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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평점 :
남자가 애인에게 동물원에서 본 미국너구리 이야기를 한다. 묵묵히 걷기만 할뿐 결국 동물원의 원형공간을 빙빙 돌뿐인 미국너구리 말이다. 애인의 “미국너구리가 걱정돼?”라는 질문에 “응. 미국너구리는 이사할 필요는 없지만 아마 평생 거기서 못 나올테지.”라고 답하는 남자.
우리가 ‘내 집’을 마련하는 것에 그토록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더 이상 성가시고 부담스러운 이사라는 행위에서 벗어나 마음의 안정을 얻기 위함일 것이다. '이사'라는 행위의 의미를 확장해서 인생에 대입해본다면, 그렇게 마음의 안정을 얻는 대신, 더이상 새로운 경험과 변화를 맛보기는 어려워지겠구나 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을까? 마치 평생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그 너구리처럼 말이다.
부인과 헤어지고 새집을 찾아 ‘이사’ 온 남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새로운 집을 찾아 ‘이사’를 해야 하는 남자. 소설의 마지막에서 남자가 언젠가 또다시 이사를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남자는 앞으로도 망설이고 고민하며 자신의 집을 찾아 계속 ‘이사’를 할 것이다. 지금은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상태지만 우아하다는 말은 이제 그만 듣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