수련가이고 도덕경은 최고의 수련서이다
이승훈 지음 / 지혜의나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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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常道) 명가명(名可名) 비상명(非常名)’으로 시작하는 도덕경(道德經)은 중국 춘추시대 말기부터 전국시대 초기까지 살았던 노자(老子)의 대표적인 저작으로 동양철학에 관심이 있거나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익히 들었거나 접해봤을 줄로 믿는다. 본인도 이전에 오강남 교수님이 풀이한 도덕경 명나라의 4대 선승 가운데 한 분인 감산덕청(憨山德淸,1546~1623) 대사께서 주석하고 심재원 교수님이 번역한 노자 도덕경, 그 선()의 향기를 읽어 본 바가 있고, 도올 김용옥 교수님이나 홍익학당의 윤홍식 선생님 그리고 유튜브 강의를 통해 알게 된 김기태 선생님의 도덕경 강의를 접해본 바가 있다. 최근 노자 도덕경을 철학자 도올 김용옥 교수님이 우리말로 번역하고 명료하게 해설한 노자가 옳았다가 출간되어 관심을 가지던 차에 이승훈 선생님이 도가(道家)의 수련서로서 집필하였다는 道德經을 우연히 읽을 기회가 생겨 여기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로 이승훈 선생님은 중국 전진도(全眞道) 용문파(龍門派) 18대 장문으로 전통 도가 공법인 영보필법(靈寶畢法)’을 수련하였다고 한다. 아울러 이 책의 원문은 여동빈(呂洞賓) 조사의 저술인 순양진인석의(純陽眞人釋義) 도덕경(道德經)을 저본으로 삼았음을 밝히고 있다. 37장으로 이루어진 도경(道經) 44장으로 이루어진 덕경(德經)을 합해서 도덕경(道德經)이라고 부르는데 한문제(漢文帝)때 하상공(河上公)이 주석한 것으로 알려진 하상공장구(河上公章句)에서는 5201, ()의 왕필(王弼)이 주석하였다는 노자 도덕경주(老子 道德經註)에서는 5162로 판본에 따라 글자 수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저자는 서문(序文)에서 도덕경(道德經)을 읽다가 언제인가부터 첫 소절인 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常道) 명가명(名可名) 비상명(非常名)’에서 혼란이 왔으며 몇 번을 음미해도 이 구절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나중에는 납득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한다. 대부분의 번역서에서 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常道), 명가명(名可名) 비상명(非常名)’ , ‘도를 도라고 말하면 늘 그러한 도가 아니고, 이름을 이름이라고 말하면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라고 해석하는데 그렇게 해석하면 도()의 본질이 완전히 전도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 가도비상도(可道非常道), (), 가명비상명(可名非常名)’ , ‘(무극에서의 도) 말할 수 있는 가도(태극에서의 도), 늘 도라고 하는 도가 아니고, 이름(무극에서의 명) 이름 지워진 가명(태극에서의 명), 늘 이름 지어지기 전 이름이 아니다.’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한다. 띄어쓰기나 구두점이 없는 고문(古文)이기에 이런 해석의 차이가 생겼다고 하는데 기존과는 다른 해석에 이번엔 내가 혼란이 온다. 나도 도가 수련을 해야 하나 싶다. 물론 저자는 학자들의 입장과 수련가들의 입장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학자들의 학문적 판단을 존중한다고 하니 다행스럽다. 저자는 도덕경(道德經)의 본질이고 핵심인 첫 장 첫 구절 만큼은 그 중요성을 생각해서 이 부분만이라도 자신의 생각을 알리고 싶은 욕심이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기회에 도가 수련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에는 기존의 번역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도()의 세계, 도가(道家)의 수련 용어와 수련 방법 등이 박스(BOX) 형식으로 각 장의 말미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81개 장()의 해석이 정말로 충실함은 물론이고, ‘총론(總論)’에 실린 도()와 덕()의 개념, 동양철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무위(無爲), (), 무극(無極)과 태극(太極), 선천(先天)과 후천(後天), 원신(元神)과 식신(識神)의 용어해설도 새겨둘만 하다. 인위적으로 꾸미지 않고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삶을 추구한 노자(老子)의 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의 일독을 권하면서 도덕경(道德經)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장() 중의 하나인 8상선약수(上善若水)’로 글의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上善若水    가장 선한 것은 물과 같네.

 

    水利萬物而不爭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고

    處衆人之所惡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머무르니

    故幾於道矣            그러므로 물은 도에 가깝네.

 

    居善地                   머무는 곳은 땅처럼 낮고

    心善淵                   마음 쓰는 것은 연못처럼 깊으며

    與善仁                   주는 것은 매우 자애롭고

    言善信                   말하는 것은 매우 믿음이 있으며

    政善治                   정치에 있어서는 잘 다스리고

    事善能                   일을 할 때는 매우 유능하며

    動善時                   움직이는 것은 때에 잘 맞추네.

 

    夫唯不爭               오직 다투지 않으니

    故無尤                  그러므로 허물이 없네. (pp.10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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