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 독재자의 새로운 얼굴
올레크 V. 흘레브뉴크 지음, 유나영 옮김, 류한수 감수 / 삼인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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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 제공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이오시프 스탈린(1878~1953), 20세기 소련의 통치자이자 독재자.

왜 21세기에 살아가는 우리가 스탈린을 알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스탈린이 독재자로서 성장하게 된 과정과 스탈린에 대한 작가의 평가를 통해 찾을 수 있다.


역사연구원이자 <스탈린>의 작가인 홀레브뉴크는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어쩌면 집필을 생각하기 이전부터 쭉) 스탈린에 대한 온갖 문헌을 연구해왔을 것이다. 스탈린에 대해 주관적인 평가가 담긴 문서는 활용을 지양하고, 객관적인 공식 기록에 집중했다. 또한 스탈린의 일생을 천천히 따라가는 방식으로 독재자로서의 스탈린의 진정한 모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처음에 '새로운 얼굴'이라는 표현 때문에 오해를 했었다. 독재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상당히 부정적인데, 여기서 새로운 얼굴이라고 하면 반대 이야기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그런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홀레브뉴크는 스탈린의 통치 방식을 공포와 잔혹성으로 설명한다. 스탈린의 유년 시절이 특별히 불행한 것도 아니었다. 평탄치만은 않았지만, 어머니에게서 사랑을 받았고 그 또한 어머니를 사랑했다. 그런데도 누명과 학살 등의 잔혹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할 수 있었던 건 스탈린이 기질적으로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홀레브뉴크는 스탈린이 독재자가 되어가는 과정에 그 어떤 정당성도 부여하지 않는다. 기질적으로 독재자에 걸맞았던 스탈린은 결국 독재자가 되었고, 자국민과 타국민을 합하여 감히 셀 수도 없는 수의 사람들이 그의 통치 하에 고통받았다.


또한 홀레브뉴크는 통치자로서의 스탈린의 무능함을 지적한다. 스탈린은 국가원수도, 군사령관도, 모든 국가의 권력을 독차지했다. 권력자에게는 그 만한 능력과 책임이 따르는데도 불구하고 스탈린에게는 그 모든 것을 본인의 욕심만큼 잘 해낼 정도로 뛰어난 능력이 있지 않았다.

스탈린 본인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는지보다 중요한 건 본인의 실책으로 인한 끔찍한 인명 피해를 모두 적이나, 심지어 동료의 탓으로 돌리며 절대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욕심만큼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스탈린도 사람인지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권력을 독차지했으면서 냅다 잠수를 타는 행위는 정말... 너무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보다 어이가 없었던 건 이런 스탈린의 행보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도 그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이 그저 어르고 달래고 비위 맞추기에만 급급한 부하들의 모습이었다.


스탈린의 정신 상태나 군사 통치력에 대한 사건들은 그야말로 최악이었지만 몇 가지 스탈린의 능력이 출중했다고 표현된 부분을 보면 잔머리와 언변이었다. 공포 통치와 함께 뛰어난 언변술이 있다면 그런가, 이런 상황도 이해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잘 모르겠다. 애초에 독재, 아니 통치에 대한 욕심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 많은 사람의 인생을 내가 다 책임져야 되는 건데 대체 그 자리가 왜 탐나는 거지...?


<스탈린>의 해설자 노경덕 교수는 20세기의 역사적 인물 중 스탈린만큼 양극단의 평가를 받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보여주는 스탈린은 잔혹하고 무능한 최악의 독재자였다.

현재 러시아의 상황이 혼란스럽다고 알고 있다. 이런 시국이라 그런지 급기야는 스탈린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스탈린의 독재가 얼마나 많은 사람 -타국민과 심지어는 자국민, 더 나아가서 그의 충실한 동료들까지-의 인생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목숨까지 빼앗아갔는지를 우리는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20세기의 악몽이 21세기에 되풀이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홀레브뉴크가 이 책을 집필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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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불행을 먹고 사는 사람들
이동원 지음 / 라곰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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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출간본의 수록 단편 중 하나인 <가해자 H의 피해일지>를 무료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가해자 H의 피해일지>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역시 제목일 것이다.

가해자가 된 피해자나 피해자가 된 가해자, 뭐 그런 내용이 아닐까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주인공 H는 평범한 우편 배달부다. 매주 다니는 교회에서 우연히 보게 된 여자에게 첫눈에 반해 교제를 시작하게 되는데, 여자친구의 직업은 인플루언서. 많은 악플로 상처를 받아 활동을 잠시 쉬면서 악플러들과 고소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개인적으로 악플이란 거, 정말 악질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얼굴 보고서는 한 마디도 못 할 거면서 익명이라는 보호막 뒤에 숨어서 손가락만 몇 번 까딱하는 게 죄질도 나쁘고, 되게 찌질하지 않나?

딱히 악플이랄 걸 많이 받아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이입이 가장 된다면 여자친구 쪽인 게 당연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점점 생각이 달라졌다. H는 여자친구를 따라다니며 악플러들과의 합의 과정에 함께한다. 그 과정에서 H가 느끼는 기묘함(어쩌면 기괴함)을, 나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가스라이팅을 당한 건지 자본주의에 굴복해 합리화를 한 건지 H의 의문과 죄책감이 사그러드는 걸 보며 정말 끼리끼리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대로, H는 가해자였다. 하지만 그 이전에 피해자였다. 인식한 순서로 따지면 '피해자'가 나중인 게 맞지만,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최종적으로 더이상 선악의 구분은 논쟁거리조차 되지 않을 정도였다. 가해자가 범죄를 합리화하는 과정, 죄책감을 덜기 위해 피해자의 신분으로 스스로까지 속이는 과정,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낱낱이 보여주는 에피소드였다. 다른 이야기도 정말 궁금해졌다.


작가님 (이자 PD님)은 방송국 PD를 비롯한 특정 직업군이 남의 불행을 먹고 산다고 하지만, 정정한 말마따나 남의 불행을 위해 싸우는 분들이 더 정확한 것 같다.

​남의 불행을 위해 싸우는 분들이 남의 불행을 먹고 사는 놈들을 언제나 항상 이겨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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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그 밤이 또 온다 ㅣ 소소한설 1
김강 지음, 이수현 그림 / 득수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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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출판 득수로부터 도서를 무료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곧, 그 밤이 또 온다』에는 총 스무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장르도 소재도 분위기도 메시지도 모두 각양각색이라 읽는 재미가 있었다.

인간의 본성을 폭로하는 이야기, 사랑의 덧없음을 그리는 이야기, 그럼에도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야기, 허무하고 안타까운 이야기, 차갑거나 씁쓸한 이야기가 차례로 머릿속에 박혀와

얼굴을 찌푸리게도 하다가, 가슴이 아리게도 하다가, 실소가 터져나오게도 하다가, 마음을 착잡하게 하기도 했다.


각각의 분량은 짧지만 남기는 여운은 가볍지 않았다. 이 모든 밤들은 나 또한 지나온 것 같기도 하면서, 곧 지날 것 같기도 하면서, 제발 지나쳐갔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했다.


오늘도, 그 밤이 온다. 부디 평안한 밤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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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데아
이우 지음 / 몽상가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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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다섯 살 때부터 모로코에서 살아온 준서.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차별적인 시선에 여기는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 여기고 진정한 고향을 찾아 한국으로 떠나온다. 과연 한국은 준서에게 진정한 고향이 될 수 있을까?


고향(故鄕). 사전적 의미의 첫 번째로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

세 번째로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이라는 의미도 있다.

세 번째 의미의 고향과 관련된 키워드가 바로 '이방인'이다.

돌아가고 싶은 곳. 그립고 정들었다는 것은 그곳에 내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방인에게 그런 자리가 허락될 리는 만무하다.


준서가 모로코를 고향으로 여기지 못했던 까닭은 단순히 한국인 핏줄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시선과 태도가 그를 철저한 이방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같은 한국인들 사이에 있다면 무조건 동류라고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준서처럼 오랫동안 외국에 살아서 자국의 문화가 낯설어 적응이 서투른 특이 케이스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종종 이 사회에서 이방인인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한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문화를 향유하고 있지만, 왜인지 모르게 느껴지는 소외감.

따돌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단 한 번도 그런 기분을 느껴본 적 없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서울에서 서울을 그리워하는 준서처럼 고향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도 언젠가 마음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고향을 찾기를 바란다.

이방인이 아닌 동향인으로,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나를 소중히 여겨주는 소중한 사람들과 매순간 진심을 다해 살아갈 수 있기를.


장편 소설인 만큼 분량이 많았지만 몰입해서 읽는 건 어렵지 않았고, 여운이 짙게 남는 <서울 이데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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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꿀 권리 - 희망이 사라진 자리에서 철학이 말을 건네다
희망철학연구소 지음 / 현암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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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료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배려보단 경쟁이 심화된 현대 사회에서 희망은 헛된 것처럼 보이고 꿈을 꾸는 건 사치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희망찬 이야기는, 꿈꾸길 멈추지 말라는 독려는 삭막해진 사회인들의 마음에도 언제나 따뜻한 위로가 되는 법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 많았던 건 이 책의 첫 번째 챕터인 박남희 소장님이 쓴 '희망이 부재한 시대에 희망 찾기'이다.

인간은 희망 속에서 살아간다. 아무리 삶이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것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을 희망하는지, 그 방향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더라도 괜찮다. 어디를 향해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희망만 있다면, 방향 정도는 살아가며 정해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희망이 살아갈 원동력이 되어준다면, 꿈은 그 원동력의 이정표와도 같다.

꿈꿀 권리와 꿈꿀 의무. 누구나 꿈을 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누구든 꿈을 꿔야 한다는 것. 누군가는 억지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런 억지는 모두에게 통용되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러니 모두 꿈꾸기를 멈추지 않기를, 희망을 놓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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