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의 질문법 - 최고들은 무엇을 묻는가
한근태 지음 / 미래의창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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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떤 책은 마음을 건드린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이 그렇다.

작가는 여러 각도에서 접근하여 '질문'이라는 주제로 우리의 일상을 풀어냈다.

마음을 건드리는 첫 번째 접근은 '나'를 세우는 질문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꿰뚫고 있을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의미로 내 삶을 지탱하고 있는지,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 즉 내가 지향하는 삶의 목표는
진정 내가 바라는 일인가? 나에게는 목표가 있던가? 하루하루 어떤 목표를 갖고 살고 있는가?
혹 아무 방향도, 목적도 없이 부유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말과 행동은 어떤 색깔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것이 내가 책을 읽는 동안 생각해 본 질문이다. 물론 책에 나온 질문과 중복되기도 하지만,
1장을 덮고 나서 순전히 내 마음에 남은 의문이고 고민이었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오늘 하루는...
또 다른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기쁨보다는 반성과 자책의 시간이 되기도 했다.


두 번째로, '관계'를 잇는 질문에 대한 내용이다.
내가 지금 맺고 있는 관계는 투명한가? 혹 어떠한 목적성을 갖고 유지하고 있는 관계는 없는가?
매일 마주치는 사람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진심을 갖고 그들을 대하고 있는가?
내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가식은 없을까? 지나치게 나 위주의 대화만 하고 싶어하지는 않는가?

역시 스스로 던진 질문에 당당한 태도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나의 이기심과 겸손하지 못함을 되돌아본 시간이다.
그러나 책 한 권 읽는다고 순식간에 달라질 수는 없기에, 살면서 자주 되돌아보고 들춰봐야 할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세상은 나 혼자 살 수 없고 가뜩이나 요즘 '관계의 염증'이라는 말이 생각에서, 입에서 자주 나오고 있기도 하다.


세 번째로, '일의 방향'을 정하는 질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성공이란 무엇일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얼마나 공부하고 있고 어떤 노력을 하고 있지?
단지 내게 익숙한 것이 내가 아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내가 가진 연료를 모두 사용하고 있는 걸까?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걸까?

어느 것에도 잘하고 있다고, 잘해 왔다고 대답할 수 없었다.
똑똑한 사람이라면, 적어도 세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유로울 것이며 할 말도 있을 것이나, 나는 전혀 할 말이 없다.
그것이 가장 후회되는 일이기도 하면서 여전히 해결하지 않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도.


네 번째로, '리더'를 위한 질문이다.
나는 질문하는 사람인가? 직원들에게 지시만 하고 있는 오너는 아닌가?
목표를 정확히 전달하고, 충분히 훈련하고 있는가?

솔직히 지금 상태에서 운영자로서의 리더에 나를 적용한다면 생각해 보고 싶지도 않은 질문이다.
들어오는 직원들 알바들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행동을 하고 보통 이하라고 생각할 만큼 상식 선에도 미치지 못할 행동들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리더라면, 진정한 고수라면 이런 상황도 다르게 바라보고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겠지.


얼핏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처럼 보이고, 뻔한 말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책 속으로 깊이 들어가 나를 내려놓고, 사방을 거울로 둘러싸인 방 안에서 책을 읽는다고 상상하면
모든 질문이 나를 향해 있다는 걸 피할 수 없다.

모르면서 질문하지 않고 회피한 문제들, 알면서도 되짚지 않고 넘겨 버린 문제들, 알고 싶지 않다고 지나쳐 버린 일들.
그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 마음을 점점 무겁게 짓누르고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고 있는지, 계산적으로 이기적으로 대한 건 아닌지, 그렇게 이어온 관계들만 있는 건 아닌지.
몸은 힘든데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몰라 방황해야만 했던 이유도, 목표가 없기 때문이었던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저 앞에 주어진 길이니 방향도 의미도 묻지 않고 수동적으로 걷기만 한 건 아닌지.

맛있는 음식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먹고 싶고, 좋은 강의는 걱정되는 사람들에게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좋은 책은 아끼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거나 읽었던 내용을 최대한 정리해서 전달해 주게 된다.
<고수의질문법>은 저자의 다른 책까지 무조건 신뢰하고 읽고 싶게 만들 정도였다.
웬만해선 '청소년필독서' 목록이라도 만들고 반드시 제일 앞에 소개해야 할 것만 같은 무게감을 가진 책이다.
읽어야 할 책이 많지만, 생각이 굳어지기 전에, 사회적 시선과 통념에 익숙해지기 전에,
날카롭게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고 인정하고 수긍하게 하는 책을, 어릴 때 더 많이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비록 이미 지나온 내 과거가 후회되고 부끄럽기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 책을 통해 당장 오늘부터 나 자신에게 던질
몇 가지 질문을 만들어 볼 수 있어 다행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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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모든 인생은 자존감에서 시작된다 - 내 삶을 풍요롭고 건강하게 이끌어갈 단 하나의 선택
남인숙 지음 / 해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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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책을 만드는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도 책을 편애하곤 했다. 자기계발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뻔한 얘기, 실천이 문제지. 이런 선입견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자기계발서의 힘을 빌려 내 의지와 내 습관을 형성해 나가야 한다는 걸 인정하고 즐겨 읽고 있다.


<여자의 모든 인생은 자존감에서 시작된다> 나라면 제목을 조금 수정했을 것 같다. '여자의 -모든 인생-'이라고 제목을 정한 이유가 아직도 궁금하긴 하다.

제목을 보았을 땐 집어들지 않았을 종류의 책이다. 그런데 내용은 정말 알차다.


본문 안에는 수많은 내가 있었고, 내 절친도 있었고, 내 부모님도 있었다. 누구나 겪을 법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스토리를 재미있게 이야기하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적절한 타이밍에 잘 녹여냈다.



이 책을 읽는 도중에 '어쩌다어른 김미경 강사 편'을 보았다. 어떤 면에서 일맥상통하는 주제이기도 해서 이 책도 더 자세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다행히, 우리 엄마 아빠는 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음에도 우리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셨고, 대학, 대학원까지 다닐 수 있게 뒷바라지해 주셨다는 것에 새삼 감사했다. 그렇게 편안한 삶을 사는 동안 (물론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인생의 고비도 많았지만) 가족이 없었다면, 좋은 부모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자존감. 아동출판사에 있을 때 죽어라 생각하고 고민하던 단어이다. 어린이 창작동화 버전 책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던 주제.

그런데 어렸을 때 자존감 관련 책을 읽는다고 해서 아이의 자존감이 형성되리란 보장도 없는 건데, 부모의 역할이 훨씬 더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건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렇다.


이 책은 지금도 제목은 별로라고 생각하고, 주변 책벌레들도 제목이 좀 안타깝다고 말하곤 하지만, 그래도 그들과 함께 읽는 책이 되었다.

내가 빌려주고, 서점에서 구입하고... 그리고 그들 역시 부모님께 읽게 해 드리는 중이다.

좋은 책은 돌려가며 읽어야 제맛! 서로 사주고, 추천하고...


나 역시 소심한 오형이라, 자신감 넘치는 성격은 아니어서 남 눈치 보며 행동할 때가 많다. 심지어 지금도 직원들 눈치, 알바들 눈치 보며 하루하루 보내곤 한다.

그러나 책에서 읽은 문장을 떠올리며 적어도 오늘 하루는 '나 위주'로 즐겁게 살아야지, 다짐해 본다!!




 

17. 자신에 대한 이해란 공기에 대한 이해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의식하기가 어렵다. 바람이 불어 옷자락을 여미거나 고산지대에서 희박한 공기 때문에 고생할 때, 혹은 아주 공기가 맑은 곳에서 첫새벽 창문을 열 때, 우리는 공기의 존재 양식과 성질을 이해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자아도 그 자리에 머문 채 남이 해석해 주기를 기다린다고 이해되는 게 아니다. 스스로를 여러 상황에 놓아보고 그에 반응하는 자신을 관찰할 때에만 진정한 이해가 뒤따르게 된다. 귀찮거나 두렵다고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보고, 새로운 공부도 해 보고, 새로운 곳도 가 보며,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49. 자존감은 완벽할 때 오는 것이 아니라, 완벽함을 포기할 때 오는 것이다.

(신이시여,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받아들일 수 있는 의연함을,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두 가지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59. 겸손이라는 말을 대단히 오해하곤 하는데, 나를 숨기고 낮추는 게 진짜 겸손이 아니다. 겸손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다.

 

 

64. A와 B 가 서로 다른 선택을 했어도 결과는 비슷했을 것이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선택 자체보다는 선택을 하는 태도다. 삶이 어느 정도 원하는 방향으로 되어간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기 통제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자기 통제감이 있는 사람은 강력한 자존감을 갖고 만족도가 높은 삶을 산다. 그리고 젊은 시절에 고생을 하게 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남이 만든 편한 환경보다는 내가 원하는 거친 환경을 선택하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삶을 이어가다 보면 오히려 점점 더 편해진다. 남이 정해준 선택만 하며 사는 사람들은 점차 현실이 자기 욕구의 저항을 받지만, 내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은 현실이 내 욕구에 맞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104-105. 자신감은 자존감과 겹치는 영역이 있을 뿐, 전혀 다른 말이다. 자존감은 다른 모든 부분에 영향을 끼치는 인격의 요소지만 자신감은 특정 대상에 대한 나의 태도다. 자신감은 내가 무언가를 잘할 수 있겠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고, 자존감은 내가 잘 못해도 나를 존중할 수 있는 마음이다.

 

 

107. 자존감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주변 사람을 향해 '저 사람보다는 내가 낫다' 혹은 '못하다'라는 가치평가를 하지 않는다. 내 안에 내가 꽉 차 있으면 타인의 인격의 무게도 가볍게 여겨지지 않을 뿐더러 비교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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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의 위로
조안나 지음 / 지금이책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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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하고 싶은 말은 '여기 나온 책은 모조리! 읽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류의 책이 내 책장에도 꽤 있다. 선물받은 책, 엄청난 독자층을 확보한 독서 전문가가 쓴 책(아직 읽지 않아서 이 책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내로라 하는 작가가 쓴 좋은 책 소개하는 책들이 여러 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적어도 지금은 그중 최고의 책은 <책장의 위로>라고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직업이 나와 같은 것도 마음에 든다! 물론 나보다 훨씬 훌륭한 편집자임에 틀림없지만!

 


사실, 글을 읽다 보면 이 글이 소설 속 주인공의 이야기인지 저자의 이야기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렇지만 아무렴 상관 없다. 어떻다 해도 저자가 소개하는 책을 읽고 싶어지고, 저자의 글도 재미있으니까!
표현이 디테일하다. 뭔가 속이 후련하다. 솔직하다. 어떤 부분에서는 (특히 연애 관련 내용) 모든 여자의 마음을 겉으로 꺼내 널어 놓은 듯하다.
그러면서도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듯 친숙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내 과거의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그녀가 소개하는 책은 왠지 다 꺼내서 읽어 보고 싶다. 마치 그녀 같은 마음으로 읽게 될 것 같다.
그렇다 해도, 같은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한 줄 한 줄 짚어 가며 그 마음을 그대로 느껴 보고 싶다.
어떤 마음으로 이 길을 걸었는지, 이미 설명해 놓았지만 왠지 처음 걷는 길인 것처럼 느껴질 것 같기도 하다.
우연히, 내가 읽은 책을 나중에 그녀가 또 다른 글을 통해 소개한다면 오래 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울 것 같기도 하다.
 
 
"보이지 않으면 그리움도 점점 사라진다. 큰 원이었던 것이 작은 점으로 변해 간다. 그러다 그 점마저 먼지처럼 날아간다.
어느 순간, 그의 생각을 하지 않고 보내는 날들이 많아진다.
이제 그와 나 사이에는 서로의 혼이 만나거나 하루의 안녕을 궁금해하는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27
 
"쓸쓸하여도 오늘은 죽지 말자." 앞으로 살아야 할 많은 날들은 지금껏 살았던 날에 대한 말없는 찬사이므로." -<지하인간>
 
뭔가 익숙한 듯 편안하기도 하고 또 낯선 마음과 마주한 것 같기도 하다.
겨울 밤, 이불 속에서 마들렌과 커피와 어울릴 것 같은 다정하고도 재미있는, 저자의 꾸밈없는 이야기다.
정말 잘~ 읽었다. 책 좋아하는 주변 친구들에게 다 소개해 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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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는 힘 - 20인의 철학자가 전하는 삶의 중심 찾기
임병희 지음 / 생각정원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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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철학자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예화가 많아서 좋았던 책이다.

대부분 가난과 싸우느라 힘든 삶을 살았음에도, 자기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동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거기다 수 백, 수 천 권에 달하는 책을 통해 이후 세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까지 공감하고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귀한 메시지를 남긴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 책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귀히 여기자, 아껴 주자. 라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나를 귀히 여길 때 귀한 내가 판단하는 것, 바라는 것을 신뢰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연자방아를 돌리는 소는 같은 공간은 계속 돌고 돈다. 단순히 훈련이 되어 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소의 머리에 검은 보자기를 씌워 놓았기 때문에, 소는 먼 길을 걷는 거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경주마가 달리는 것을 보면 아찔할 때가 많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도중에 다른 말이 옆으로 바짝 붙어도 말은 피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차안대'라는 것을 걸어 두었기 때문에 경주마는 바로 옆의 모습도 보이지가 않는다. 그저 정면만 바라보고 계속 달릴 수밖에 없다.

맹목적인 착각을 이야기하기 위해 소와 말을 예시로 들었지만 '나'에 적용해 보면 이것도 참 놀랍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내가 나일 수 없도록 만드는, 타인의 기준, 사회적 기준에 휘둘리지 말고

오로지 진짜 나, 솔직한 나에 집중하고 단단해지자는 내용이었다.

자존감이 부족하거나, 사회생활로 힘들어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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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내나는 서울지앵 - 우리들의 짠한 서울기억법
서울지앵 프로젝트 팀 지음 / 리프레시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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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책 제목을 보고 든 생각은 요즘 유행하는 '김생민의 짠내 투어' 뭐 그런 내용의 책인 줄 알았다.

서울의 저렴한 밥집 소개나 카페 소개, 여행코스겠거니... 하고 책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 책은 간단히 설명하자면

상경 후, 혹은 한국으로 유학 와서 서울을 접한 일종의 타지 사람들의 서울생활 일기였다.

 

이 책의 머리말을 읽으면서, 나 역시 상경 후 첫 출근하던 날이 떠올랐다.

 

졸린 눈을 비비며 설레는 맘으로 첫출근을 하던 날, 내가 본 서울의 첫인상은 누군가 토해 놓은 토사물과 함께 시작되었다.

첫 출근이라 그런지 몰라도 그 토사물을 본 순간 나는 왠지 센티멘탈해져서 '아, 여기가 서울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방에서 태어나 지방대학을 나온 나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술도 가까이 하지 않는 좀 모범생 스타일의 일상을 살았다.

(외모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내가 술을 마시는 사람이었다면 나 역시 지방의 어느 골목에 토사물을 남겼을 수도 있겠고

친구의 그것을 치워주거나 모른척 뻔뻔스럽게 지나쳐갔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21년 인생에서는 그 토사물이 다소 생경한 모습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들이 첫 글을 시작할 때 어떤 마음이었을지, 첫 문장을 어떠한 마음으로 썼을지 조금은 짐작이 갔다.

 

 

 

개인적으로 본인을 대구시민이라 소개한 이영아 님의 글은 이 중에서 가장 소박하지만 가장 현실적으로 읽혔다.

나보다 어린 듯하지만, 나 역시 변해가는 서울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몇 년 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는지 쉽게 공감이 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것, 새로운 공간에 밀려 낡은 것과 오래된 것은 자연스럽게 천시되는 세상인 듯하여

나 역시 마흔을 코앞에 두고 보니 그런 취급(?)을 받는 듯하여 더욱 공감되는 거겠지.

 

 

 

편집자의 글 역시 공감할 부분이 많았다.

나 역시 15년간 편집자로 일하면서, 홍대 앞 몇 군데의 출판사와 인연을 맺고 일하면서

갈 때마다 변해 가는 홍대의 모습을 자주 봐 왔던 터이다.

 

1년 혹은 2년을 넘기지 못하고 바뀌어 가는 매장들을 보며

이제는 친구를 만날 때 어느 곳을 기점으로 만나야 하나 고민이 들 정도이니.

 

 

자주 가던 카페, 북카페 꼼마와 조만간 꼭 가 볼 북티크 서교점 사진도 반가웠다.

그러면서 이 공간은 언제까지 이곳을 지켜줄까 내심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제는 어떠한 공간이든 '추억'보다는 '용도' '활용'이라는 단어에 맞게 이용되는 거겠지 싶어 씁쓸하기도 하다.

 

 

삐뜔빼뚤한 계량기도, 울퉁불퉁한 보도블럭도,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전봇대 사이 전선들도

서울의 일부이고 서울을 이루고 서울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삶일 텐데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복잡하다는 이유로, 불편하다는 이유로 조금씩 조금씩 없어지다가 나중에는 (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

이곳이 어떤 곳이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니 슬픈 마음이 앞선다.

 

 

요즘 일부에서 빈티지가 주목받고 그 가치가 인정되기도 한다.

할머니 세대에 쓰던 라디오, 그릇, 패브릭 제품들은 자연스럽게 세월을 머금고 시간을 견뎌 온 것들이라

그만큼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되면서도

지금 우리 곁에 있는 모든 것이 언젠가 그리운 추억의 물건이 될 거라는 걸 생각하며 살고 싶다.

 

오래된 거라고 무조건 버리고 낡은 거라고 쓰레기 취급하는 마음이

이 책을 통해 조금씩 옅어지기를 바라며.

 

 

 

* 리뷰어스 클럽의 도서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책을 무료로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솔직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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