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야기'가 제목에 있는 책들을 종종 보게된다. 서로 마주앉아 얘기 나누는 듯한 책들로 정감이 간다. <좀머 씨 이야기>도 그렇다. 우선 눈에 띄는 그림부터 보자면, 몇가닥의 깔끔한 선과 대체로 연하고 밝은 색을 사용한 수채화풍의 그림이, 정겨우면서도 책의 내용을 잘 나타내고 있다. '나'가 기분이 좋을 때는 더욱 밝고 연하게, 기분이 나쁘거나 실망하거나 겁이 날 때는 좀 더 어둡고 짙게 그림으로써 글의 내용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이 책은 '나'가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껶었던 일 가운데서 특히 기억에 남는 추억을 되새겨 보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 시절 '나'의 기억 속에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좀머 씨'에 대한 것이며, 그것은 그를 통해서 보게 되는 세상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다. '나'는 의외의 장소에서 마주치는 '좀머 씨'의 모습을 보며,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에 즐거움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을 복잡하게 보다는 단순하게 보게 된다. 어떠한 현상이나 일을 복잡하게 꼬지 않고 단순하게 보려는 것은 바로 순수하다는 것이다. 인생을 순수하게 드러나지 않는 소박함으로 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어 보이고자 애쓰며 산다. 그리고 돈을 좇아서 움직이고 명예를 얻고자 연연해 한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면서도 경쟁하고 다툼한다. 그러나 순수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러움을 갖고자 하므로 그저 무심히 존재하고 싶어하며, 애써 어울리지 않으므로 경쟁과 다툼도 하지 않지만, '좀머 씨'처럼 세상 속으로 자꾸만 걸어다님으로써 자연의 일부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느껴보게 된다. 그리고 외롭기는 하지만 자유로운 상태로 세상 속에 머물다가 드러나지 않게 사라지고 싶어한다. 바로 '좀머 씨'가 그러한 사람이다.
연한 수채화와 같이, 인생을 단순한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과 자연스러움을 잃지 않고 살다가 바람처럼 조용히 사라져가는 인간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