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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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1년 타계하신 한국 문학계의 거목, 박완서 작가. 이 책은 작가가 근 40년간 집필해 온 모든 서적의 서문과 발문을 모아둔 책이다. 등단작 『나목』에서부터 마지막 작품인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까지, 책이 발매된 연대순으로 서문 및 발문 총 67편이 나열되어있다.

 책을 읽을 때면 그 내용에 빨리 빠져들고 싶어 서문과 발문을 제쳐두고 본문으로 바로 뛰어들곤 한다. 워낙 성격이 급한 독자인지라 작가의 말은 읽더라도 대충 한 번 훑어보고 마는 경우가 훨씬 많다. 책이란 독자가 읽고 해석하여 받아들이기 나름이니 작가의 말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며, 형식상 존재하는 부분이겠거니, 여기기까지 했다. 그런데 작가의 말들만으로 책 한 권을 꾸려 출간이 되었다니, 나로서는 몹시 신기할 일이었다. 어떤 말들이 담겨져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연대순으로 묶여있었기 때문에 작가의 생애가 그리는 궤적을 따라갈 수 있었다. 작가의 모든 말들이 솔직했다. 과장도 움츠림도 없이, 책을 펼쳐든 독자의 옆에 툭 하고 무심히 앉아 다독다독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어느 책에서는 부끄러움을, 어느 책에서는 뿌듯함을, 또 어느 책에서는 세상를 울리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모든 '작가의 말'은 형식적인 목차로서가 아니라, 박완서 작가의 '말' 그자체로 책 속에서 살아숨쉬고 있었다. 아, 작가의 말이 모여 이렇게 훌륭한 한 편의 수필이 될 수 있구나. 작가가 툭 던지듯 하는 말의 마디마디를 읽을 때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처음으로 세상에 글쟁이로 선을 보이게 되었을 때의 감상도
꿈을 이루었다든가, 노력한 결실을 거두었다든가 하는 보람보다는
마침내 쓰는 일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안도나 체념에 가까운 거였다.
p.47 (1987년 출간『목마른 계절』작가의 말 중)

아무리 좋은 것으로부터라도
과녁이 되는 것보다는 언저리에 수굿이 비켜나 있는 것이 좋다.
쓸쓸하기 때문이다.
노후의 평화의 진미는 쓸쓸함 속에 있다.
p.112 (1994년 출간『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작가의 말 중)

내가 쓴 글들은 내가 살아온 시대의 거울인 동시에 나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다.
거울이 있어서 나를 가다듬을 수 있으니 다행스럽고,
글을 쓸 수 있는 한 지루하지 않게 살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
p.138 (2006년 출간『그 여자네 집』작가의 말 중)


 40대의 신인이었던 박완서 작가는 페이지를 거듭할 수록 점점 나이를 먹었고, 그 세월의 흐름이 너무나 와닿아 야속하기까지 했다. 책을 덮음과 동시에, 제목만 알고 있을 뿐 읽지 않았거나, 아주 어릴 때 읽고 말았던 작가의 책 몇 권을 떠올렸다. 박완서 작가의 '말'이 그 책들을 떠오르게 했다. 부끄럽지만 이제야 박완서 작가의 책들을 제대로 읽어보아야겠다는 마음이 섰다.

 박완서 작가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수많은 작품들과 그녀의 생각을 접할 기회가 될,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선물이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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