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우에노 스테이션
유미리 지음, 강방화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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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첫 페이지를 넘기면 다음 페이지가 나오고,

그렇게 차례로 넘기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르는

한 권의 책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인생은 책 속의 이야기하고는 전혀 달랐다.

글자들이 늘어서 있고 쪽수가 매겨져 있어도

일관된 줄거리가 없다.

끝이 있는데도 끝나지 않는다.

주인공인 70대 노인 가즈는 도쿄의 우에노 공원에서 노숙을 하며 지내고 있다. 그가 처음부터 이곳에서 지낸 것은 아니다. 부모님이 계셨고, 아내가 있었고, 동생들과 아들딸도 있었다. 가족이 많은 만큼 돈도 많이 필요했으므로 그는 고향 땅에서 도쿄로 홀로 떨어져 나와 묵묵히 일을 하고, 받은 급료를 집으로 부쳤다.

가족의 얼굴도 제대로 못 보는 외로운 삶을 그렇게 견디다 이제 편안한 노후만이 남았을 거라고 생각했던 때에 갑작스럽게 불행이 닥쳐 온다. 하나의 불행에서 끝나지 않은 채 또 다른 비극과 또 다른 사건이 그에게 찾아오자 그는 결국 자진해서 노숙자가 되길 택한다.

가즈는 공원에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안온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이들이 공원을 스쳐지나가며 나누는 평범한 대화들은 공원 노숙자들의 형편과 너무나 비교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대비는 그가 우연히 천황을 만나게 된 시점에서 더욱 극명해진다.

2020년 전미도서상을 받은 재일작가 유미리의 소설인 이 책은 깨끗하게 정돈된 듯 보이는 일본 사회의 뒷면에 어떤 어둠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나라 역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것처럼 보이지만 소외된 사람들의 존재를 마치 유령인 양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그녀의 소설을 읽었을 때는 늘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였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내가 모르는 사이에 작가가 본인의 지평을 너무나 많이 넓힌 것 같다. 자신이 차별을 당해 온 사람이라서 다행이라고, 그래서 배제되는 사람들의 편에 설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말에서 큰 울림을 느낀다. 차기작은 후쿠시마 원전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니 더욱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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