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 가치에 대한 탐구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지음, 장경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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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엄마가 부르신다. 압력밥솥 뚜껑 김이 나가는 부분 위에 부착된 이름모를 부속품 하나가 분리되었단다. 밥이 다 되었다는 반가운 목소리에 뚜껑을 열었는데 갑자기 바닥으로 탁~하고 떨어졌다는 거다. 이런... 무슨 일일까... 밥솥을 들고 서비스센터에 가야 되지 않냐는 의견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때 나는 뭔가 경건한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다. "그거 줘보세요... 한번 봐봐요." 나는 건네받은 그 부속품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이 물체의 기능은 뭘까? 안에 고무패킹 같은 것도 있고... 많은 생각이 스쳐간다. 얼마 후 그 부속품은 경쾌한 소리를 내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엄마는 대단하다며 칭찬하신다. 이 잠깐 동안 나는 이 책을 떠올렸다. 그 순간은 세상에 나와 그 부속품만 있는 것 같았다. "서비스센터가 어디더라, 무료로 고쳐줄라나?"라는 의견에 동참하지 않고, 시선을 온통 그 물체로 집중시켰다. 그냥 어떻게 하면 원상복귀시킬 수 있는지를 생각했다.

 

 역자 선생님은 본인이 이 책의 번역을 시작할 당시 만났던 생활정보신문의 "선과 변기관리술"이라는 제목의 광고문을 후기에서 소개했다. '모터사이클'을 '변기'로 바꾼 그 사람의 위트는 물론, 자신 역시 피어시그가 모터사이클을 관리하며 보였던 "질"에 대한 진지한 탐구정신으로 고객의 변기를 관리하겠다는 광고내용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압력밥솥의 이름모를 부속품의 "질"을 탐구(!)하던 그 시간, 나는 이 변기기술자분의 광고내용을 떠올렸다. 대단한 일을 했다며 기뻐한 엄마의 칭찬은 "질"이 준 선물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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