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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종말
앤드류 달비 지음, 오영나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진다. 소멸의 속도와 과정에서 약간의 혹은 극심한 차이가 발생하겠지만 결국 끝에는 소멸해버린다. ‘국제화’, ‘지구화’ 처럼 너무나 매력적인 이 용어들의 현실화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희생되었는가. 책 <언어의 종말>은 또 하나의 희생자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바로 ‘언어(Language)’이다.
세계화, 지구화, 국제화 등등 현 21세기의 국제어는 ‘영어(English)’이다. 여러 언어가 사용되는 상황에 자연스럽게 노출되지 않은 한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에 익숙해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이렇게 어려운 일이 개인의 자발성(상승 욕구 등) 또는 권력(식민권력 등)의 강제성에 의해 가능해졌음을 알 수 있다. 대체 무엇이 비영어권 사람들에게까지 ‘영어’를 강요하였는가.
언어의 사용을 ‘강요’당한 사람들은 대개 식민 지배를 받은 나라들이다. 인디언 부족 중 메노미노 족 사람들은 자신의 언어를 말했다는 이유로 기숙학교 교사들에 의해 비누로 입이 닦이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267쪽 각주 20번 참고) 저자 앤드류 달비는 지구상에 이렇게 많은 언어가 있고, 이렇게 많은 공동체가 존재했었다는 놀라운 사실과 동시에 이렇게 다양한 생명들이 이미 소멸되었고, 곧 소멸될 운명에 놓여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언어의 소멸은 그 언어를 모국어로 쓰는 공동체의 독특한 문화도 소멸시켜 버린다.
자신은 물론이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영어에 몰두하는 것은 취업, 승진 등을 위한 당연한 행동이라고 생각되는 요즘이다. 토익시험 안 본 청년들이 있을까? 당장 서울 종로거리의 대형서점에 들어가 보라. 교복 입은 학생들부터 초로의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세대가 영어책 구입을 위해 고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 역시 이런 상황이다. 그런데 이렇게 필수가 되어버린 '행동들'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인가 반문해보라. 나는 잘 모르겠다. 책의 저자 앤드류 달비가 지적하는 ‘언어의 종말’과정에 나 역시 열렬하게 참여하고 있다. 앤드류 달비는 이런 흐름은 멈출 수 없는 대세라고 말한다. 결국 세계는 ‘영어’라는 국제어로 단일화되고, 다양한 언어, 문화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언어를 배우는 것이 곧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는 것이라는 말처럼 인간이 언어를 배우는 이유가 단순히 취업, 승진, 신분상승 등의 이유만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인간의 ‘지적호기심’이 적극 발동되어야 할 때인 것이다. 우리는 ‘배우고자 하는 열망’, ‘호기심’을 유지하면 된다. 결국 언어(영어를 제외한)가 종말 한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이런 감정들이 지속되는 한 아직 희망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