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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ㅣ 트리플 31
장아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4월
평점 :
이 책은 세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소설인데, 그 중 두 편만 소개해보겠다. 나머지 한 편은 직접 읽어보고 그 충격을 느껴보면 좋을 듯 하다.
1. 고양이는 어디든 갈 수 있다
은비는 매년 같은 날 친구 재희를 만나는데, 이번에는 고양이가 알려주어서 늦지 않게 나갈 수 있었다. 재희와 동네 산책을 하던 중 흥겨운 소리에 이끌려 장이 열리는 곳에 간다. 재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물건을 구경하다 그곳의 여자애가 은비의 입에 전을 쑤셔 넣고 은비는 홀린 듯이 음미하며 전을 먹는다. 그 대가로 은비는 그림 속에 갇히게 되지만, 재희의 도움으로 그림 속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은비는 재희를 잊지 않고 싶다 말하며 둘은 집 앞 골목에서 헤어진다.
2. 산중호걸
매년 직녀 뜨개방에서 개화, 운겸, 파도, 삵인 백운은 같은 날 모여 서로의 생존과 안부를 확인하고 백운의 생일을 축하한다. 그러나 올해 운겸은 죽고 대신 운겸도를 다스릴 도요가 왔다. 운겸을 그리워하며, 그리고 백운의 생일을 축하하며 그들은 잔치를 벌인다. 자정이 지나고 잔치는 끝나, 각자의 무운을 빌고 이번 해도 태평하길 바라며 헤어진다.
서평
고양이는 어디든 갈 수 있다 서평
표제작인 ‘고양이는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망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친구의 죽음을 잊지 않고 싶은 은비와 그런 은비를 이해하고 매년 만나러 오는 재희. 그건 어떻게 보면 작별인사이기도 하다. 너를 잊고 싶지 않지만 잊더라도 너는 내 안에 항상 존재해, 우린 함께 하는 거야, 라고 서로에게 다짐하듯 약속하는 것처럼 느꼈다. 읽으며 느꼈지만 망각의 대상은 비단 친구만이 아니라 자연, 내 유년 시절의 기억, 어린 시절의 친구, 시절인연 등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모두 다 잊고 싶지 않은 존재들이지만 잊더라도 너무 서운해하지는 말기를. 그 시절 은비가 재희를 좋아했던 것처럼, 내가 너를 좋아했던 건 틀림없는 사실이기에. 그때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처럼 너도 그렇기를.
산중호걸 서평
은유적인 것 같기도 한데 이 단편을 읽으며 자연이 떠올랐다. 자연은 항상 그 자리에 있지만, 인간은 자연을 끊임없이 이용하고 파괴한다. 이 책에 나온 백운, 직녀, 개화, 파도는 운겸의 죽음을 슬퍼하지만 또 새로운 수호신인 도요의 탄생을 축하하며 잔치를 벌인다. 시간은 무한히 흐르고 자연은 그 속에서 고요히 존재하고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월이 흐르는 것을 느끼는 것은 인간 뿐, 자연은 그곳에 계속 존재한다.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 듯 그 모습 그대로. 순간이 지나고 영원은 계속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시간과 함께할 자연을 너무 허투루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긴 시간 속에서 보면, 순간에 불과한 우리가 영원과 다름 없는 자연을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함을 촉구하는 듯 하다.
‘고양이는 어디든 갈 수 있다’의 세 편을 모두 읽고선 불교가 생각났다.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긴 어렵지만, 이 책은 ‘윤회’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어떤 설화에 따르면 고양이는 아홉 개의 목숨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고양이의 몸이 엄청 유연해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의미 같기도 하지만, 아홉 번의 생을 반복해서 사는 고양이가 표지에 그려져 있는 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세 편의 이야기가 ‘세평짜리 숲’처럼 연결되지는 않지만, ‘시간’과 ‘자연’이라는 주제로 통한다. 불교라는 종교에 대해 더 잘 알았으면 보다 쉽게 이해하지 않았을까 싶다.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그 사이에 아주 잠깐 존재한다는 걸 말하는 책. 처음에는 두께에 비해 다소 어렵다고 느꼈지만 재독하면서 어렴풋하게나마 마음에 와닿았다. 세 번째로 읽을 때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 본 리뷰는 자음과 모음 출판사의 도서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