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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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두권의 책이 호세이니라는 사람을 내 가슴 깊이 각인시켜 버렸다.
후배사원으로부터 우연히 읽고 있던 '연을 쫓는 아이' 를 빌려 읽었다가 나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이 세상의 '삶'과 '굴레'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연을 쫓는 아이때에도 그랬고, 천개의 찬란한 태양에서도 그랬다.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
그가 미국 망명으로 건너가서 쓴 최초이자 최초의 영어 소설이며, 최초의 아프가니스탄인이 쓴 책, 단숨에 해리포터를 밀어내버리고 최장기 베스트셀러의 입지를 구축한 것은 분명 그저 우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아프가니스탄...

끝없는 전쟁과 절망... 도대체 이런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산다는 것 자체가
고통인 세상이다. 전쟁은 지독한 가난을 나았고, 기근과 굶어 죽음에 대한 공포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가득하다. 허나 어김없이 사랑은 피어난다. 그것이 비록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갈지라도 말이다.

연을 쫓는 아이가 남성적 시각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빠져나와 살아남고, 마침내 순수의 용기를 져버리지 않고 다시 돌아오는 것에 관한 소설이라면, 천개의 찬란한 태양은 그곳에 버려져 숨을 쉰다는 이유만으로 모진 폭력과 억압을 견뎌내야 하는 여자들의 세상에 관한 이야기다.

특히 종교적 억압(이 말을 많이 쓸 수 밖에 없다) 과 위선적인 윤리로 어떤 희망도 용기도 바랄 수 없는 여성들의
삶은 읽는 내내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특히 탈레반 정권이 들어선 뒤로는,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여자들은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바깥으로 나갈수도, 일할 수도 없는 상황으로 살아야 하고, 반강제로 다른 남자에 의해 거둬들여져서 겨우 운명을 연명해 가야 하는 비참한 삶으로 살아야 한다.

세상이 약자에게 얼마나 잔인하고 또 잔인해 질 수 있는지...
잠시의 유년 시절의 꿈과 희망은 한 순간에 지옥과 같은 환경에서 맞지 않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발버퉁쳐야 하는.. 차라리 감옥이 더 살기에 자유로운 세상.

개뿔이 정치, 개뿔이 종교 라는 생각이 뇌리속에 가득했다.
반대로 사고의 자유가, 그리고 자유의 존중이라는 문화가 얼마나 극적인 대립적인 모습을 가질 수 있는지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남자들은 여자를 종교의 이름으로, 윤리의 이름으로 철저히 유린한다. 어떤 면에선 그들도 희생자인지 모른다. 그런 사회에서 자라났으니 말이다. 반대로 집단의 정신이나 문화라는것이 얼마나 그 나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도 새삼 놀랍다.

여자들의 사진을 보면 우리의 시각에선 어이없다. 여자들은 바깥을 외출할 땐 부르카를 쓰고 다녀야 한다.
아래 사진들과 같이 얼굴 전체를 가린 것이 부르카이다. 반면에 히잡은 얼굴 일부를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스카프 형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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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굶어 죽는 상황이 발생해도 일을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기껏해야 집 인근에서 구걸하는 신세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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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것은 아내에겐 부르카를 입히고, 남편은 포르노 잡지를 보며 자위를 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위선적인가.... 말하면 할수록 한숨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곳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다.
자랄 수 없는 환경에서 잡초가 살아나듯이,
지옥과도 같은 곳에서도 희망을 꿈꾸고
다시 만난다.

비참한 운명을 짊어지게 되는 마리암과 라일라의 우정, 그리고 희생과 용기.
책을 다 읽고 난 뒤 표지 사진을 보자 왠지 모르게 목이 메어졌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간 침공(미국의 아프간 저항군 지원),
1989년 소련의 아프간 철수와 소련의 허수아비 나지불라 정권의 등장,
1992년 아프간 저항군의 정권탈환과(무자헤딘 정권) 혼탁한 파벌 전쟁의 시작,
1996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등장과(탈레반 정권) 여성 인권 탄압의 시작,
2001년 미국의 911테러 사건과 미국과의 전쟁, 아프간 과도정부 설립, 등.

통속적인 이야기이나, 이 세상을 살면서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에 감정 상하며 서로 미워하고
질투한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이 거쳐가듯이 우리도 잠시동안 이 땅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질 운명이다.
어떤 것은 매우 사소한 것일 수도 있고, 어떤 것은 크나큰 상처가 된다.

허나 우리는 모두 약한 존재이며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무리 비참한 환경에 있어도 내가 한발짝 나서 그의 곁에 서면
우리 삶은 그 자체로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본다.

짧은 삶의 기간동안, 어제보다는 오늘 더 나 자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사랑하고,
나의 주위를 사랑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한다.

호세이니.
그리고 왕은철 작가님. 감사의 진한 마음을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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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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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읽은 책 중에 단연 최고의 책.
소설책을 읽다가 이렇게 많이 스크랩한 것도 처음이다.
알렝드 보통이라는 작가가 내 뇌리에 영원히 박히게 만든 책.

(아래처럼 생겼다)
http://www.sijmen.nl/filo/philoimages/botton.jpg
(출처: http://www.sijmen.nl/filo/botton.html)

69년생인데, 나보다 겨우 8살 밖에 안 많은 사람인데...
그의 책을 읽어보면.. 특히나 이 책은 93년에 썼는데(원제: Essay in love), 27세 정도에 썼다는 얘기다.
아주 돌아버리겠다 싶을 정도다. 그 나이에 어떻게 사랑에 관해서 이토록 통찰력 있게 다룰 수 있단 말인가.
보통은 꼭 무슨 철학자 같은 느낌이 드는, 경외스러운 존재라는 느낌마저 든다.

사람들의 서평을 읽으니 왜 나는.. 이 책 뿐만 아니라 그가 쓴 책들 하나하나가 경외의 대상이라고 한다.
그의 책들을 꼭 읽어보길 강추!


사랑에 관해서 여러가지로 왈가왈가 하기보다 내가 스크랩한 부분들을 아래에 그대로 인용하겠다.
2008년 한해는 보통의 책을 다 읽어보는 것을 목표로 살짝히 잡아본다.


p. 63 마르크스 주의
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어쩐 일인지 보답을 받을 가능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나는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데에 더 무게를 두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일에 집중했던 것은 아마도 사랑을 받는 것보다는 사랑을 하는 것이 언제나 덜 복잡하기 때문일 것이며, 큐피드의 화살을 맞기 보다는 쏘는 것이,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이 쉽기 때문일 것이다.

...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사랑해 준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돌아와 우리를 애초에 사랑으로 몰고 간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원했던 것은 사랑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저 믿을 수 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믿게 되었으니 우리가 어떻게 계속해서 그 사람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

그녀는 언젠가 학교 식당에서 내가 사준 오렌지 스쿼시를 앞에 놓고 앉아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남자가 9시에 전화를 걸겠다고 하고 진짜로 9시에 전화를 하면 나는 그 전화를 받지 않아. 결국 그 남자가 필사적으로 얻으려고 하는 것이 뭐겠어? 내가 좋아하는 유일한 남자는 나를 계속 기다리게 하는 남자야. 9시
30분이 되면 나는 그 남자를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되거든. "

...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똑같은 요구를 공유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마음이 끌리는 상태의 핵심에 그 요구가 놓여 있다. 알베르 카뮈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그 사람이 밖에서 보기에 매우 온전해 보이고 - 육체적으로 온전하고 감정적으로 "통합되어" 보이고 - 주관적으로 자신을 보면 몹시 분산되어 있고 혼란스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만일 우리 내부에 부족한 데가 전혀 없다면 우리는 사랑을 하지 않겠지만, 상대에게서도 비슷하게 부족한 데를 발견하면 불쾌감을 느낀다. 답을 찾기를 기대했지만, 우리 자신의 문제의 복사본만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p. 93 사랑이냐 자유주의냐

혁명의 시작은 심리적으로 볼 때 남녀관계의 시작과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통일에 대한 강조, 전능하다는 느낌, 비밀을 없애고자 하는 욕망(비밀에 대한 공포는 곧 연인의 편집증과 비밀경창을 낳는다).

그러나 사랑과 사라으이 정치의 시작이 똑같이 장밋빛이라면, 그 마지막도 똑같이 핏빛이다. 우리는 정치적 사랑이 압제로 끝나는 현상, 진심으로 국가의 이익을 돌본다는 통치자의 강한 확신이 결국 자신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러 가책 없이 ["그들 자신을 위하여"] 모두 죽여도 좋다는 자신감으로 발전하는 현상에 이미 익숙하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사랑에 빠진 연인들도 자신의 좌절을 반대자와 이단자에게 분풀이하는 경향이 있다.

...

클로이와의 구두사건(혁: 클로이가 예쁘다고 사온 구두가 정말 맘에 안 들어서 영수증은 가지고 있냐는 생뚱맞은 말을 하는 바람에 클로이와 말다툼한 사건) 이 있고 나서 며칠 뒤 나는 신문과 우유를 사러 신문판매소에 갔다. 폴씨는 두꺼운 회색 양말에 갈색 가죽 샌들을 신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놀랄 만큼 추한 모습이었으나, 정말 묘하게도 놀랄만큼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나는 왜 클로이의 구두를 보았을 때는 이런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을까? 왜 나는 나의 일용할 양식을 파는 신문 판매소 주인은 따듯한 마음으로 대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할까?


p.109 사랑을 말하기

그 생각을 하면 외로워져? 하나의 단어에서도, 언어에 현학적인 사람들 앞에서 펼치는 주장이 아니라 연인들이 서로를 이해시키려는 간절히 중요한 하나의 단어에서도 오류가 발견될 수 있다는 생각. 클로이와 나는 둘 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 사랑은 우리 각자의 내부에서 상당히 다른 것을 의미할 수도 있었다. 우리는 밤에 같은 침대에서 같은 책을 읽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나중에 우리가 각기 다른 데서 감동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결국 다른 책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한줄의 사랑의 메시지에서도 똑같은 차이가 발생하지 않을까? 나는 마치 어느 것이 가닿을지도 모르면서 허공에 수백개의 포자를 방출하는 민들레가 된 느낌이었다.

p. 121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는가?
내가 클로이에게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정작 그녀 자신은 자신의 진정한 자아에 비추어볼 때 부수적이고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사실 그녀에게 속하지도 않은 것을 내가 내 멋대로 읽어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녀의 비탈진 어깨, 차의 머리받침에 걸린 머리카락 한 올을 보았다. 그녀는 나를 돌아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그녀의 앞니 사이의 틈을 보게 되었다. 내 옆자리에 앉아있는 여자와 나의 예민하고 감정이 풍부한 연인 사이에 실제로 일치하는 부분은 얼마나 될까.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본질적인 평범함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그 광기를 드러낸다. 그래서 방관자 자리에 선 사람들에게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지겹다. 방관자들은 묻는다. 저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한 인간 외에 무엇을 보는 걸까? 나는 클로이를 향한 내 뜨거움을 친구들과 공유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메시아적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을 마주한 무신론자들처럼 세속적이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그렇게 이야기를 해 보고 나서야 나는 사랑이 외로운 일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

눈에 보이는 것은 몸뿐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홀린 연인은 영혼 역시 그 껍질과 똑같기를 바라게 된다. 몸이 거기에 어울리는 영혼을 가지고 있기를, 살갗이 표현하는 것이 속에 녹아든 본질이기를 바라게 된다. 나는 몸 때문에 클로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본질에 희망을 품게 해 주었기 때문에 그 몸을 사랑했다. 그것은 매우 가슴 설레는 희망이었다.

p. 130 회의주의와 신앙
연인들은 오랫동안 철학자 노릇을 할 수가 없다. 연인들은 의심하고 캐물으려는 철학적 충동에 대립되는, 믿고 신앙을 가지려는 종교적 충동에 굴복한다. 연인들은 사랑없이 의심을 하는 것보다는 틀려도 사랑을 하는 모험을 더 좋아한다.

...

클로이에게 어린시절 자기 삶에서 엄청나게 영향을 미쳐다는 구피에 관해서... 구피가 정말로 존재하느냐고 물었다면 클로이와 그 코끼리와의 관게는 완전히 박살났을 것이다. 연인에게도 네 사랑으로 꽉 채워진 이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냐, 아니면 네가 상상한 것에 불과하냐 하는 질문을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p. 140 친밀성
혁)

라이트모티프
- 악극에서 되풀이되어 나타나는 중심 악상

어떤 사건의 기초가 되는 장면을 보지 못할 경우, 사건 자체에 대한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즉, 당사자들이 계속 참조하는 사건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러한 것들을 라이트 모티프라 하고, 연인이든 가족이든 이러한 라이트 모티프가 풍부할 수록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한마디로 소위 둘만의 비밀이 많을수록 친밀도가 높다는 얘기.



p. 142 나의 확인
우울했다. 죽음, 끝내지 못한 일, 죄, 상실이 떠올랐다.
갑자기 클로이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더니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너 또 길 잃은 고아 같은 표정을 짓고 있네"

전에는 아무도 내 표정을 그렇게 부른 적이 없었지만, 내가 스스로 정리할 수 없었던 느낌을 그녀가 알고 있다는것 때문에, 그녀가 기꺼이 내 세계로 들어와 나 대신 그것을 객관화 해 주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강렬한 사랑을 느꼈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자신을 규정하고 자의식을 얻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혼자서는 절대로 성격이 형성되지 않는다." 스탕달의 말이다. 성격의 기원은 우리의 말과 행동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자아는 유동체이기 때문에 이웃들이 윤곽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신이라는 개념이 중심을 차지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누가 나를 본다는 것은 내가 존재한다고 인정받는 것이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 자신에 대한 느낌은 달라진다. 우리는 조금씩 남들이 우리라고 생각하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자아는 아메바에 비유할 수 있다. 부조리한 사람은 나에게서 나의 부조리한 측면을 끌어낼 것이다. 그러나 진지한 사람은 나의 진지한 측면을 끌어낼 것이다. 누가 나를 수줍어한다고 생가하면, 나는 아마 결국 수줍어하게 될 것이다. 누가 나를 재미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계속 농담을 할 가능성이 높다.

다른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는 것은 보통 소리 없는 과정임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역할을 강요하지 않는다. 자신의 반응을 통해서 그것을 채택하라고 암시할 뿐이다. 은밀하게 우리에게 정해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혁: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는 환경에 우리를 노출시켜야 된다는 얘기겠군.



감정이입의 한계: 내가 그녀를 인간 본성에 대한 나의 기존의 개념들을 통해서만 헤아릴 수 밖에 없었다는 한계 때문인지도 모른다. 로키 산맥에 가서 "꼭 스위스 같군" 하는 식으로 적응하는 유럽인처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성격의 어떤 요소들만을 집어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의 눈길은 '바비큐 꼬치'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예를 들면 나는 클로이의 특징들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것들을 꼬치에 뀄다[또는 높이 평가하거나 나와 관련이 있다고 여겼다]

- 아이러니 - 눈 색깔 - 두 앞니 사이의 틈 - 지성 - 빵굽는 재능 - 어머니와의 관계 - 사교적 불안 - 베토벤 좋아함 - 게으름 싫어함 - 카밀레 차를 좋아함 - ... - 정직에 대한 욕망

그러나 다른 바비큐 꼬치였다면

- 건강식에 대한 관심 - 발목 - 야외 장터 - 수학적 재능 - 오빠와의 관계 - ... - 차에서 음악을 듣기 싫어하는 것 ..

그녀는 결국 다른 인간일 뿐이었으며, 그 말이 가지는 모든 신비와 거리가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p. 163 마음의 동요
배신의 전형적인 시나리오에서 한 사람은 상대방에게서 묻는다.
"어떻게 나를 사랑한다고 해놓고 X에게 빠져서 나를 배반할 수가 있어?"

그러나 시간을 고려한다면 배반과 사랑의 고백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은 늘 "지금" 그렇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나는 클로이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지만, 내 말은 시간의 구속을 받는 약속이었다.


우리의 사랑은 갑자기 시작되었듯이 갑자기 끝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공동의 운명에 호소함으로써 현재를 가오하하려고 했다. 우리는 어디에 살 것인지, 자식을 몇이나 나을 것인지, 어떤 식으로 연금을 받을 것인지 꿈을 꾸었다...


오늘은 이 사람을 위해 무엇이라도 희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몇 달 후에는 그 사람을 피하려고 일부러 길 또는 서점을 지나쳐 버린다는 것은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p. 177 행복에 대한 두려움
안헤도니아)
지상에서 행복을 실현하는 일이 눈앞의 가능성으로 대두되면서, 그런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하여 격한 생리적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행복은 자기 방에 혼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생긴다." - 파스칼.
맥없이 사회적 영역에 의존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의 독자적인 능력을 쌓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에서 이것을 성취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 나는 내 방에 나와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다른 인간에게 기초하여 자신의 삶을 구축하는 데서 오는 위험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p. 205 낭만적 테러리즘
일단 한쪽이 관심을 잃기 시작하면, 다른 한쪽에게 그 과정을 막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의사소통 체계 자체가 붕괴되었다는 사실은 논의하기조차 힘들다
.

정직한 대화는 짜증만 일으키고, 사랑만 질식시킬 뿐이다.

모든 삐침의 밑바닥에는 그 즉시 이야기를 했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질 수 있는 잘못이 놓여있다. 그러나 상처를 받은 쪽에서는 나중을 위하여, 좀더 고통스럽게 폭팔시키기 위해서 그 일을 속에 쟁여둔다. (혁:비극의 원천이지... )


p. 257 생략
오랫동안 내 소파와 함께 지내고 나서야 클로이가 드레싱 가운을 입고 거기 누워있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 그 위에서 책을 읽고 있는 친구의 이미지라던가 내 외투가 가로놓여 있는 이미지로 바뀌었다. 거의 모든 장소를 다시 찾아가, 클로이와 내가 나누었던 대화의 모든 주제를 다시 고쳐쓰고, 모든 노래와 모든 활동으 ㄹ되풀이해야 했다. 그렇게 해야만 현재를 위해서 그것들을 재정복할 수 있었고, 그 연상들이 조성하는 위기를 해소할 수 있었다.


p. 259 사랑의 교훈
유리가 맑아 보이기는 하지만 뚫고 날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파리들이 계속 미친 듯이 유리창에 머리를 박는 것처럼, 지나친 의욕, 고통, 쓸쓸한 실망감을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도록 어떤 기본적인 진실들, 지혜의 조각들을 배울 수는 없는 것일까? 식사, 죽음, 돈이 지혜로워질 수 있듯이 사랑에도 지혜로워지고 싶다는 야심은 정당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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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마케팅 키워드 퓨전
연세대학교 기술경영학 협동과정 창조경영 연구팀 엮음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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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새로운 내용이 없던 책.

퓨전의 특징)
Flexibility
Uniqueness
Style
Synergy
Innovation
Originality
Network

미래의 마케팅 키워드에 관해 조사하다보니 그 특징이 공교롭게도 FUSION이라는 단어가 되더라...
억지로 맞춘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들지만 ㅎㅎ 특징을 재미있게 잘 뽑아냈다.

책을 한권 다 읽었을 때 내 머릿속에 와 닿는 것은 딱 FUSION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 목적을
충실하게 잘 전달한 것이 아니겠는가. 어렵게 풀어쓰는것보다 한마디로 요약이 되니 말이다.

창조적 융합과 수렴과 분산.

그러나, 예로 드는 퓨전으로 인한 성공 사례가 다소 국소적이고 양적인 측면에서도 부족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이 책이 몇년 전에 나왔다면 신선하고도 미래를 꿰뚫는 시각을 제공하는 책으로 평가내릴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사실 다 아는 얘기라는것에서 되려 구식의 느낌이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미래 아이템을 제시한다면, 왜 그 아이템을 사람들이 사랑하는지, 무엇이 선호도의 기저에
깔려있는지를 좀 더 다루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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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쉬즘 - 마광수 아포리즘
마광수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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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1월 2일 오늘 도착했다.
옛날부터 이 사람의 책을 한권쯤 읽고 싶었는데 드디어 이 '마광수' 학자?의 생각을 읽었다.
이 책을 읽은 지금...  아, 그의 생각이 옳다 그르다 라고 말하기 이전에 아직도 우리는 개인의 생각에 대해
가감없이 솔직하게 털어놓는것조차 자유롭지 못한 세상에 살고 있구나를 실감했다.

이런거 같다. 가난에 굶주린 사람은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그저 철없게 느껴지고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가난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한낯 사치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 입장에선 자유를 부르짖는 이들이 철없거나 어리석은 행위를 하는 것도 아니다. 어느 쪽의 입장에 서든 그것은 나름대로의 타당한 가치관이 있고 거기에 맞게 우리는 모든 의식을 규정짓는 경향이 있게 마련이다.

마광수 교수의 섹스리즘, 마광시즘에 어떤 이는 강한 불쾌감을 느낄지 모른다. 사상이 엿같다느니 타락했다느니 말종이라는 등의 공격을 하고 있다. 그러나 마광수가 보는 세계도 분명 오늘 우리가 사는 곳의 모습이다.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분명한건 없으나, 우리는 참으로 극단적 양분의 세계에 살고 있는것 같다.
가장 썩은 자들이 가장 청렴한 도덕적 기준을 요구하는 세상이다.

마광수는 솔직한 사람이고 솔직한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다. 그는 사랑에 관한한 유물론적인 가치관을 견지하는 사람이다. 모든 사랑은 접촉에서 시작하고, 접촉을 갈망하는데서 승화된다. 태어나서부터 남자든 여자든 엄마 젖을 빨고 핥고 만지는데서부터 희열을 느끼는 것을 시작하고 죽을때까지 그것을 갈구하며 살아가는게 사람이다. 그런데 거기에 갖가지 이상한 도덕(?), 정체를 알 수 없는 순결의식, 공허한 정신적 윤리를 들이대기 시작하면서 스스로의 세계와 가능성을 제약하고 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소의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내 감정에 대해 참으로 솔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고 또 그러한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구나 라는 것을 다시금 .. 일종의 위안을 느꼈다고나 할까 ㅎㅎ (오해하지 마시라)

몇시간동안 그 사람과 함께 그 사람이 생각하는 가치관과 세계관을 얘기 나눈 기분이다.그의 생각과 내가 다른 부분도 참으로 많았다. 어떤 부분에는 내가 이건 아니야~ 라고 메모한 부분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드러낼수록 얻어맞아 생채기가 생길까봐 두려워하던 세상에서 솔직한 담론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난것 같은
기분이라 즐겁다. 왜 진작 그의 책을 읽지 않았나 싶다. 

추천할만한 책이다.

글 중에서
===============

p.195
정신은 기체와도 같아서 쉽사리 흩어지지만, 육체는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정신은 그것이 멸시하는 육체보다 훨씬 무력하다.

p.200
한 집단이 있을 때 집단이 갖는 '평균적 사고'를 무조건 좇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평균적 사고'를 거부하고 '독자 노선'을 걸어가는 사람도 나올 수 있다. 그럴 경우 우리나라에선 그러한 소수를 아예 무시하거나 범법자 취급을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역사를 살포벼몬, 한 사회가 발전해 나가는 데 있어 일반적 다수보다 '소외된 다수'가 오히려 더 큰 역할을 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p.234
섹스가 없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사랑을 정신위주의 편향적 생각으로 보는 건 이 나라의 문화 편향이 심하기 때문이다. 우선 사랑을 강조하는 파, 섹스를 강조하는 파, 사랑과 섹스를 동시에 강조하는 파, 이런 다양한 컬러의 학파가 설정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진정한 현대성은 선과 악의 구별이 아니라 악에도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사고의 대전환이 아닐까 싶다. 보들레르의 시인관은 뜻밖에도 '타락론'이다. 시인은 타락을 통해서 진정한 미를 창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원효는 이미 그런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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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성공 신화의 비밀
데이비드 A. 바이스 외 지음, 우병현 옮김 / 황금부엉이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구글은 웹 페이지간의 상호 참조의 가중도를 우선검색 순위로 발견되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것이 구글을 빛나게 했고 강력하게 했다.
(사실 네이버나 오디세우스도 마찬가지다)

초창기의 키워드 매칭 페이지만 뱉어내는 검색엔진에 비해 획기적으로 개선된 검색결과를 제공하는 구글은 사실 래리 페이지의 성장 환경과 관련이 깊다. 집안 환경상 논문의 외부 참조횟수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느끼며 살았던 터라 웹페이지의 링크 자체는 의미가 없으며, 중요한 페이지일수록 외부에 의해 보다 많이 링크되어 있을 것이고, 중요도가 높은 페이지에서 참조하고 있는 링크 역시 중요도가 높다는 가정을 자연스레 도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환경이 중요하다. 어떤 환경에 있느냐에 따라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는 시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중고딩시절, 놔두면 알아서 잘할텐데 자율학습 잘 하는지 감시 하러 다니는 선생님들을 보면 쪼잔하이 저렇게 살아야 하나 싶다가도, 자신이 그런 위치에 있게 되면 반대로 공부만 하면 아무 걱정거리도 없는 녀석들, 책이나 한자 더 볼 것이지 탱자탱자 놀기는.. 라면서 예전의 자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때문에 기왕이면 보다 생산적인 결과 (그것이 연구적 가치가 있든, 사람 사이의 관계를 푸는 것이든)를 나을 수 있는 환경에 속하도록 하는것이 좋은 것 같다. 거기서 영감을 얻으며, 동시에 거기서 자기 위안과 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속한 세계 외부로의 확장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래리나 세르게이의 학창 시절을 보면 그들은 어느 한쪽에 정체되어 있지 않았다. 학문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매일에서 겪는 모든 주제에 관해서 토론하길 좋아했고 현상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구글 스토리를 읽으면서 내게 와닿는 부분은 열정과 관심이다. 마음이 가는곳을 향해 모든 마음을 바치는 것... 그리고 주변의 변화를 캐치할 수 있는 관심. 그런것을 일깨워주는 책인것 같다.

세상은 행동하는 자에게 열려있고 열정을 가진 사람에게 기회를 가져다 준다. 열정을 가지고 행동하는 자는 목표하는 바가 성공으로 다가오지는 않더라도 삶을 살아가는 힘과 행복을 가져다줄테니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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